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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베이스볼 May 03. 2017

사라지는 것에 관하여

마산 그리고 한일합섬




야구 서적을 들추다 보면 1980년대에 늘 마산이 언급된다. 아쉽게도 주인공은 아니고 변방으로, ... 했다더라 정도의 문장 두 세 줄에 그치고 말았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한일합섬' 이야기다. 



1989년 3월, 한일합섬은 마산시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 야구단을 창단하겠다고 밝혔다. KBO에 창단 의향서까지 제출하였는데 어쩐 일인지 돌연 4월에 포기 의사를 표명한다. 따라서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한일합섬이 빠지자 쌍방울 레이더스가 8번째 야구단으로 창단되었다. 만약 이 때 예정대로 한일합섬을 모기업으로 하는 야구단이 창단되었다면 마산 야구의 스토리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1980년대 한일합섬 마산공장 전경 (http://m.grandculture.net)





마산야구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우맨션'이라고 15층짜리 아파트가 있다. 시옷 자 모양의 이 건물은 80년대에 마산에서 보기 드문 고층 빌딩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그 곳에 살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층마다 중앙 로비가 있었다. 이 곳에서 창 밖을 바라 볼 수가 있었는데 주변이 모두 단층 주택이었기 때문에 꽤 멀리까지 내다 볼 수가 있었다. 로터리 건너편으로 내가 다니던 유치원이 보였고 그 옆에는 하늘로 높게 치솟은 굴뚝이 있었다. 한일합섬의 공장 굴뚝이었다.



어릴 때 정우맨션에 살면서 어찌 마산야구장을 몰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한일합섬 공장에 가리워져 야구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라고 답하였다. 삼각 지붕의 공장 건물이 촘촘히 들어선 대지는 어린 내 눈에 거대하고, 광활하고, 뜨거운 곳이었다. 섬유가 무엇인지 산업이 어떤지 아무 것도 모르는 나이였지만 창 밖으로 바라보는 공장단지가 굉장하다는 것만은 느낄 수가 있었다.



1964년에 세워진 한일합섬이 자리잡은 곳은 옛 마산시 양덕동 222번지, 현재 마산종합운동장 맞은 편인 매트로시티 아파트 단지가 위치한 곳이다. 회사는 창립 9년 만에 대한민국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1억 달러 수출에 성공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였다. 76년에는 근로자 수만 2만 7천명이 넘었다. 전국 7대 도시에 마산이 이름을 올린 건 한일합섬 덕분이라는 소리가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한일합섬에는 십대 소녀들이 많이 근무하였다. 이들이 학업을 병행 할 수 있도록 회사는 한일여실고를 세웠다. 현재 마산한일여고의 전신이다. 훗날 어느 지인께서 말하길, 제주도 출신인 본인이 서울로 가지 아니하고 마산에 터를 잡은 이유는 당시 한일합섬에 근무하던 누이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그 무렵 마산과 한일합섬은 지역민에게는 자부심이자 외부인에게는 기회의 땅과도 같은 곳이었다.





공장가동을 멈춘 90년대 한일합섬 공장전경 경남도민일보 (http://2kim.idomin.com/1698)




집안 어른들은 한일합섬의 소식을 자주 주고받았다. 회사가 한창 흥할 때도 그랬고 점차 하향세를 그려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조금 더 자라서 말귀를 알아들을 무렵에는 한일합섬 공장을 모두 걷어내고 아파트를 짓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자리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거기가 얼마나 넓은데 공장을 다 철거한다는 말이야? 허나 도심 한 가운데 자리한 9만 여 평은 대규모 주거 단지로 탈바꿈하였다. 번창한 시대가 빚어올린 영광의 그림자는 단지 모퉁이에 작은 비석으로 남겨졌을 뿐이다.






한일합섬 옛터 표지석 뒤로 보이는 아파트 자리가 공장 부지였다 (http://m.blog.daum.net/hanilman/113)






* 2015년 11월 30일에 개인 sns에 기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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