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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듬 Oct 20. 2023

카카오톡을 지웠다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용시간을 제한했지만 조금 더 구체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나는 불필요하게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을 지우기로 마음먹었다.(카카오 소속 플랫폼인 브런치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건방져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어플이라는 의미이니 좋게 받아들여주시길 바란다.)


카카오톡이 생겨난 이후,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건 당연한 일상이자 암묵적인 미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만큼 카카오톡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려워졌고, 피로감을 느끼던 나조차도 쉽게 떨칠 수 없을 만큼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알림을 꺼놓고도 괜히 어플을 들락날락 거리며 새로운 소식이 없나 들여다봤다. 핸드폰에서 삭제를 한 후에는 아이패드에 설치하는 편법을 써서 나 자신을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속이기도 했고, 그것마저도 지운 후엔 유일하게 남아있는 pc버전 카카오톡에 들어가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끄기도 했으며, 카카오결제나 인증서가 필요하다는 핑계로 다시 핸드폰에 어플을 다운받기도 했다. 그렇게 겸사겸사 쌓인 알림도 확인하고 들어간 김에 답장도 하면서 많은 시간을 쓰곤 했다.


sns는 내가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심리를 자극함과 동시에 시선을 이끄는 새빨간 알림으로 자연스럽게 행동을 유도한다. 아무 생각 없이 터치했다가는 한동안 그 안에 갇혔다는 자각도 하지 못한 채 갇히는 꼴이 되어버린다. 자신이 sns를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스크린타임을 확인해 보면 나처럼 놀랄 수 있다. 나 또한 기껏해야 몇 분, 길어야 몇십 분을 사용할 거라 예상했지만 실제 사용시간은 한 시간을 훌쩍 넘길 때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수차례 설치와 삭제를 반복하며 역시 무리한 도전이었나 생각하던 중 변화가 생겼다. 설치의 과정에 지친 나머지 확인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sns를 ‘귀찮다’는 이유로 들어가지 않기 시작했다. 시간을 억지로 제한했을 때보다 효과적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이 말을 자주 사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용건만 간단히.' 용건만 간단히라니, 문자가 무제한인 요즘 시대엔 너무 정 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겐 듣기만 해도 상쾌한 말이다. 용건만 간단히 하라는 건 굳이 스몰토크를 이어가거나 대화를 먼저 끝내면 상대방이 불쾌해할까 봐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용건이 끝나면 가볍게 마무리 멘트를 하면 되며, 어정쩡하게 대화를 끝내거나 의미 없는 말들로 연락을 이어나가지 않아도 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의 DM을 사용한 후로는 대화를 끝맺는 법을 잊어버린듯하다.


연락을 귀찮아한다고 해서 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고 이야기 나누는 게 즐겁다. 그러나 언제 어느 때나 사람들과 연결되어있고 싶지는 않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 묵혀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놓는 게 좋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이따금씩 만나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비언어적인 몸짓과 표정을 바라보며 진실된 대화를 나누고 싶다. sns로 그 이야기들이 가볍게 휘발 돼버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물론 누군가는 수시로 가볍게 맞닿아 있는 그 느낌을 더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쉽고 간단하게 서로 연락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공중전화를 사용하던 시절 콜렉트콜 1541 버튼을 눌러 다급히 신원을 밝히던 시절보다 언제든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지금의 생활이 훨씬 편리하다는 건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편리함에 잠식되면서 연락은 하기 싫고 귀찮은 일이 됐다. 아무 때나 주고받을 수 있는 연락이 지겨워졌고 수많은 음성과 텍스트에 질려버렸다. 굳이 직접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 알 수 있으니 시간 내서 만날 필요도 줄어들었다. 적절한 거리감이라는 건 사라진 지 오래다. 나는 이런 식으로 관계가 망가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전화와 문자가 설레던 시절이 있다. 알 요금제의 압박에 서로 연락을 아껴야 했던 시절, 한정됐기에 더욱 소중한 자원을 누구에게 얼마만큼 쓸 것이냐를 결정하는 건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었다. 몇 통의 문자가 소중했고, 줄어드는 무료 통화 시간이 아까웠고, 그만큼 그 시간이 값지고 즐거웠다. 그러나 더 자유로워지고 여유로워진 지금, 우리는 소중함의 가치를 잃어버리기 쉬워졌다.


요즘은 카카오톡 대신 문자를 즐겨한다.(물론 자주는 아니지만.) 이 시대에 다시 서로 문자를 주고받는다는 건 손편지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낭만 있는 일이다. 나는 아이폰 아이메시지에만 있는 특유의 효과음과 특수효과를 좋아한다. 아무리 귀엽고 독특한 이모티콘이 카카오톡 시장에 쏟아져 나와도 메시지의 간결함과 심플함에는 그와 비교할 수 없는 다른 매력이 있다.


핸드폰에서 sns를 지운 지금은 가까운 사람들이 더 소중하다. 연락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그리워지고, 만날 날을 기다리게 된다. 마주 보고 나누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새롭고 즐겁다. 좋아하는 사람과 멀어질수록 더욱 애틋해지듯이, 관계란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각자의 오롯한 시간을 보내고서야 서로의 만남을 최대로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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