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나아질 거야', '희망을 가져'와 같은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나는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에게 '더 나아지지 않아'라고 말하곤 한다.
그건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더 나아질 거라는 섣부른 기대, 막연한 낙관주의는 경계심의 둑을 갉아먹고 틈을 벌려 불행이 침습하는 구멍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희망'이라는 말의 뒤에 숨어 느슨해지곤 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나마 마음을 내려놓는 안도감을 즐기곤 했다.
짧은 안도의 시간이 지난 뒤의 결과? 불행은 늘 허술한 마음을 양분으로 자라게 마련이다. 섣부른 희망의 크기가 클수록 불행의 크기도 커졌다.
'희망'이라는 말의 사용법은 무척 까다롭고 엄격해야 한다. 희망이라는 달콤한 기대에는 책임과 노력, 때로는 헌신이 따라붙어야 한다.
좋은 말일 수록 사용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