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순간

이탈리아 여행기

by 돌아온 돌보


매일 만보씩 걸었다. 우리의 이탈리아 여행을 위해.

여행의 힘은 바로 다리에 있다고 생각했다. 걷기를 통해 하체를 단련했다. 그래야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름, 해가 길었던 한여름의 뜨거운 볕을 따라 우리는 로마로 향했다. 가기 전 얼마나 숱하게 이탈리아 영화를 감상했는지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어느 곳보다도 설레어 기다렸던 것 같다. 왜냐하면 비행기 티켓을 무려 9개월 전에 구매하였기 때문이었다.


전전긍긍하였다. 갈 수 있을지 정녕 몰랐다. 너무 오래전에 티켓을 끊어놓은 탓에, 저 멀리, 멀게만 느껴졌다. 겨우내 찐 살을 빼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매일 만보씩 찍으며 여행을 위한 체력 점검에 나섰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




로마. 비행기는 13시간의 장시간 비행을 마치고 활주로를 따라 사뿐히 내려앉았다. 어렸을 적, 콜로세움의 장엄한 위용을 사진으로 목격하고선 언젠가 저곳을 가야겠다며 굳게 다짐했었더랬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나온 위풍당당한 모습에 얼마큼 반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렇게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으니, 내심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로마 테르미니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렇게 마주한 로마의 첫 모습은 어둠의 적막을 비추는 별빛이 내려앉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렇게 멋지게 해가 진 로마의 감상도 거둔 채, 서둘러 호텔에 체크인을 하였다.


인생 최고의 파스타와 일리 에스프레소


우리의 첫 여행지는 로마가 아닌 베니스였다. 렌트 여행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다음날, 겨우 칫솔질만 하고선 베니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맛보게된 우리의 토마토 파스타. 적당히 익힌 방울토마토 사이로 구수한 즙이 입안 가득 채운다. 놀랍게도 함께 멋지게 어우러지는 파스타 면의 생생함이 입 속 감각을 일제히 일깨운다. 포크로 탱글탱글한 파스타면을 돌돌 말고선 후루룩 단숨에 삼키는 대신 천천히 음미해본다. 신세계다. 고명이라고는 방울토마토가 전부인 이름 그대로 '토마토 파스타', 이것은 맛의혁명이었다. 이렇게 맛있을 일인가. 드디어 우리가 파스타 본국에 도착했구나.

산마르코 종탑에서 내려본 베니스 전경과 맥주 한잔

물의 도시, 베니스는 이국적인 풍경 그 자체였다. 대운하를 따라 즐비한 특색 있는 양식의 건축물들은 바라만 봐도 흥미로웠다. 우리는 리알토 다리를 지나쳐 산마르코대성당이 있는 광장을 찾았다. 광장을 삥 둘러싼 100년도 더 된 카페들이 줄지어 있었다. 시간여행을 온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사진을 찍어댔는지 말도 못 한다. 이런 역사적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말 못 할 행복이 밀려들었다.

사진 찍는대로 멋진 베니스

숙소는 베니스 중심부 대신 기차로 한정거장 떨어진메스트레 지역에 잡았다. 본섬에서 놀다가는 숙소로한참을 이동해야 하는 아쉬움이 따랐지만, 대신 그만큼 더 저렴하고 쾌적한 숙소를 제공받은데 위안을삼기로 했다.


알찬 베니스 여정을 끝내자, 우리에겐 남부 투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끌고 북에서 남으로 쏘았다. 얼마간 달리자, 3대 미항이라는 나폴리항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해안가를 달리며 콧등을 스치는 짠내 가득한 바다내음에 미치도록 설렜다. 안드레아 보첼리의 음악을 크게 틀고는 창문을 끝까지 열었다. 선율도 우아한 그의 음악이 바람결을 타고 은은히 퍼져나갔다. 달리는 차 안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손바닥을 쫙 피고는 손가락 사이사이를 비껴가는 더운기운을 잔뜩 느껴본다. 준비해둔 카메라의 동영상 모드를 켜놓고선 평생 간직할 추억을 저장해놓는다.이 순간, 지구상에 우리 단둘이 남겨진 기분, 그런 기분. 하늘에 감사했다. 이런 멋진 순간을 향유할 수 있음에 무한히 감사했다.

남부도시 프라이아노와 우리의 객실


멋진 바다를 낀 해안 도시, 프라이아노.

차에 도착하자, 미리 예약해 둔 호텔 마르게리타의 여주인이 '마담'을 외치며 즐겁게 마중 나온다. 베니스와는 또 다른 느낌의 바다가 우리를 맞이한다. 바다에 부딪히듯 퍼지는 노을빛의 산란이 찬란히 부서진다. 은은한 주황빛이 하늘을 삽시간에 집어삼키고는 오렌지맛 추파춥스의 영롱한 색깔마냥 하늘을 물들게 한다. 열렬히 타오르는 아름다움을 목도하자, 금시에 얼굴 언저리를 타고 흐르는 눈물 한 줄기.

호텔 테라스에서

바다를 한없이 만끽하였나 보다. 어느새 떠날 시간이 우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 들어왔다. 7박 9일의 일정 동안, 베니스, 피렌체, 볼로냐, 나폴리, 프라이아노, 로마를 차례로 둘러보고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차례가 찾아온 것이었다. 떠나는 날 아침의 푸른빛 햇살이 어쩐지 처연하게 느껴졌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했던 지난 우리의 순간순간들. 고마웠다며 슬며시 그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읊조려본다. 따스한 온기가 그와 나의 손에 서서히 스며들다가는 땀으로 축축해질 때까지 손을 놓지 않고 나란히 걸어간다. 어느새 마지막 날, 젤라또 하나를 다정히 들고선 로마 시내를 마음껏 활보해본다.


신혼 2년 차, 사랑했고 사랑한다. 지금도 생생히 그려볼 수 있는 지난날의 근사한 이탈리아와 그곳을 함께 자유로이 누비던 우리의 대중없는 발걸음. 포스트 코로나 시대 속 그리움의 끝을 붙잡아 회상해보는 그날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하나씩 나열해본다.

이탈리아에서.

혹은 로마에서, 베니스에서, 피렌체에서.

전 세계인의 애정을 듬뿍 받는 이곳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기억을 소환시키는 사무치게 그리운 곳이 아닐까 싶다.


내게는 어릴 적 콜로세움의 로망을 드디어 마주한 곳이자, 사랑하는 남편과 스페인 광장에서 다음 스페인 여행의 꿈을 약속한 곳이자, 희귀 난치병에 걸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엄마와의 잊지 못할 여행의추억을 다진 곳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애타게 사랑하는 특별한 여행지이다. 이탈리아를 내게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그들과 다시한번쯤, 찾아볼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