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정돈의 삶
청소기가 망가졌다. 신경이 쓰인다. 고칠 때까지 유선청소기를 쓰면 그만이었지만, 괜스레 짜증이 나는 것이다.
18년도였을까,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기 위해 연신 등을 구부리고 힘겹게 청소하는 나를 지켜보던 남편이 무선청소기를 사주겠다며 내손을 이끌고 집 근처 일렉트로마트를 찾았다. 첫째를 낳고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던 날 보며 은근히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선뜻 사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우린 그때 외벌이였고, 전세대출을 갚느라 여념이 없었던 지라 뻔히 아는 형편에 최신식 무선청소기라니. 돈백이 우스운 것도 아니고 내 주제를 너무나 잘 아는 터라 사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그 말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그때쯤이었을까, 남편이 회사에서 꽤나 괜찮은 상을 받았다. 그 덕에 부상으로 상품권을 좀 받아왔던 것 같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데리고 청소기를 사주러 성큼 발걸음을 옮긴 그가 너무나 고마웠다. 어떤 마음인지를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정리정돈에 진심인 편이다.
신혼 때부터, 잔뜩 흐트러진 집구석을 그냥 두지를 못했다. 그 때문인지, 병적으로 정돈에 집착하였고, 쌓인 설거지를 보면 한숨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공무원 공부를 하고 있었던 나이기에 온 정신을 쏟아부어 집중해야 했지만, 남편이 출근하면 먼저 청소기로 집안 순회를 한다. 구겨진 이불을 정갈하게 개어 정리하고, 물걸레로 하루 동안 소복이 쌓인 먼지를 곱게 닦는다. 빨래는 매일, 잊지 않고 세탁기를 돌린다. 어느 정도 1차 정리가 끝나면 주방을 시작한다. 설거지를 시원스레 하고 싱크볼을 빡빡 닦는다. 음식물 쓰레기는 쌓이기 전에 냉큼 버리고 온다. 그새 다 돌아간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탁탁 야무지게 털어 건조대에 질서 정연하게 널어놓는다.
이 과정을 매일같이 반복한다. 청소를 마치고 나면 어언 오후 1시경. 정적이 흐르는 집안을 재즈 음악으로 흥을 돋우며 늦은 점심을 먹는다.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공부를 위해 펜을 힘껏 쥐어본다.
아이를 낳고 나서 딱히 달라질 것도 없었다.
정리정돈의 삶은 그대로 이어졌다. 다만 할 일이 조금 많이 늘어났을 뿐. 아이를 낳고 나서는 전업주부의 삶을 살았던 지라, 청소가 결국 내 삶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에게 분유를 타 주고 나면 밀린 집안일을 시작한다. 기어 다니는 아이가 다치지 않게 청소기를 빠르게 돌린다. 젖병을 설거지하고 나면 열탕 소독을 한다. 조금 많이 달라진 게 있다면, 아이의 이유식 만들기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설거지는 배 이상이었다. 그래도 자식이라고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닭 육수를 내고 아기 동그랑땡을 직접 만들고, 아플 땐 배숙을 해준다. 1일 2 메뉴를 위해서는 푸드 프로세서를 두세 번씩 돌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설거지통은 이내 산처럼 쌓이게 된다. 그 많은 설거지를 다 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은 매일 같이 늦었고, 외로이 독박 육아를 하고 아이가 잠에 들면 그제서 혼자 마시는 맥주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상상지 못했던 '엄마'의 빡센 삶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깔끔하고 싶었다.
아기 때문에라도 더 깨끗하고 싶었다.
지쳐 쓰러져 그만두고 싶어도 멈추지 못했다. 집안을 항상 정리 정돈하고 예쁘게 가꾸었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밖에서 일에 치여 지친 그에게 꼬박꼬박 요리를 해주었다. 집안이 정리되지 않으면 기분까지 우울해지는 것이었다. 내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치웠다.
