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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탕 May 11. 2021

태양을 쫓는 여자

집순이의 외출 욕구 증폭!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다가 거짓말처럼 쨍한 해가 나오고,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 당장! 저기 해 떴잖아!!
오늘 저녁부터 다음 주 월요일까지 계속 비래!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어!


귀찮아하는 남편 바짓가랑이를 잡고 기여 기여 나가서 바람을 쐬었다.

시각은 이미 6시 반, 어둑어둑 지는 해이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축축한 바람을 타고 느껴지는 비의 냄새와 함께 포근한 해가 기분이 좋아 붙잡혀 나온 남편도 좋아하는 눈치다.


끌려왔지만 신나는 남편



원래 전생에 뱀파이어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태양을 싫어했던 나는 동네에서 제일가는 암흑의 자식이었다.

특히나 대학생 때, 새벽 갬성을 좋아라 하던 나는, 저녁에 밥을 먹고 과제를 한 다음, 작은 전등 하나만 켜놓고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 노트북을 켜서 좋아하는 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보는 것이 나의취미라면 취미였다.

그러고 때때로 뜨는 해를 보고 나서 뿌듯한 마음으로 쓰러져 잠을 자고 난 후, 다음날도 똑같이 반복하기 일수였다.


이랬던 나인데,

이제는 해만 뜨면 본능적으로 밖으로 나가야 할 것만 같다.

영국의 날씨에 대해 예전에도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도 언급한 것처럼

영국의 날씨는 기본 흐린 날을 베이스로 깔고 있기 때문에 약간 우울 해 질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영국의 대표적인 흐린 날씨

https://brunch.co.kr/@retnet/20- 처음 겪는 런던의 겨울 편


그래서, 쨍한 해를 보는 날은 참 운 좋은 날처럼 느껴지고,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도 살짝 든다.


우리가 일본에서 영국으로 이사 왔을 때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봄/여름 시즌이라 그랬었는지, 그때 당시에는 반쯤 벗고(혹은 거의 다 벗고) 태닝을 하던 사람들, 발코니에서 밥을 먹거나 카페 밖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사람들, 밖에 나와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는데, 그때는 굳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얀 피부=미인이라는 수식이 성립된 나라에서 와서 태닝이라는 건 별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커피를 돈 내고 마시면서 굳이 카페 내부가 아닌 카페 밖에 앉아서 마시지?라는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 의문점은 영국에서 딱 1년을 나고 나니, 자연스레 정답을 알게 되었다.


우중충하고 습하고 추운 흐린 날들이 며칠씩이나 계속되다가, 해가 갑자기 뜨면 뭔가 나의 깊은 곳에서 외출 욕구가 솟아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욕구가 아닌, 거의 식욕과 맞붙는 정도의 생존 본능과 같은 욕구다.

추측이지만 그동안 결핍되어온 비타민D를 체내 깊숙한 곳에서 갈망하여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 스스로에게도 놀라는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한번 아주 추운 겨울날, 해가 쨍쨍하게 뜬 적이 있는데, 그때 패딩과 장갑으로 중무장을 한 뒤, 컴퓨터를 다 싸들고 발코니로 나가서 3-4시간 정도를 벌벌 떨면서 일을 한 적이 있다. (근데 밑에 집 아저씨도 나랑 똑같이 하고 있더라..) 이 정도 수준이면 집순이 환골탈태 수준..

지금은 당연한, 해뜨면 커피 타임은 발코니에서


시댁인 바르셀로나가 365일 쨍쨍한 햇빛이 있고, 영국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라 영국인 관광객들이 많은데, 남편 왈 "거리에서 배 나와있는데도 웃통 까고 있으면 거의 백중 백발 영국인"이라고 아무래도 비타민D를 흡수하려는 욕구가 좀 과했던 듯싶다.

*여담이지만 바르셀로나시에서 한때 이를 법으로 금지했던 적이 있었던 만큼 심각하게 미관상으로 좋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는 코트 없이는 못 다닐 만큼, 영국 봄 날씨가 유난히 쌀쌀한데, 그래서 그런지 여름이 꽤 기다려진다.

난 원래 계절 중에 여름을 제일 싫어하는데, 여름이 이렇게 기다려지기는 처음이다.


추웠던 만큼 무덥고 쨍쨍한 여름이 와 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배를 내놓고 다니려면 내공 5년은 더 쌓아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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