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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아빠 Mar 16. 2023

결혼의 맛


모처럼, 아내가 쉬는 날이었다. 아들은 등교를 하고 오랜만에 둘이서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뭘 할까? 막상, 아들 없이 둘이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니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집에만 있으면 늘어질 것 같아서 아내가 어디든 나가자고 했다. 아내가 가자는 대로 따라나섰다. 새로 생긴 이디야 카페, 뷰가 좋다고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그곳에서 각자 할 일을 좀 하고, 수제비를 먹으러 가잔다. 날씨가 쌀쌀해서, 따끈한 국물이 생각났나 보다. 그래요. 쫄깃쫄깃 수제비에 따끈한 국물, 좋다.


사실, 나는 수제비를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수제비 가게마다 기본 육수는 다르겠지만, 멸치육수나 사골육수를 기본으로 하고, 수제비, 감자, 버섯, 파 정도 들어간다. 돼지국밥에 비해서 별로 들어간 것도 없는 것 같은데, 7~8천 원이나 한다. 비싸면 9천 원이나 한다. 나 같은 밥돌이 입장에서는 가성비 나쁜 음식이었다.


차라리 국밥이 낫지 않을까? 뽀얗게 진한 고기국물에 구수하고 개운한 맛, 사골국물 맛을 즐기다가 물린다 싶으면 깍두기를 넣어서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칼칼함이 더 해져 국물의 진한 맛은 배가 되고 느끼함은 내려간다. 고기도 듬뿍 들어있어서, 새우젓에 찍어먹으면 수육을 먹는 재미까지 더 해진다. 돼지국밥 한 그릇이면, 세 가지 방법으로 아주 즐겁고 재미있게 맛을 느낄 수 있다. 수제비가 맛이 없다는 게 아니라, 같은 값이면 차라리 국밥이 낫지 않을까? 그래서 수제비는 즐겨 먹지 않았다.


아내는 수제비를 즐겨 먹는다. 분명히 말하자면, 밀가루 음식을 좋아한다. 뭐 먹을까? 물어보면, 밀가루 음식 일색이다. 칼국수, 떡볶이, 가락국수, 잔치국수, 짬뽕, 스파게티. 처음에는 아내가 먹자는 대로 따라서 먹었는데, 이 값이면 차라리 다른 게 낫지 않을까? 이 생각이 항상 따라다녔다. 가성비가 안 좋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렇지, 그래도 아내가 좋아하니까 그냥 따라서 먹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밀가루 음식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수제비는 수제비만의 매력이 있었다.


그날 아내랑 들렸던 식당이 수제비를 즐기기에 나쁘지 않았다. 외벽은 흙벽돌로 쌓아 올렸고, 볏짚이 올려져 있는 초가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다. 드르륵 소리, 정겨웠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자주 듣던 소리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수제비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가게 내부를 살피는데, 한옥의 편안함이랄까? 아니면, 어린 시절 할머니 집의 향수일까? 아내도 분위기가 좋다며, 들떴다. 수제비는 어떤 맛일까?


식전 음식으로 보리밥 한 줌이 나왔다. 고추장에 슥슥 비벼 먹으니 입맛이 돌았다. 드디어 메인 음식, 수제비가 나왔다. 아, 그런데 후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식당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후추 향이 내게는 어색했다. 첫 술을 뜨기 전 살짝 당황했다. 숟가락을 휘저어 후추 냄새를 날려 보냈다. 그래도 수제비는 수제비가 중요한 거 아닌가? 수제비 한 술 떠먹었다. 찹찹찹. 쫄깃하다. 그렇게 질긴 것도 아닌 것이 찰지면서 입 안에 착착 달라붙는다. 기가 막혔다. 손으로 잘 빚어진 수제비가 퍼지지 않고 잘 익었다. 이 맛에 먹는 것 아니겠나. 아내도 고개를 끄덕끄덕, 맛있단다. 화룡정점은, 무생채였다. 오도독오도독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아내는 연신 맛있다며,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무생채를 더 받아서 먹었다. 후추 맛 때문에 아쉬운 국물 맛을, 무생채로 달랬다. 여기는 무생채 맛집인 걸로! 후식으로 대추차를 주셨는데, 평범한 맛이지만, 뭐랄까? 수제비를 먹었는데, 대추차 덕분에 대접을 잘 받은 느낌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내게는 수제비가 그저 그런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많다. 나는 빵은 입에도 대지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가끔 아침에 브런치를 즐긴다. 진한 커피 향과 바삭한 토스트가 향긋하고 고소한 아침을 깨워준다. 매콤하면서 달짝지근한 떡볶이, 이제 떡볶이 맛집은 아내 보다 내가 더 많이 안다. 입 맛이 변한다는 게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결혼 9년 차, 정말 많이 변했다. 처음에는 즐기지 않았던 음식을 먹는 게 내키지 않지만, 나중에는 그 맛을 즐기게 되는 것처럼, 아내 덕분에 즐기게 된 것이 많다. 아내 덕에 글쓰기의 즐거움, 독서의 즐거움, 요리의 즐거움을 알았다. 아내는 내 덕에, 캠핑의 즐거움, 규칙적인 식습관을 알게 됐다.


결혼의 맛, 이런 것일까? 서로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 같다. 때로는 아내가 나와는 너무나 다른 것 같지만, 그 다름 덕분에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새로운 즐거움을 느낀다. 그 덕에, 인생사 즐거움 배가 된다.


내일은 또, 아내 덕에 어떤 즐거움을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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