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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타 Dec 28. 2019

당신은 왜 해외여행을 가십니까?

어쩌다 여행 S1 마지막

당신은 왜 해외여행을 가십니까?



0. 

제대 후, 이런 질문을 굉장히 많이 들었다.

“당신은 왜 해외여행을 가십니까?”

죄송하지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여권에 도장조차 찍혀있지 않았기 때문에.

“저.. 대한민국을 벗어나 본 적 없는데요...? 제주도가 해외는 아니잖아요..”


대학생. 프리랜서. 기자. 뭔가 해외여행을 많이 갈 것 같은 신분의 조합이었나 보다.

해외여행보단 국내여행을, 비행기보단 내일로를 즐겨하는 사람이었다.

이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놔두고 굳이, 왜 해외를 나가야 하나 생각했다.


더불어 해외여행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너무나도 싫었다.

우리나라에 ‘욜로(YOLO)'라는 단어가 상륙했고,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를 뜻하는 욜로는 금세 변질되기 시작했다.

‘욜로=해외여행’으로.

그렇게 난, 위정척사파가 되었다.

1. 

척화비를 거두었다. 오랜 기간 사귄,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여자친구의 호출 때문.

이를 위해 야금야금 모으고 있던 적금을 깨버렸다. 부랴부랴 미국 일정을 잡았다.

취재 건(件)도 있고 그래서, 이왕 간 김에 오래 있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브런치에 기고한 여행기보다 더 오래 있었다. 물론 보스턴에 ㅎㅎ.


그래서 이제 막 귀국하고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시차적응이 전혀 되지 않아,

나만 깨어있는 새벽 이 시간.

한껏 센치해지는 이 시간.


이제는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은 왜 해외여행을 가십니까?”



2.

언젠가부터, 삶에서 ‘여유’란 단어가 사라졌다.

20살엔 재수를 했다. 21살엔 조연출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22~24살은 군대.

24살부터 프리랜서와 학업의 병행. 뭔가 한국형 인재가 되어버린 느낌이 짙어졌다.

결국, 내가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아주 기묘하고 오묘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강박증에 시달렸다.

이는 무(無) 여유의 삶을 이끌었고, 내 뇌와 몸은 여유라는 걸 잊게 되었다.


그러다 여행을 갔다.

여행 중에도 일을 하긴 했지만, 사실 마감을.. 조금씩.. 늦게 했다.

여기서 여유를 찾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여행지, 브루클린에서 브루클린 브릿지를 걸을 때

두 번째 여행지, 보스턴에서 프리덤트레일을 걸을 때

세 번째 여행지, 토론토에서 토론토 아일랜드를 걸을 때


그저 이곳들을 걷는 것만으로도

나는 여유로워졌고 여유란 걸 찾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여유를 만끽하려면 방콕이 최고라고 배웠는데.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상태에서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밖에서 x고생하는, 해외여행에서 여유를 느꼈다.


그래서 누군가 다시 질문을 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저는... 여유를 찾으러 해외여행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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