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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타 Sep 16. 2018

'비밀의 숲'은 왜 웰메이드 드라마인가?

tvN 비밀의 숲 비평


tvN 비밀의 숲 비평 - 비숲은 왜 웰메이드가 되었나?



 일련의 계기로 드라마 PD를 꿈꿨다. 드라마 PD를 하려면 당연히 드라마를 많이 봐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 탓이었다. 전형을 거치면서 드라마를 봐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뼈저리게 느꼈다. 당시 입소문으로 ‘대작’이란 평가를 받던 드라마가 있었다. 현직에 있는 드라마 PD도 이 드라마는 꼭 봐야 한다고 말했다. tvN의 드라마 <비밀의 숲>이었다.



1. 권력 폭로형 드라마의 새로운 길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 권력 폭로형 드라마 및 영화가 우후죽순 나타났다. 드라마로는 <귓속말>, <김과장>, <피고인> 등이 있다. 영화는 <더 킹>, <내부자들>, <아수라> 등이 있다. 처음에는 권선징악이 가져다주는 통쾌함에 대중들은 쾌감을 느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후죽순 생겨나니 진부함과 클리셰만 남았다. 전개 방향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였다. 비밀의 숲도 같은 장르라 별반 다를 게 없을 거라 여겼다. 선입견을 가지고 첫 화 다운받았다. 그 후 비숲의 광팬이 되어버렸다.


 비밀의 숲 정주행을 끝내고 유사한 류(類)의 드라마들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야자 끝나고 나를 브라운관 앞으로 이끈 박신양, 김아중 주연의 드라마 <싸인>과 군대 말년, 지루한 시기를 스릴의 시기로 만들어준 장혁, 이하나 주연의 드라마 <보이스>였다. 비밀의 숲을 비롯해 위 드라마들은 피카레스크식 구성을 따르는 권력 폭로형 플롯이었다. 동시에 드라마의 매력이 뭔지 알려준 드라마들이었다.


 비밀의 숲은 싸인과 보이스, 두 드라마 플롯의 완성형이다. 비밀의 숲은 사이코패스를 쫓는 드라마는 아니다. 온갖 비리로 얼룩진 정치계와 법조계를 숲으로 삼아 그 안에 숨겨진 비밀들을 파헤치는 드라마였다. 위 드라마들과는 다르게 비밀의 숲의 주된 범인이 중간에 공개되지 않는다. 이 범인을 시청자와 함께 추리하는 방향으로 극을 전개한다. 그러나 곁가지 에피소드들이 없다. 오로지 드라마 16부를 모두, 단지, 이 범인 추적에 힘을 쏟는다. 이런 구성은 작가와 PD의 역량이 부족하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16부라는, 시간으로 따지면 16시간을 하나의 에피소드만으로 끌고 가려면 치밀한 연출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수연 작가와 안길호 PD는 해냈다. 결과적으로 국내 권력 폭로형 드라마의 새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 사전제작 드라마의 바이블


 드라마는 사전제작으로 만들어야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높아진다. 사전제작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려면 ‘시청률’이라는 방해 요소를 이겨내야 한다. 시청률을 위해선 쪽대본이 좋다.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작품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대부분의 드라마는 사전제작이 아닌 쪽대본에 입각해 만들어졌다.


 비밀의 숲은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았다. 웰메이드(Well-Made)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tvN은 이수연 작가의 비밀의 숲 시나리오를 보고 사전제작을 하기로 결심했다. 비밀의 숲에 <미세스 캅>, <옥탑방 왕세자> 등 다수 작품을 연출했던 안길호 PD를 배정했고 모든 스태프를 베테랑으로 채웠다. 비밀의 숲이 작가의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tvN은 이수연 작가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준 것이다. 그만큼 비밀의 숲은 시나리오부터 대작 냄새가 나던 작품이었다.


