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이 그랬듯, 트링 에비뉴에서의 시작은 쉽지가 않았다.
고장 난 토스트기에 빵을 넣어 놓고 화상 회의에 들어갔다, 토스트기에 불이 붙어 화상 회의 중에 화재로 피난을 가기도 했고,
하우스메이트 중 한 명의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몇 번이고 잠에서 깨기도 하였고,
또 하우스 메이트가 음식물 처리를 잘 못하여 구더기가 생겨 집안이 파리천국이 되기도 하였다.
한 집에서 산다는 것 빼고는 공통점이 없는 5명의 사람들이 모여산 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하우스 메이트 중에서 스페인 사람인 온 마리아와는 마음이 잘 통해 밥을 같이 먹기도 하고 산책을 가기도 하며 친구처럼 잘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트링 에비뉴의 낯설었던 작은 방은, 점차 나의 오래된 물건과 새 물건으로 채워지며, 나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동거인의 물건과 취향을 생각하지 않고 나의 취향만으로 집을 꾸민다는 것이 너무 오랜만의 일이라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낯설었는데,
그 공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우기 시작하니,
이 4-5평 남짓되는 작은 공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방안의 요소 하나하나들에게 정성이 가기 시작했다.
결혼 생활 내내 입맛이 까다롭고 취향이 독특했던 동거인에게 맞춘 요리를 많이 하느라, 입맛도 없어져 결혼 끝자락에는 거의 먹지 못하다가.
이혼 후 몇 개월 만에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한 번은 냉면이 먹고 싶어 져 육수까지 내어가며 나만을 위해 요리를 했다.
그렇게 요리에도 점차 다시 흥미를 찾아 여자 혼자 먹는 밥상답게 눈으로도 즐겁고 입으로도 즐거운 요리들을 골라 요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피골이 상접했던 나의 얼굴에 점차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매일이 즐거움으로 가득하지는 않았다, 가끔 사무치는 외로움이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항상 침대에서 같이 자던 사람이 없으니, 더블베드가 턱없이 크게 느껴지고,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자다가 혼자 자려니 휑한 마음에 잠을 설치는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 내내 나를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나에게, 내 공간을 갖고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내 마음의 상처를 위한 테라피같은 역할을 해줬다.
나는 그 공간에서 나를 다시 알아가고, 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