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타자기를 통해 우리의 한글문화와 한글기계화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타자기와 한글문화 역사를 논함에 있어서, 공병우 박사는 빼놓고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다. 그동안은 공안과 개원 이후 공병우 박사가 타자기를 개발하기 시작한 시점의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 책에서는 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공병우 박사가 안과의사가 된 과정, 그리고 타자기 연구자 겸 안과의사로서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등등 다양한 일화들을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인간 공병우의 삶도 재조명하면서 그의 삶이 한글과 타자기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잘 풀어가고 있다. 저자인 김태호 교수도 세벌식 자판을 오래 사용한 분이지만, 책에서 세벌식 자판이 가장 우수하다거나, 두벌식, 네벌식 등 어느 자판이 우수하다는 비교보다는 과학기술사를 연구하신 학자의 관점에서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그 노력이 책을 읽으면서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공병우 박사에 관한 내용은 책의 전반에 걸쳐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필자는 이것이 김태호 교수가 세벌식 자판을 지지하는 주관적 입장이 과도하게 들어갔다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 만큼 저자가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점이 글에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저는 한글문화 및 한글기계화 역사 안에서 공병우 박사의 활동과 업적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많은 지면을 할애 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공병우 박사님 외에 타자기기계화 역사 안에서 언급되는 여러 인사들의 활동에 대해 현재 남아있는 관련 자료의 한계성 문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필자는 공병우 박사보다 김동훈, 장봉선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다른 한글타자기(특히 다섯벌식 같은) 개발자들의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에 대한 기대를 하면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아쉽지만 생각해 보면 그분들(장봉선, 김동훈)이 스스로 남겨두신 자신들의 타자기개발에 대한 기록이 없었거나, 전해지지 않았거나,,, 저자인 김태호 교수가 구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는 세벌식자판의 탄생 배경이나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 공병우 박사 삶과 환경, 그의 성향을 바탕으로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게 된 맥락적 배경 등 공박사님이 추구했던 한글타자기의 가치와 지향점을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장봉선, 김동훈, 백성죽과 같은 분들의 한글자판 개발과정의 지향적 가치가 어떠했는지 그런 맥락을 다 짚어보기엔 역사적 자료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의 내용을 다시 곱씹으며 생각해 보니... 장봉선타자기는 수동타자기보다 두벌식 인쇄전신기에 더 주력했다고 나온다. 정부에서 표준자판을 발표했을 때도 공병우 박사처럼 저항하기보다 순응한 것 처럼 보인다. 김동훈 선생은 사업가라는 언급은 있는데, 그와 관련한 대부분의 기록들이 공병우박사나 다른 이들의 서사에 함께 언급되는 짧은 일화들이 많고 스스로 남겨 기록이 없는 것 같다. (장봉선선생은 사진이라도 검색에 나오는데 김동훈선생의 사진 한 장 없어서 얼굴도 모른다) 정부에서 표준자판을 발표 후에는(네벌식을 만들어 판매한 노력은 있었던 것 같으나) 아예 타자기 사업을 접어버리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오히려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동훈 다섯벌식 자판(왼쪽)과 네벌식 자판(오른쪽)
그에 반해 공병우박사는 한글타자기 개발부터 돌아가시기까지 모든 생애에 걸쳐서 타자기와 한글에 대한 일화들이 많아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당시에 정부의 시스템으로 작동되어야 했던 많은 부분에서 특정 개인의 역량에 기대어 해소 되었던 부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공병우 박사의 사례가 특히 그러했다. 그래도 초창기 이원익 타자기, 송기주 타자기에 대한 일화들은 조금 더 알 수 있었고, 특히 송계범 타자기에 대한 내용들은 처음으로 알게 된 내용들이 있어서 나름대로 목마름을 해소하는데 유익했다. 아마도 앞으로 이 책보다 타자기의 역사에 대해 잘 정리된 책이 한 번 더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자기 덕후에게는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은 책
검색창에서 ‘타자기’ 관련한 책을 찾아보신 분이라면 아실것이다. 국내에는 ‘타자기’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 사실 거의 없다. 과거, 타자기가 한창 전성기이던 시절에 나온 타자기 자격증 학습서나 교과서, 그리고 한글기계화 연구에 관한 책들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희귀품이 되어 시중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타자기가 왕년에는 사무기기로 분류되며 많은 수요를 구가했지만, 아쉽게도 이제 더 이상 타자기는 사무기기로 취급되지도, 사용되지도 않는다. 그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져 간 골동품 취급을 받을 뿐이다. 필자 같은 소수의 취미가들이 타자기를 수집하며 사용하거나, 법무사 같은 곳에서 아직 전자타자기를 쓰는 소수의 쓰임이 있는 정도일 뿐이다. 그 때문에 이제는 예전만큼 타자기를 쓰는 사람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많지 않으니, 수요가 없는 분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러니 타자기에 관한 책을 쓸 사람도, 읽을 사람의 수요도 없어졌으니 타자기에 관한 책은 귀할 수밖에 없는 듯 하다. <한글과 타자기>는 이런 환경에서 나타난 책이라 그런지 필자와 같은 타자기 마니아들에게는 정말 오아시스 같은 선물이나 마찬가지이다. 김태호 교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책의 내용들은 김태호 교수님께서 유튜브 채널과 문화강좌들에서 타자기와 관련한 기계기술발달사에 대해 강연하셨던 내용들이 더 집약적으로 정리된 것이라 보면 될 듯 하다. 책을 읽기 전 후에 아래의 영상들도 시청해 보시면 예습 또는 복습도 되어서 더 유익할 것 같아서 아래 링크를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