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잔으로 시작한 나의 음주 이야기
한 잔의 술.
어떨 땐 애인보다 가깝고, 어떨 땐 가족보다 더 위로가 되는 이야기.
힘이 들 때, 기쁜 날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은 그런 날우리는 술을 마신다.
바싹 튀겨 아삭 거리는 식감이 매력적인 요리가 즐비한 곳 이자카야도 좋고, 육즙이 입안에서 폭포처럼 터지는 맛의 페스티벌 스테이크를 썰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다. 어김없이 그토록 화려한 음식과 함께 주문하는 한 잔의 세로토닌. 술과 함께라면 슬픔도 기쁨도 언제든 오케이다.
나의 음주는 언제부터였을까.
사실 나는 술 한잔만 마셔도 양 볼이 새빨개지는 소위 불리는 알쓰다. 이른바 알코올을 간에서 해독하지 못하여 얼굴에 티가 날래야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었을까. 결혼 전까지는 제대로 술을 마셔볼 기회조차 없었다. 물론 직장생활을 하면서 마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원하는 직종을 제멋대로 무시하듯 처음 취업한 회사는 건설회사였고, 내 예상보다 훨씬 술자리가 잦았다. 어쩌면 사실 직종과는 관계가 없을지 모르는 k 직장인의 비애, 잦은 번개와 정기회식. 대학은 여대를 나와 과음을 해볼 기회가 없었던 내게 직장문화는 다양한 음주의 세계를 안내하는 길목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다양한 술자리를 경험했지만, 20대 중반의 여직원을 취할 때까지 먹일 만큼 직장생활이 나쁘진 않았던 탓일까, 주량을 시험할 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통근거리 또한 엄청났기에 퇴근 후의 술자리도 회식외에는 없는 편이었다. 이른 출근에 지쳐 체력이 뒷받침해 주질 않아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또한 주말로모두 미뤘던 탓일까. 그렇게 술과는 거리가 먼 듯했던 내가 진정으로 음주의 세계에 발을 들인 건 정확히 말해 육아의 세계에 돌입해서였다.
알쓰였던 내가 결혼을 해서도 술 한번 제대로 같이 마시기 어려워했던 탓인지, 남편은 나를 위해 칵테일을 만들어 주었다. 처음 시작은 가볍게 오렌지 주스 베이스의 칵테일이었다. 말리부 리큐르를 이용한말리부 오렌지, 여기에 응용해 테킬라 샷과 곁들인 말리부 리큐르 그리고 오렌지 주스로 마무리한 테킬라 선라이즈. 그렇게 지평을 넓혀 새침한 맛의 자홍빛이 아주 매력적인 크랜베리 주스 베이스 코스모폴리탄, 비주얼부터 달달한 새하얀 색깔의 피나콜라다까지 남편과 함께 하는 주말의 해피아워 칵테일 시간이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매일 음주를 즐겼던 것도 아니다.
술을 마시면 금세 졸렸고, 남편 주량에 한참을 못 미쳐 그만 녹다운되서는 먼저 잠에 빠지곤 했기에 미안하지만 우리 남편에게는 다소 지루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눈 뜨면 날 맞이하는 다음날 아침의 해.
그러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신혼 시절 칵테일을 함께 하던 시간들은 곧이 곧대로 육아에 전념해야만 했고, 평일에 육아로 지친 심신은 주말이 되서도 여전히 피곤에 절어 술 마실 시간을 허락해주질 않았다. 다만, 상황이 급변한 것은 아이가 밤잠을 가리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밤잠을 가리기 시작하자 내게 펼쳐진 자유의 시간,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음침한 야밤의 시간이었다.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아이를 보살피느라 노곤한 몸을 이끌고 그 늦은 밤 무슨 취미생활을 할 수 있을까. 내게 허락한 그 무엇도 없었다. 다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 캔의 맥주의 찬란함 뿐. 하루동안 답답했던 내 속을 다독이듯, 시원한 맥주 탄산의 청량함이 나를 위로해 줄 뿐이었다. 육아를 하는 모든 엄마들은 알 것이다. 그 엄청난시원함의 매력이 무엇인지.
이유는 다분했다. 사실 내가 술을 이토록 사랑하기까지 무슨 이유가 필요하랴. 굳이 찾자면 그거였다. 육아 고충에 대한 토로 혹은 남편의 잦은 야근으로 인한, 결국엔 독박육아로 귀결되는 나의 답답한 현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힘든 시간들을 토닥이듯 곁을 함께 해준 녀석, 한잔의 술. 사실 별 것도 아닐 수 있는 '한잔의 세계'를 논하는 오늘 나는. 또한 역시 한 잔의 와인을 곁들이며 회고해 본다. 나의 술은 내게 어떤 존재일까.
곰곰이 돌이켜 보면, 내게 술이란 아무도 위로해 줄 수 없는 그런 빈자리를 외롭지 않게 해주는 유일한 친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