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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돌보 Sep 05. 2024

낙원은 어디에도 없지만

여행에 마침표를 찍다

처음부터 낙원을 바랐던 건 아니었다.

그저 우린 우연히 들른 여행지에서 잠시동안 숨을 돌렸던 게 전부였고, 여느 여행의 말미처럼 집에 가기 싫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바람에 나부꼈다. 쨍쨍한 태양빛에 도드라진 광대가 빛나고, 내놓은 손등이 그을렸다. 내일이면 가야 되는데, 이제 막 도착한 것처럼 바빴다 마음이. 7일의 시간은 그렇게 바람처럼 흘러갔다.


시드니의 하늘은 맑았다. 청명한 하늘 아래 적당히 빽빽한 고층건물의 숲 속에서 이를 향해 잇는 페리들이 늘어져 있다. 도망치듯 떠난 우리의 터전으로부터 헤매었던 것이 분명 낙원은 아니었을 거다. 일탈이었을까, 환상이었을까, 이도 아니면 한낱의 객기를 부린 건 아닐까.


잠시 집이라 칭할 호텔 방에서 포장해 온 음식에 과실향이 매력적인 와인 한잔을 내었다. 뭐가 좋은지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못내 즐거웠다. 방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항구 모습을 보자니 마침 외국에 있음을 실감케 하였다. 곧 이 시간을 마칠 기분에 휩싸이자 이내 아쉬움이 발끝부터 덮쳐왔다.


찾아야 한다면 장소는 중요치 않았을 텐데, 나는 집착했다. 여기는 안된다고 고집을 했다. 여기서는 안될 것 같다고 스스로를 옭아맸다. 주변의 익숙한 것들의 덩어리들을 애써 떼어내기 위해 어지간한 노력을 했다. 남편은 그랬다. 우리의 '곳'만 아니라면, 괜찮아질 수도 있어. 늦은 나이일지도 모르겠지만, 일종의 모험을 떠나자 했다. 새로운 것을 좇기에 너무 낯설어 무섭기도 했지만, 일순간 설렜다. 그렇게 등 떠밀려 결심한 이민의 물결에 우리는 몸을 실어 드디어 닻을 올린다. 우리가 좇은 것이 결국 낙원이었을까.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말했다.


" 다 떠나면 고생이야. 말 다르지, 문화, 가치관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다 다르잖아. 안정적인 것들 놔두고 뭐 하러 그런 모험을 해.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모아 저축 잘해서 애들 잘 키워놓고 늘그막에 여행 다니면 얼마나 좋아."


맞아. 어쩌면 철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어디 이민이 보통일인가. 젊은 날의 경험 삼아 떠난 워홀이나 부모님 돈으로 떠난 유학길도 아니고 말이야. 더구나 부모님 하고 지낼 시간도 많지 않을 텐데. 정 가고 싶다면 몇 년 살다 오면 그만 아니야?  


하지만 마음이 그렇지 못했다. 이유 없이 이곳저곳 아팠다. 다녀온 여행이 단지 아쉬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한번 보고 잊지 못할 첫인상에 빠져 허우적대던 지난날의 정신 나간 사랑 같은 것도 아니었다.




드넓은 바다를 건너 다녀온 타룽가주가 문득 떠올랐다. 좁은 우리에 갇혀 허우적대는 삶의 모습은 모두가 같겠지만.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준 그곳을 향해 나는 내달리기로 했다. 우리를 둘러싼 익숙한 이 모든 것을 툴툴 털어내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낙원을 찾아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국이 싫어서도 아니었다. 새로운 시작점이 필요했다. 지긋지긋한 우울증에서 벗어날 구질구질한 핑곗거리가 단 하나라도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했던 어제의 우리도 여기 있었고,

첫걸음마를 떼던 흩날리는 봄날의 강가도 여기에 있었지만.


우리는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사직원을 쓰기로 한다.


그렇게 나는 자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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