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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편] 오브제의 독백: USB 뚜껑

by 은퇴설계자

나는 USB 본체와 함께 태어났다.

같은 플라스틱, 같은 공장에서, 같은 주형에서

나는 그를 덮기 위해 존재했고,

그는 나를 벗어야만 작동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떨어지기 위해 만들어졌다.


처음엔 늘 함께 다녔다.

주머니 속에서도, 필통 안에서도,

가방 안 깊은 곳에서도 나는 항상 그 위를 덮고 있었다.

비바람도 먼지도 못 들어오게


그러다 어느 날이었다.

너무 급한 순간이었다.

그는 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고,

그 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거기 그대로 있었다.

햇빛이 들고, 밤이 지나고, 먼지가 쌓였다.

나는 점점 가벼워졌고,

결국 아무것도 닿지 않는 물건이 되었다.


그는 이제 나 없이도 살고 있었다.

파일을 옮기고, 회의에 참석하고,

사람들에게 "이건 요즘 잘 인기 있는 USB야"라고 말할 때,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가끔 누군가 내 존재를 발견하면 이렇게 말한다.


"어? 이거 뭐야?"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나는 필요 없는 존재다.

잃어버린 게 아니라,

필요 없어진 채로 남겨진 것.


그게 홀로 남겨진 USB 뚜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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