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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큐리 Dec 19. 2021

책들; 서점 창업에 관하여

몇 년 전부터 서점에 대한 막연한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 뒤로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어느 날 마치 결심이라도 한 듯 도서관에서 관련 도서들을 5권 빌려와서 연속으로 읽었다.


▷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로컬숍 연구 잡지 브로드컬리, 2018.07.08 (초판 3쇄)

▷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백창화, 김병록, 남해의 봄날, 2017.05.25 (3판 1쇄)

▷ <동네 책방 생존 탐구>, 한미화, 혜화 1117, 2020.08.05

▷ <언젠가는, 서점>, 김민채, 북노마드, 2019.10.20

▷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 박용희, 꿈꾸는 인생


- 동네책방을 창업한 주인장들의 인터뷰집

- 동네책방을 관찰하고, 탐방하며, 인터뷰한 책

- 그리고, 서점을 실제로 운영하는 주인장들의 책


내 관심은 "리테일의 관점에서 본 서점"이었다.


최근 리테일 부문에서 "서점"만큼 (리테일의 전형적인 영역에 비하여) 이채로운 창업이 많았던 적은 없었다. 관련하여 이렇게 많은 양의 콘텐츠(책, 방송 등)가 쏟아져 나온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리테일러로서의 관심, 그리고 책과 독서를 취미로 하는 사람으로서의 관심이 중첩되었다.

책은 문화이자 상품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리테일에서 다루는 상품(내구재와 준내구재, 비내구재와 같은 소비재)과는 결이 다르다. 본질은 상품이지만, 소비의 양태를 보면 일상적 소비가 아니라 문화적 소비라는 점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한편 나는 이러한 연속 독서의 과정을 추천해본다. 창업의 방법론과 실전 측면에서 관찰자와 실행자의 다양한 관점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리테일의 측면에서 리테일러를 둘러싼 산업, 마켓, 소비자, 공급자의 복합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서점뿐 아니라 모든 카테고리의 창업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이렇게 한 카테고리에서 유통의 처음과 끝(생산자에서 소비자까지)을 샅샅이 살펴볼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서점은 흥미로운 주제이다.


다섯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내내 고민했다. 

'상점으로서의 서점과 상품으로서의 책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에서 주인장의 고민의 흔적을 따라가 보자.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백창화, 김병록, 남해의 봄날


p11

(~) 2014년, 도서정가제가 실시된 이후 마치 동네서점의 중흥기가 올 것처럼 기자들은 서점 이야기를 썼다. 기사들만 보고 있노라면 그간 온라인에 잠식되어 죽어나가던 오프라인 서점들이 벌떡벌떡 살아날 것만 같고, 홍대 앞 카페촌을 뒤흔들던 북카페의 바람이 이제 독립서점 유행으로 변화해갈 조짐이다. 조만간 자고 나면 한 개씩 동네책방이 생겨날지도 모르겠고 책방은 이제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의 새로운 창업 트렌드가 되어버릴 지경이다. 과연? (~)


P69

전국에서 사람들이 명성을 듣고 찾아오지만 그들이 머무는 30여 분, 서점 안은 카메라 찰칵이는 소리만 가득하고 독자를 그리워하는 책들의 기다림은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스마트한 소비자들에게 서점이란 책의 실체를 확인하는 곳일 뿐, 구매의 장은 온라인이기 때문이다. 효율과 정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격비교, ‘최저가’의 명패가 붙지 않은 어리석은 구매는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아, 그러므로 아름다운 서점이란 이제 사진으로 남기고 SNS에 기록하는 관광의 명소, ‘핫 스팟’일 뿐 책을 고르고 책을 사는 곳이 아니다.


P43

우리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처음부터 책을 ‘강매’하는 책방으로 출발했다. 시골 마을 작은 책방은 오가는 대화 속에 정이 넘치는 인심 좋은 공간이 아니라(미안하다, 그간 당신이 오해했다) 웃는 얼굴로 지갑을 열고 책 사기를 강요하는 상업 공간인 것이다.

“책을 좋아하고 종이책의 향기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살고 있는 집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그러나 책 한 권은 꼭 사가셔야 해요.”


P100

동네서점들의 고민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만 놓을 것인가, 아니면 대중이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책을 놓을 것인가. 그리고 내가 알기에 지금 생겨나는 대부분의 동네서점들은 전자 쪽이다. 서점 주인들은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고 소개하고 싶은 책 중심으로 책을 고르고 그것을 원하는 독자들이 그 서점을 찾아가는 형태다. 그러하기에 동네서점은 그 뚜렷한 색깔만큼이나 확장의 폭에 있어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구조 안에서 서점이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단골 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서점은 도태될 것이다.


리테일을 직업으로 가진 자로서 내 경험은 이렇다. 나는 상품 기획의 원칙을 세울 때, 상품이 가져야 할 요소로 딱 세 가지를 염두에 둔다.