 권력 폭로형 드라마이기에 어쩔 수 없이 결말이 예상되는 비밀의 숲. 하지만 이수연 작가는 결말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줬다. 기존 장르물들은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립. 그 속에서의 권선징악을 통해 시청자에게 대리만족과 희망을 전해줬다. 비밀의 숲은 달랐다. 모든 등장인물이 범인이 될 수 있는 명분이 있었다. 절대선과 절대악이 아닌 누구나 품고 있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그래서 혼란스러운 이 숲에서 반전은 놀랍고도 매끄럽게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은 모두가 조승우와 배두나가 되어 방영 직후 누가 범인인지 색출하는 공론장을 형성했다.


 대한민국 드라마의 95%가 차용하는 억지스럽고 조악한 ‘러브라인’도 없었다. 이수연 작가는 조승우가 연기한 황시목을 감정을 못 느끼는 캐릭터로 설정하여 애초에 러브라인 가능성을 차단했다. 직업윤리에 충실하고 진취적인 모습을 보이는 여성 캐릭터, 배두나가 연기한 한여진과 신혜선이 연기한 영은수도 러브라인의 발생 가능성을 지웠다.      


 드라마는 결국 ‘보이는’ 장르다. 아무리 부수적인 장치들이 뛰어난다 하더라도 메인으로 보이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외면받는다. 비밀의 숲은 연기력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아이돌 출신 배우를 섭외하지 않고 오로지 성골 연기자로만 섭외했다.      


 대부분의 요소에서 비밀의 숲은 ‘사전제작 드라마의 바이블’로 남았다.          



3. 친절한 수연씨


 사실 비밀의 숲은 역대급, 아니 우리나라 추리물 중 최고라고 손꼽히는 드라마라 큰 허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나 보기 불편한 점은 있었다. 바로 너무 친절하다는 점이었다.     


 드라마는 글이 아니다. 영상이다. 그렇기에 영상으로 복선을 세팅하고 거둬들여야 한다. 영상으로 스토리의 전개를 해야 한다. 영상으로 시청자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모든 걸 영상으로 보여줘야 하는 게 드라마다. 그러나 비밀의 숲은 과도하게 친절했다. 혹여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시청자들을 위해 극 중 내용을 캐릭터의 대사로 풀어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대사의 문제는 친절함뿐만이 아니다. 황시목이라는 냉철하고도 비상한 캐릭터를 통해 시청자들을 계몽하려는 대사들도 보기 거북했다. 제작진이 건네고픈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사로 친절하게 풀이해줌으로써 시청자의 수고를 덜어내 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드라마 수용자의 자체적 해석을 무시하는 무례한 방향이었다.      


 연출과 스토리에도 약점이 있었다. 우선 고증 문제였다. 피고와 피고인을 구분하지 않은 용어 사용과 비현실적인 승진 시스템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비밀의 숲의 최고 반전들도 어설프게 풀어낸 경향이 짙다.     


 웰메이드 드라마 치고는 기대치고는 낮았던, 평균 4% 정도의 시청률도 아쉬웠다. 이는 tvN의 홍보 문제다. 원래 tvN은 주말 드라마로 금요일, 토요일 저녁에 드라마를 편성했다. 비밀의 숲은 토일 드라마로 최초 편성 이동을 했다. 이에 대한 홍보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초반 고정 시청자들을 잡기 힘들었다. 추리물 특성상 시청자의 중간 유입이 어렵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러면 연속 방송을 공격적으로 편성하여 시청자를 붙잡았어야 했는데 이런 편성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 종방 후, 더 큰 인기를 끈 드라마로 남게 됐다.          



4. 비밀의 숲이 남긴 것


 우리 사회는 불신의 늪에 빠졌다. 4.16 세월호 참사, 최순실의 국정농단 등 몇몇 사건들이 대중에게 불신을 안겨줬다. 이 과정에서 촛불시위를 벌이는 등 대중의 사회적 인식은 급격히 높아졌다. 이 인식은 드라마에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권력 폭로형 추리물에서. 대중은 단순한 선악의 대립은 진부하고도 일차원적인 플롯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권력 폭로형 추리물은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우리 모두가 용의자나 공범이 될 수 있다.’라는 주제가 있다. 비밀의 숲은 이를 고스란히 반영했고 영상으로 녹여냈다. 비밀의 숲을 통해 사람들은 대리만족과 자기반성을 겪을 수 있었다.


출처 : tvN 비밀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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