지나친 깔끔을 떨어서였을까, 남편과 가끔 마찰을 빚기도 했다.
남편이 이따금씩 집안일을 도와줄 때면, 내 성에 차지 않아 다시 한적도 있었다. 다 정리해 둔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어지럽힌다 치면 그에게 까칠하게 대했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며 생긴 서로의 힘든 감정을 토로하지 못해 쌓인 불만을 괜한 트집을 잡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나는 정리에 더욱 집착했고, 그럴 때마다 남편과 자꾸만 부딪히는 것이었다.
나의 정리 열풍이 조금 진정이 되었던 것은 아마 둘째를 낳고나서부터 였을 거다. 이제는 물리적으로 아이 둘을 챙기며 이전처럼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몹시도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이제 막 저지레를 시작한 둘째가 집안 온 서랍을 다 뒤지고 다니는지라, 따라다니면서 작정하고 치우지 않는 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부터는 청소할 시간이 주어지기도 했지만, 워낙 내 시간이 없는 터라 그 시간만큼은 오로지 나를 위해만 사용하고 싶었다.
아마 내려놓았다는 표현이 정확했을까. 아직 한참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며 예전처럼 '완벽에 가까운 깨끗함'을 연출하기엔 너무나 고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된 것 같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이점도 있다. 어차피 다시 어지럽힐 곳, 예를 들면 아이들의 놀이방 같은 곳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나니 애들에게 딱히 화도 안 나고 원 없이 자유롭게 놀아라 하는 심정으로 풀어놓을 수 있으니 참 좋은 것이다. 예전 같으면 장난감을 치우고 있는 도중에 어지럽히고 있는 아이에게 괜히 까탈스럽게 굴기도 했을텐데, 그런 점들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치워야 하는 부분에만 집중을 한다.
매일 치워야 하는 주방,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지기가 무서운 거실 바닥, 이불 놀이를 하느라 정신 없어진 침대 정리, 매일같이 산처럼 쌓이는 아이들 빨래 정리. 내려놓으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이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있을까. 청소하면서 나도 모르게 신경 쓰는 부분들이 사라지니 훨씬 사람이 유해 지기도 한 것 같다.
가끔은 깔끔하지 않은 집에서 내 자신에게 진심을 다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 감사하다. 깨끗하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지저분해도 예민해지지 말기로 결심했다.
청소기가 망가졌다. 예전 같으면 불편을 감수할 여력이 되질 않아 대번에 A/S 센터를 찾았을 것이다. 수시로 지저분해진 바닥을 청소하기 위해서 필수인 무선청소기가 망가지다니. 절망에 절망을 거듭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것 같다. 그래 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보지 하는 심정으로 청소기는 이틀에 한 번만 돌려보기로 한다.
대신 생긴 여유의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또는 내게 집중하기로 했다.
그간 읽지 못했던 책도 원 없이 읽어보고, 이렇게 브런치에 1일 1 에세이도 써보고, 조금 지저분해도 괜찮으니 주방일이 귀찮아서 도전 하지 못했던 요리도 만들어보기로 한다.
청소하지 않는 삶. 우린 가끔 그런 시간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한 하나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잠시 유난히 집착하는 일상에서 거리를 두고 멀리서 지긋이 바라보자. 지나친 열정을 살포시 내려놓고, 그 시간 오롯이 날 위해 사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자 내게 찾아온 또 다른 행복. 열렬하고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 엎어져간 김에 쉬어간다고 우리들에겐 그런 여유가 필요하다.
청소를 내려놓자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청소기는 망가졌지만, 나쁘지 않다. 이왕 망가진 청소기, 에잇 잘됐다 싶어 쉬어가기로 했다.
주말 저녁 월요일 맞이 대청소를 마치고, 덕분에 오늘은 조금 편안히 지내야겠다.
아이들을 위한 달콤한 카레에 김이 폴폴 솟아나는 새 밥을 짓고, 나온 설거지 거리는 내일 치우던가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