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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큐리 Jul 02. 2022

무딘 말

무딘 말을 좋아한다.

무딘 말은 다정한 말이다.


어려워 한참을 더듬어야 하는 말,

비정하고 지독한 말,

뻔히 보이는데도 속이려 애쓰는 말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에서 무딘 말을 만나면 오래된 나무를 만난 듯 반갑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는다.

닿으면 따스하리라.


오래된 나무는 손끝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온전히 닿아야 지나온 세월을 전해준다.

그러니 한발 더 가까이 가야 한다. 

무딘 말은  말로 상대하지 말고 귀를 열어 마음으로 담아야 온전히 들린다.

그러니 입보다 귀가 바빠야 한다.

말에 말로 상대하기 급급하면 귀가 열리지 기 때문이다.


무딘 말을 좋아한다는 건 사실, 희망사항이다.

그나마 나이 들어가는 보람이라면 무딘 말이 좋아진 것인데 그러다 보니 날 선 태도로 '싫다', '그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직설 마주하면 숨을 한번 더 들이마시게 된다. 그렇게 한 박자 늦추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직설로 대꾸하게 되니 무딘 말을 알고 있으되,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나의 지난 말들은 각을 잔뜩 세운채, 듣는 이들의 마음으로 쳐들어가곤 했다. 이제야 무딘 말의 온기를 곁불 쬐듯 느껴보니 지난 세월 나의 날 선 말들은 허영이거나, 욕심이거나, 혹은 만용이었으리라.  


많은 이들이 날 선 직설을 쿨하다며 선호하는 척하지만, 날 선 말에 상처입지 않는 마음이 있겠는가.


직선은 기하학에나 맞을 뿐 자연이나 삶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거짓이 아니라면 힘의 우위 있는 경우, 그러한 직설은 듣는 이의 마음에 오래 남아 덜컹거릴 것이다. 오래도록 곱씹고, 되씹어도 찌꺼기로 남아 삼켜지지 않을 것이다.


선 반대에 맞닥뜨리면 사람들은 대개 방어막을 작동한다. 그러면 대화가 아니라 공방이 된다. 회사일이 대부분 전략이나 전술이라는 각진 이름으로 포장되게 마련이라 공방이 더 적합할 것 같다는 착각을 하지만 회사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던가.

어떤 이들은 완충재를 넣어 대화를 주고받는 회의를 못 견뎌한다. 촉박한 시간에 언제 일일이 완충을 넣는단 말인가. 빠르게 공방을 주고받아 결론을 내야 효율적이지 않은가.


말에 각을 세우면 빠른 결론을 낼 수 있을지언정 사람과 사람이 닿지는 못한다. 

말을 무디게  수 없다면 칼집에 넣어줄 만큼의 말 기술은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래야 사회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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