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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Dec 15. 2020

#1 도전의 기록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전업주부로 산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10년 중 6년은 이름만 회사원이었던 육아휴직 기간이었다. 둘째가 두 돌이 되면 회사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세상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둘째 별이가 유난히 말이 느린 것을 알고 있었다. 첫째  봄이도 그다지 빠른 편인 아이는 아니었기에 여유를 갖고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다. 별이가 두 돌이 지나도 나는 회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유난히 예민해 엄마 껌딱지인 첫째 봄이와, 말이 느려 떼가 많은 둘째 별이를 친정 엄마 손에 맡기고 출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정 아빠는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애들 아빠는 갑자기 지방 발령을 받아 주말부부로 지내던 때였다. 아무리 애들을 종일반에 보낸대도, 업무량이 많은 데다 멀기까지 한 회사에서 돌아오면 밤 아홉 시는 될게 분명했다. 주저하는 사이 친정 엄마에게 갑상선 암이 선고되었다. 기약 없는 휴직은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일은 계속하고 싶었다. 좀 더 근무환경이 좋은 직장을 찾고자 육아와 대학원 입학시험을 병행했다. 별이가 세 돌이 되던 해, 어린이집 원장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을 것을 권했다. 별이는 발달장애였다. 다음 달 회사에 사직원을 제출했다. 대학원 시험도 접었다.

 장애가 있어도 아이는 잘 자랐다. 나와 우리 가족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힘을 합쳐 아이들을 길러냈다. 친정 엄마의 암도 완치되고, 남편도 지방근무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식구들은 여전히 약하고 바쁘지만 조금씩 내 육아를 도와주었다.

 올해 봄이는 열 살, 별이는 여덟 살이 되었다. 공부 욕심이 많은 봄이는 사립초등학교에 진학해 다양한 학원에 다니고 있다. 별이는 병설유치원 특수반을 거쳐 올해 특수학교에 입학했다. 지난 10월부터 아이들이 등교하는 날이 늘었다. 코로나 19가 잠시 주춤하자 봄이도 별이도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갑자기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 내 시간이 생겼다. 별이의 발달장애 진단 이후로 이런 긴 자유시간은 처음 가져보는 것이었다.

 작년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 1년을 계속한 30일 글쓰기, 그 후의 백일 글쓰기도 얼마 전에 끝났다. 애초 계획은 글쓰기로 밥벌이를 해보고 싶었다. 글은 집에서도 쓸 수 있었다. 나처럼 몸이 매여있는 사람에게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이의 발달장애만으로도 내게 글감은 넘쳐났다. 글을 쓰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읽어줄 만한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소수의 사람들은 내 글을 아주 좋아해 주었다. 그래도 조회수는 늘 거기서 거기였다. 아주 가끔 몇천, 몇만 번 조회되는 글이 있었기는 했지만, 별다른 결과는 없었다.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책을 쓸 수는 있겠지만, 책이 나온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주변의 출간 작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책을 출간한 것만으로는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없더라고. 글은 그저 즐겁게 쓰는 것에 만족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심이 가득한 채 좋은 글이 나올리는 없으니까.(그래도 언젠가 책은 출간하고 싶다.)

 봄이의 학원비, 별이의 치료센터 비용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나와 나이차가 많이 나는 남편은 머지않은 언젠가 퇴직을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집안에서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며 사는 삶이 싫었다. 뭐라도 시작하고 싶었다. 경력단절의 40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난 여름부터 꾸준히 계속하고 있는 취미가 있다. 팔찌를 만드는 일이다. 비즈와 원석, 매듭팔찌를 꾸준히 만들었다. 코로나로 집에 갇혀있던 시절, 종일 식탁 의자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손을 움직이다 보면 예쁜 결과물들이 생겨났다. 온라인에는 팔찌 만들기를 배울 수 있는 무료 강좌가 넘쳐났다. 악세사리에 큰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팔찌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매일 관련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우연히 열어본 유튜브 영상이 내 삶을 흔들었다.

 며칠 전 나는 혼자 조용히 국세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사업자등록을 신청했다. 그 이후 매일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내가 만든 팔찌 사진을 업로드했다. 저가의 조명과 촬영 소품을 사들였다. 팔찌와 관련된 계정들을 찾아다니며 분석도 하고 열심히 '좋아요'를 눌렀다.

 내가 보았던 영상은 아이를 키우며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어느 유튜버의 영상이었다. 그녀의 영상을 보고 나자 유튜브 알고리즘은 줄줄이 나를 온라인 사업과 퍼스널 브랜딩의 세계로 안내했다. 잘된 사람들의 얘기라 단위도 어마어마했다. 억대 매출, 구독자수 몇십만 명.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의 영상에 공통된 이야기가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큰 성공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소비형 인간'에서 '생산형 인간'으로서의 전환은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자본을 들일 일도 없다.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온라인 스토어를 여는 데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핸드폰 하나와 내 부지런함이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매거진은 이러한 도전의 기록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온라인 사업이 성공하면 물론 좋고, 실패하더라도 나름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오늘의 나의 도전을 글로 남겨두는 것 또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의 온라인 멘토들은 말한다. 실패해도 쓰러지지 않을 만큼의 작은 자본만 투자하라고. 이번에 안되면 다음에 또 도전하라고. 그러면 언젠가 운은 나에게로 온다고 말이다.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배울 것도 많고 준비할 것도 아직 많지만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느라 바쁘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설렌다. 앞으로 샘플을 더 만들고, 사진을 촬영하고 몇 가지 서류 작업을 더한 뒤 스마트 스토어를 열 것이다. 포장재 준비, 명함 제작 등 부수적인 것들도 필요하다. 이번 한 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고 변화가 넘치는 날들이 될 것이다. 이제, 시작해보려 한다. 초보 사업가의 온라인 쇼핑몰 도전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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