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침샘 종양 이야기(3)

수술을 위한 한국행

by 노마드탕

종양 제거 수술을 하기 위해 한국행을 결정하니, 지금 생각해 보면 일이 술술 풀린 것 같으나, 걱정이 앞섰다.


수술 일정이 어찌 될지 모르고 티켓을 무작정 끊는 것은 좀 위험부담이 커 어쩔까 고민하던 중, 서칭 중에 발견한 한 사 병원에서 해외 거주자들(이미 진단을 받고 침샘종양이 확정된)을 위해 출입국 일정을 주면 수술 일정을 그에 맞춰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 병원의 간호사분과 연결이 되어, 한국 출국 일정에 맞춰 입국 후 3일 후 된 시점에 수술 전 의사와 면담, 그 후 2일 후에 수술이 결정되었다.

이때 내 모국의 생산성/융통성에 정말 감동했다.


그렇게 인천공항으로 입국을 하고, 원래였다면 바로 부산으로 가는데, 서울에서 일주일을 머물게 되었다. 그동안 못 봤던 서울에 사는 친구들, 지인들을 만나 회포도 풀고, 시차와 싸우는 일주일있었지만 재미있게 잘 놀았다.


그렇게 열심히 놀다 수술 당일,

너무 몸이 멀쩡한데 몇 시간 후에 안 멀쩡해진다는 생각을 하니 좀 이상했다.

첫 수술에 여러 사실을 알게 됐다.


수술 전에는 여러 가지 주사를 맞는다는 것

나의 혈관이 얇아서 잘 터질 수 있다는 것

내 몸은 꽤나 독한 항생제에도 잘 견딘다는 것


그중 제일 괴로웠던 것은 수술 전 링거를 꽂는 순간이었는데, 손목 쪽 혈관이 얇아서 여러 군데에 시도하다가 결국엔 손등에 꽂았는데 너무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간호사 분이 너무 미안해하셔서 나도 덩달아 미안해지는 순간!

수술전 바늘 꽂기 성공!

수술 자체는 수면마취를 하니, 수술이 끝난 건 한 순간이었고, 눈을 감았다 뜨니 이미 회복실에 누워 있었다.


꽤나 복잡한 수술이라는 말을 영국에서 들었기 때문에 수술 직후에 내가 걸어서 침대까지 갈 거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마취가 덜 깬 모습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니 아빠가 너무 웃어댔다.

쪼금 얄미웠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가 응원/간호차 부산에서 서울까지 운전해서 그 먼 길을 와줬다.

많은 힘이 되었다.

수술 직후 압박붕대를 하고 있어야 했는데 별로 불편함은 없었다


수술 부위가 크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과, 조직 검사 결과가 암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아직 까지는 계속 있었으나,

수술뒤에는 약간의 감각 상실과 욱신거림 정도만 있을 뿐 그렇게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너무 친절하신 병실의 간호사 분들이 케어를 계속해주시고,

입가 주변 수술한 거라 못 먹을 줄 알았는데 부모님이 사다준 초밥도 다 먹고 병원식도 다 맛없어하던데 나만 입이 달아서 와구와구 거의 다 먹었다.


영국에서 와서 그런지 너무 맛있던 병원밥..떡갈비, 무국, 물김치 전부 영국에서는 돈주고도 못사먹는 귀한 식단


건강체질이라 그런 건가, 내 옆자리에 나와 똑같은 수술을 받은 우리 엄마뻘 아주머니는 회복이 많이 힘드신 것 같았다. 사람마다 수술 후의 난생처음 겪는 수술인데,

내가 건강함에 감사하고,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영국에서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

또 무엇보다도 사랑받는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라는 점에 더더욱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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