Origin : 본질적으로 우수한 기능을 가져야 한다 (음식이라면 맛있어야 하고)
Fashion : 기왕이면 다홍치마라 했다. 보기 좋은 것을 넘어 멋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Drama : 이야기가 없으면 심심하다. 사연이 많은 상품이 오래도록 잘 팔린다.


 상품을 기획(Merchandising)한 뒤의 중요한 작업인 상품의 구성(Selection)에 있어서 원칙은

"생각을 갖되, 자의식을 담지 않는다"이다. 내가 좋아하는 상품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상품이어야 한다. 고객 지향의 상품 구성에 있어 편견과 선입견 말고도, 무서운 적은 넘치는 자의식이다.

기획의 3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책의 경우엔 구성더 중요하다. 구성에 고객의 관심을 담아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앞으로도 지속적인 생존을 예상할 수 있는 리테일러이자 서점은 상품으로서의 "책"을 고객지향적 관점으로 선별하여 큐레이션 한 서점이다. 많이 생겨난 만큼, 많이 폐업한다지만 오직 낭만만 가지고 창업한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다만 1차적으로는 <상품으로서의 책>에 집중하여 상점으로서의 격과 꼴을 갖춘 후 <문화로서의 책>을 다루어내어 멋과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리테일러인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즈니스의 룰(rule)이 있다.

비즈니스는 <P ⅹ Q - C>의 함수라는 점이다.


* Price : 비싼 가격에 팔거나 (원가를 낮추는 작업 포함)
* Quantity : 판매량을 높여야 한다. (많은 고객에게 다량으로 파는 박리다매의 개념도 포함된다.)
* Cost : 비용은 당연히 최소화해야 한다. (다만, 적정한 마케팅 비용은 필수이다. 고정비를 아끼는 것과 마케팅 투자 비용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은 Cost 측면에서 서로 다르게 다루어야 하는 항목이다.)


서점의 핵심 상품인 "책"은 근본적으로 저마진 상품이다. 현행 도서정가제가 10% 할인과 5% 적립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불충분한 상태이므로 더욱 그렇다. 출판사로부터 도매상(총판)을 거쳐 서점에 오는 유통 과정에서 서점이 취할 수 있는 마진의 폭은 일반적인 리테일러의 평균보다 훨씬 적다. 그렇다면, 서점은 P와 Q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대개의 경우 낮은 Cost를 들여 Q를 늘리기를 원한다. 하지만 정답이 아니다. 낮은 C가 가능하려면, 개인의 역량이 뛰어나서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거나, 오랫동안 꾸준히 해야 한다. 뛰어남과 성실함, 둘 중 하나는 확실히 있어 가능하다. 여기에서 "시간의 투자" 역시 비용이라는 점은 모두 이해하리라 믿는다. 지의 골자는 적절한 비용 투입을 고려하는 편이 사업 초기 단계에서는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프루스트의 서재> 주인장이 선택한 헌책(중고책)의 카테고리는 매우 의미심장한 접근이다. P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어떻게 보면 Q에 집중(집착)하는 것보다 중요한 작업이다. 셔리의 사례까지 갈 필요도 없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 수 있어야 소매업의 지속가능성이 확보된다. 

한편, <숲속작은책방>의 주인장이 손글씨로 추천글을 써서  띠지를 입히는 작업이나 <책방이곶> 주인장이 해외 화보집을 확보하는 작업, <용서점> 주인장이 책 선물을 큐레이션 하는 작업 등에 주목해보면 좋다. 상품의 가치를 높이거나, 희귀성, 차별성을 확보하는 작업 P의 영역이다.


결론이자 다섯 권의 책 리뷰의 마무리를 대신하여

서점 사업은 정말 어려운 사업이다. 책을 이해하는 것과 상품으로서의 책을 다루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인데도 불구하고, 중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잘 팔리는 상품을 팔아야지 내가 팔고 싶은 상품을 팔면 필패다. 물론 잘 팔리는 것 말고 '맛있는 것'과 같은 본질에 접근한 판매 전략을 세우는 것도 성공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눈 뭉치가 굴러가고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한 다음의 일이다. 시동 걸고, 앞으로 나아가야 그다음이 있다. 욕심부려서는 안 된다.



▷ <지적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 이정환 옮김, 민음사, 2015.11.02 / P67

플랫폼이 넘쳐나는 서드 스테이지에서 사람들은 ‘제안’을 원한다. 서적이나 잡지는 그 한 권, 한 권이 그야말로 제안 덩어리다. 그것을 팔 수 없다면 판매하는 쪽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 문제는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한 가지 해답을 얻게 되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서점은 서적을 판매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서울의 동네서점 _ 주식회사 동네서점(구. 퍼니플랜) / 땡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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