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런던에서 찾은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
힘들게 구한 트링에비뉴에 위치한 나의 방.
계약을 무사히 끝 마치고,
드디어 이삿날이 밝았다.
이사 당일에는 에이전시로부터 셰어 하우스에서 지켜야 할 룰과 집 열쇠를 찾는 방법 등 상세한 설명이 적힌 이메일이 나에게 와있었고, 나는 그 지시대로 집 밖에 락커에 비밀번호를 입력하니 내방 열쇠와, 집 현관문 열쇠가 들어있었다.
이혼을 하고 살게 될 셰어하우스에 처음으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두근거림도 잠시, 저녁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집은 조용했고, 나 말고도 4명이 더 사는 집에 개미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조금은 환영을 해 줄거라 기대 아닌 기대를 해서 그런가 서글픈 느낌이 들었지만 짐을 풀고 쉬고 싶었기 때문에 위층에 위치한 내 방 쪽으로 향했다.
방향 감각이 제로였던 나는 똑같이 생긴 문 네 개를 보고,
어느 방이 내 방이었는지 기억을 할 수가 없었기에 또 에이전시가 보낸 메일을 확인해서 내방이 room4라는 걸 재차 확인하고 문을 열려고 열쇠를 꽂았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인가, 열쇠를 아무리 꼽고 돌려도 방 문이 열리지가 않았고, 에이전시로 연락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절간처럼 조용한 집 안에서 계속 열쇠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니, 내 옆방에서 나의 하우스메이트로 보이는 여자분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 어떡하지? 미안해 내가 너무 시끄러웠지? 나 새롭게 너의 옆방으로 이사 온 사람이야
- 아 반가워, 나는 마리아야, 열쇠 소리가 나서 나와봤어, 무슨 일이 있니?
- 음.. 에이전시에서 준 열쇠로 계속 문을 열러고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지 않네.
- 그럼 제이미한테 연락을 해봐, 그 사람이 비상연락망이야
- 그 사람 전화번호 좀 알려줄래?
- 응, 여기로 전화해봐, 미안한데 나 지금 번역 업무가 밀려서 제대로 된 인사는 나중에 하는 걸로 하자 행운을 빌어!
- 고마워 마리아
그렇게 마리아가 준 번호로 제이미에게 연락을 하자, 제이미가 15분쯤 뒤에 도착해 열쇠를 확인해 줬다.
처음에는 다른 열쇠를 준 건가 했지만, 그것도 아닌듯하다, 열쇠는 맞는데 문이 고장 나서 제이미는 나의 방문을 거의 뜯다시피 하였다.
나.. 오늘 밤에 문은 닫고 잘 수 있는 건가?
그렇게 불안하게 기다리기를 두 시간,
다행히 굳게 잠겨있던 문은 열려 있었으나 제이미는 한층 헐거워 보이는 문고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무 문고리가 낡아서 풀어서 윤활도 조금 하고 했더니 문고리가 헐거워졌어, 혹시 나중에 문제가 되면 다시 연락 주렴
첫날부터 당황의 연속이었지만, 드디어 집 도착 세 시간 만에 나의 방문을 열 수 있게 되어 안도감을 느끼려던 찰나,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나의 방은 처음 내가 봤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였다.
뷰잉을 갔을 적은 전에 살던 테넌트가 살고 있던 모습을 봤던 터라, 당연하지만 그 테넌트의 침구, 물건, 사진들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그 방은 예전의 나 같았으면 빈 방을 보면 내 취향대로 꾸밀 생각에 들떴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감정은, 온갖 집들을 전전하며 살던 내가, 이혼 후 처음으로 온전히 홀로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느낀, 공허함과 불안함이었던 것 같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느라 몸이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일단은 침구를 깔고 급한 대로 나의 책가지들과 컴퓨터만 늘어놓고 나의 영역 표시를 한채,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고민할 겨를 없이 그렇게 잠이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