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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탕 Jan 25. 2021

카탈루냐 사람들의 구멍 난 양말

매번 빨래를 할 때마다 남편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제발 좀 버리자

-이거 내가 진짜 오랫동안 입은 잠옷인데, 너무 아쉬워

-고무줄이 다 늘어나서 입을 수도 없는 건데 왜 그래

-아직 입을 수 있어, 혹시 저번에 산 잠옷을 잃어버릴 수도 있잖아!


남편이 버리기 싫어하는 건 잠옷뿐만이 아니다.

구멍 난 양말, 늘어난 팬티, 오래된 티셔츠... 이쯤 되면 버릴 만도 한데, 항상 "정이 들어서" 혹은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고 싶다" 등등 핑계도 가지 각색이다.


절대 구멍이 난 양말을 버릴 수 없다고 하는 통에, 양말 2짝이 전부 다 구멍이 나면 버리기로 협상(?)을 했다.

하지만 매번 남편의 무엇인가를 버리는 작업은 정말 힘이 든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의 양말은 특히 구멍이 잘나서, 3-4번만 신으면 바로 구멍이 나버려서 이제는 바느질하는 것도 거의 포기상태.


그런데 이는 우리 남편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쯤, 한국에서의 결혼식 전날에 남편 가족들 모두와 밥을 같이 먹고 차를 대접하려 식사 후 집으로 초대를 했는데, 시어머니 양말만 무사하고 우리 시댁 식구들 양말에 모두 다 구멍이 나있었다.


이런 것에 예리하신 시어머니는 바로 이 난처한 상황을 캐치하시고 구멍 난 양말을 모두 벗으라는 오더를 내리셨다.


덕분에 기념사진에서도 전부 맨발인 시댁 식구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서양권은 거의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가는 문화라서 이 부분에 대해 다들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있었다는 게 너무 웃겨서 가끔 저 사진을 보면서 피식거리곤 한다.


근데 재밌는 건 카탈루냐 인들의 오래된 물건에 대한 집착 아닌 집착은 양말뿐만이 아닌 것 같다.

시댁에 가면 온갖 물건들이 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다.

다들 물려받았다고 하면 귀중품류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100년이 넘은 도마, 다 무뎌진 식칼, 할머니 이름이 수놓아진 테이블보, 60년이 넘은 티스푼,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의자, 증조할머니가 쓰던 장갑 등등 한국에서는 떠올리기 힘든 그런 종류의 물건들을 물려받아 대대손손 사용한다.


물려받는 이유는 다양하나, 공통적인 이유는

“아직 쓸만해서”라고 한다.

물건이 써서 닳는 경우도 있지만, 물품이 아직 제 구실을 하는데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미니멀리스트와 거리가 먼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러한 카탈루냐 인들은 스페인 내에서도 아주 지독한 구두쇠 이미지가 뿌리 박혀있는데, 이는 나의 경험상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카탈루냐 인들이 아끼는 것은 돈이라기보다,

소박한 삶과 실용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건을 소비하고 소지하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버려지는 물건에 대해 가엽게 생각하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

어쩌면 물건 입장에서는 이보다 고마운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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