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위하여'

by 돌아온 돌보

붉은 과실 맛이 촘촘히 혀끝을 찌른다. 오크향이 진하게 풍기고 초콜릿 맛이 입가에 감돌며 정향이 느껴지는 풀바디 와인. 오늘의 품종은 그 이름도 유명한 카베르네 소비뇽. 신대륙 와인으로 골라보았다.


"술 좋아해요?"

라는 질문에, 한시도 주저하지 않고 즉답할 수 있다.

"술자리 말고, 술 마시는 거 무지 좋아해요."




남편은 내게 최고의 술친구다. 그는 오크향이 강한 종류의 술을 즐겨 마신다. 부드러운 블랜디드 위스키보단 오크 터치가 강한 싱글몰트, 아니 세상 제일 좋아하는 건 버번위스키이다. 나 또한 그와 취향이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가 훌륭한 알코올 메이트가 되었나 보다.


집에서는 술장에 눈길을 주면 안 된다.

오늘은 어떤 녀석을 골라볼까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크리미한 텍스쳐와 버터의 풍미가 감도는, 오동통한 새우살이 반겨주는 스파이시한 후추 가득 크림 파스타를 만들어보자. 오늘 메뉴에는 크림 맛을 중화시켜주는 파워풀한 풀바디의 나파밸리 와인이 좋겠구나.


"오늘 늦어?"

"아니, 오늘은 일찍 갈 거 같은데, 왜?"

"새우크림 파스타 만들어 놓을게. 마실까?"

"안 돼."


단호한 그 한마디에 잔뜩 시무룩해진다. 하지만 그냥 물러설 수는 없지, 퇴근한 남편이 샤워를 마친 후 식탁에 앉자마자 준비한 음식 옆에 와인잔을 뻔뻔하게 꺼내놓는다.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에 빠질 수 없지."

"안되는데"


이미 디캔팅을 마친 와인을 꺼내놓자, 하는 수 없이 와인잔을 받아 든다. 내가 작정하고 주문한 와인.




와인은 내게 사랑이다.

와인을 음미하며 느낄 수 있는 혀끝의 강렬한 소나타, 서로가 붉혀내는 우리의 회담을 다독여준다는 듯 오늘 하루를 위로해주는 센티멘탈의 순간. 그래서 우리는 와인을 사랑한다. 와인이 주는 소중한 시간의 상자 속에서 하루의 고된 피로를 씻어낼 수 있기에. 무심했던 하루, 이 순간만큼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와인의 마법을 사랑한다. 잔의 수려한 곡선 위로부터 떨어지는 새초롬한 진홍빛의 다리 그 사이에서 차오르는 바디감은 우리들에게 세르토닌의 만찬을 선사한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 와인 마시는 날.

와인을 곁들이며 가지는 몽글몽글한 시간과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은 한주 중 가지는 단 하나의 위로의 순간.

생각해보니 오늘도 주말이구나, 갑자기 맥박이 빠르게 느껴진다. 합법적으로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