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탕 Feb 13. 2023

이혼이라는 단어가 나를 지배하기 까지

서막


내 전 남편은 좋은 남편이었다.

나에게는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능력 있는 남편감으로서는 최고의 사람이었다.

일본어가 모국어가 아닌데도,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으로 들어가 일본어가 훨씬 더 유창한 나보다도 더욱 좋은 직장에서 적응하고

몇 년 동안이나 같은 직장에 다니는 꾸준함과 근면 성실함까지 갖춘 남편감으로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나는 부끄럽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꾸준함과 성실함, 능력에 편승하여 그를 통하여 성공을 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싶다.

7년 전, 유학을 마치고 일본을 떠나 6개월간 한국에 있을 때 느꼈다.

그때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전화를 했다.

그때 직감적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아.. 내가 한국에 있는 한, 이 연애는 지속할 수 없겠구나.

결국에는 채워지지 않는 그 빈자리 때문에 일본으로 다시 갔다.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와 잔뜩 움츠려 든 채로 지냈던 고등학교시절,

그리고 굶주린 일본 대학 생활은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마주 하는 것에 대해 공포심을 느끼게 했고,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채로 그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일이 하고 싶어서라기 보단, 하고 싶은 게 딱히 없었다.


그래서 그 거지 같던 첫 회사도 들어갔고 나는 커리어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편하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뭔가를 이뤄 낼 수 있을 거라는 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 내 인생에 서브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그러다 전 남편에게 프러포즈를 받았고,

나는 얼떨떨했지만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이 사람은 나에 대한 확신이 있나 보다"

라는 생각에 기뻤고,

그렇게 27살의 조금은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다.



.


이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이 사람에 대한 확신에 가까웠다.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사람이라면 나를 굶겨죽이진 않겠구나 라는 생각,

그는 가난한 학생이었던 나를 만날 때마다 대접해 주었다.

대접이라는 것이 유명한 브랜드백을 사주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카페를 가는 그런 평범한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걸 처음 했었다.

가난한 연애를 계속해왔던 나로선 이게 대접받는 좋은 연애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그게 편했다.

그리고 7년간 나는 그런 관계를 지속해 왔다.


전 남편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같이 만나면, 나는 투명인간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카탈루냐어도 배웠다.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나는 몇 년을 그곳에 있었는데 속하지를 못했으니

마음이 너무 공허했다.

그래서 2년을 배웠다.


결국엔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엔 그들을 위한 것이었다.

기뻐해 주길 바랐으니까, 그리고 나는 남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만족을 하며 그렇게 배움을 계속했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건 뭔지도 모른 채.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 나는 더욱더 공허해졌다.

곁에 있을 때는 잘 못 느끼지만, 남편의 대화방식은 차가운 편이다.

본인 말이 끝나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있더라도 굳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이야기를 끝내버리는 습관이 있다.

아무리 나에게 재미있는 얘기라도 본인이 듣기에 재미가 없으면 이야기 주제를 바꿔버린다.

그리고 불행히도 나의 이야기는 그에겐 재미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항상 이야기 주제를 돌리고 나의 이야기 보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관심을 더 주던

나의 이야기 속에서 다른 주제를 찾아 이야기를 돌려버리던 그가 너무 야속했다.

그래도 큰 잘못이 아니니까.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어도 그렇게 그냥 사는 거니까.

그냥 그렇게 서로가 다른 부분이기에, 본질적인 부분이라 말을 해도 고쳐지지가 않았다.

갑자기 개가 고양이가 될 수 없듯, 사람 본성에 대한 부분이라 정말 누가 잘못했다고 보기에도 힘들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외로웠다.

그는 내 옆에 있어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정적인 커넥션이 결여되어 있으니 당연히 잠자리도 좋지 못했다.

우리의 관계는 플라토닉 한 무엇인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새장에 갇힌 새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빈 공간을 다른 것들로 채워보려 노력했지만 채워지지 않았고,

그 이유를 내 안에서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