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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큐리 Jun 14. 2020

침착함과 꾸준함을 찬양함

실패담의 시작

세상에는 성공담이 흔하다. 실패담이 흔해야 정상인데 아이러니다. 성공은 행복만큼이나 귀한 것인데.

그래서 실패담을  쓴다. 사실 구구절절 사연이 많지만 왜 실패했는지를 요약해보면 단순하다.

그것은 단 두 가지 요소의 결핍 때문이다.




꽤 오랜 시간 이 정도면 할 만큼 한 거 아닌가 하는 자긍을 가졌다.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상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선함을 추구하고, 도전의 숭고함을 찬양했다. 거짓말을 기피했으며 솔직해지고자 노력했다. 성실하게 공부하거나 일했고 규범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여기까지는 혼자만의 자긍이므로 괜찮다.

하지만 무리 속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평범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에게 [순진함]을 더하면 얘기는 사뭇 달라진다. 그것은 세상 모두 정상성을 추구할 것이라는 순진함을 의미한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지극히 잔인하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리지 않는 단순함도 세상의 이치 중 하나이다. 이러한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나는 그저 순진무구했다.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하면 순진함보다 순진함이 불러일으키는 열정에 취해 있었다.

순진한 열정은 위험하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환상을 먼저 보여준다. 밝음의 이면에 그림자가 있음을 깨닫지 못한 채 환상에 달려드는 순진한 자들은 위험하다.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세상을 마주하여 필요한 것은 그저 침착함이다.


손원평의 소설 아몬드에서 편도체가 비정상인 윤재가 말한다.

남들과 다르게 태어난 아이를 지키려고 엄마가 가르쳐 준 방법은 간단했다.


"나는 집으로 찾아온 사회 복지사한테 했던 것처럼,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예사롭지 않은 제안을 하면 일단 시간부터 끌라고 배웠으니까."

손원평, [아몬드], 2017, 창비, 60쪽




나는 무수히 많은 실패를 반복해왔다. 꽤 많은 교류에 실패했고, 친구를 잃은 결과 지난 시절의 기억에서 추억이 될 만한 일은 한 줌에 불과하다.

내가 관계에서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다. 순진함이 불러일으킨 환상은 곧이어 조바심을 가져온다. 아름다운 미래로 빨리 가고 싶다는 조바심은 환상과 비례하여 몸집을 부풀리게 마련이다. 그렇게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의 관계를 돌보지 않으니 사람들이 곁에 남아날 재간이 없다.


그저 순진하게 정상성을 추구하던 나는 일에서도 실패를 거듭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절한 준비보다는 환상이 먼저였다. '성공하면 3층 건물을 사고야 말겠어' 따위의 환상이다. 준비 없는 긍정은 무모함이다.


사람은 자판기가 아니라는 말은 대체로 맞다.

내가 잘해주면 그가 나에게도 잘해줄 것이라 기대하며 착각하는 것을 자판기 신드롬이라고 한다. 한편 인생은 자판기와 같다는 말도 대체로 맞는 말이다. 앞으로의 인생은 내가 오늘 무엇을 하느냐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물론 준비 없이 시작해도 성공할 수 있다. 그걸 과정이라고 한다. 부딪히면서도 꾸준히 나아가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목표가 뚜렷하면 길도 뚜렷하다. 섣부른 염려, 조급한 마음, 환상이 아니라 지금 현재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사실 내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타협'이었다.

준비 없는 무모함보다 목표를 상실한 타협이 훨씬 나쁘다. 방향을 잃고 임기응변으로 타협하다 보면 당연히 길을 잃게 마련이다.


세상을 마주하여 필요한 것은 그저 꾸준함이다.


평범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침착함과 꾸준함이다.

세상이 잔인하도록 단순하게 야성 혹은 야만을 택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면 오늘은 어제보다 침착하게 현실을 마주하여, 미래에 대한 섣부른 염려는 접어놓고 꾸준히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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