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한편] 은퇴를 설계한다는 것

은퇴 준비는 설계가 아니라 실천의 영역

by 은퇴설계자

4년 전 팀장 보직을 내려오면서부터 이 회사를 조만간 떠나야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조직에서의 성장이 막힌 그날부터 내 삶은 온통 성공적인 은퇴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당시의 나에게 은퇴란 소득의 단절이 제일 무겁게 다가왔고, 재무적인 공백을 어떻게 미리 준비할 것인가가 은퇴 준비의 전부였다.


성공적인 은퇴란 재무적으로 탄탄한 기반을 마련한 은퇴라는 생각이 가지고 퇴직연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하고, 주식도 열심히 공부하며 성공적인 투자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재무적인 안정만 만들어진다면 다른 부분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4년이 지난 후 다시 되짚어 보니 당시의 나는 은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아니었나 싶다.


재무적인 기반이 어느 정도 세팅되어도 은퇴 이후의 삶은 힘들 수 있다. 건강과 사회적 관계의 단절. 절대 외면할 수 없는 나이 듦의 동반자들이다.


원래 혼자서 잘 노는 체질이라 사회적 관계가 무슨 문제가 될까 싶었지만, 25년을 한 직장에서 보낸 나에게 조직의 명함이 없는 삶은 사실 상상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조직의 타이틀을 쓸 수 없게 된다면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하나씩 답해 가는 게 제대로 된 은퇴 준비라고 본다.


은퇴 준비에 대해서도 이렇게 막연한데. 은퇴 설계란 걸 할 수 있는 것일까?


설계(Design)란 이름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계획이나 목적을 눈에 보이는 기호(SIGN)로 구체화(DE)하는 것이다.


언젠가 다가올 은퇴라는 막연한 이벤트를 구체화하여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처음엔 재무적 준비, 소득의 공백을 대비한 인생 후반전의 계획이었는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나의 소득 수준, 소득 수단 자체가 나를 입증하고 증명하는 일종의 신분증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은퇴 이후 계속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 것인가? 돈은 얼마나 벌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까지 세분화해서 내려가게 된다.


어쩌면 회사 일을 병행하면서 이렇게 은퇴 이후 시간을 치밀하게 준비할 수 있다는 게 운 좋은 상황일 수도 있다. 대개는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 삶일 수도 있으니.


은퇴 설계란 그런 면에서 보면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 가장들에겐 사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개는 설계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을 수 있으니.


그래서 이 은퇴 설계를 더 잘해보고 싶단 생각도 든다. 기왕 내게 허락된 이 기회를 잘 살려 은퇴를 앞둔 많은 우리 세대의 친구, 선, 후배들에게 시행착오 없이 인생 후반전을 준비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될 수 있다면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은퇴 설계란, 회사라는 울타리를 넘어 '나'라는 본연의 이름으로 홀로 서는 연습이다. 누군가에게는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이 고민의 시간들을 나는 기꺼이 기록하려 한다. 나의 시행착오가 누군가에게는 지름길이 되고, 나의 불안이 누군가에게는 안도감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텅 빈 명함 뒤에 숨겨진 진짜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이 여정. 비록 화려한 타이틀은 없어도, 내 삶을 스스로 디자인해 나가는 기쁨을 우리 세대의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은퇴 설계를 '사치'가 아닌 '가치'로 바꾸는 방법이다.


ChatGPT Image 2025년 12월 20일 오후 04_31_33.png 이미지 By 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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