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으로 놀러 오세요

by 돌아온 돌보


아무것도 없이 결혼했다. 17평 남짓 거실 겸 안방에서 티비도 없이 신혼살림을 꾸렸다. 차도 없는 뚜벅이었지만, 저녁이면 노트북을 펼치고 밀린 미드를 보며 맥주 한 캔을 나눠마시는 나날들에 진한 행복을 느꼈다. 2014년 봄, 봄, 봄. 신혼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 작지만 소중했던 우리 집을 소개합니다.




외벌이였다. 남편은 이제 갓 입사한 지 6개월을 넘긴 초짜였고, 월급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없는 돈에 억지로 영끌해서 마련한 작은 우리 집에서 나는 살림에 충실한 공시생이었다. 남편이 출근하거든 집안 구석구석을 관리했다. 싱그러움이 물씬 풍기는 화초를 가꾸는 것 마냥 집을 아름다리 가꾸었다. 빨래는 쌓이는 법이 없었다. 그날 나온 살림은 그날 모두 해치우는 편이었다. 한창 셀프 인테리어의 인기가 휩쓸기 전, 우리는 웬일인지 그저 우리 집을 직접 꾸미고 싶었다. 나름대로 신경을 쓴 친환경 페인트로 도색을 하였고, 그 위에 바니쉬까지 덧바르는 정성을 다했다. 몰딩 부분을 다른 색으로 칠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했으므로 하나의 색을 통일하여 칠했다. 삐뚤빼뚤 이제 막 글씨를 배우는 아이처럼, 집안 곳곳은 우리가 직접 꾸민 흔적들로 가득했다. 화장실과 주방만 부분 인테리어를 하고선, 우리가 직접 인테리어 할 수 있는 부분은 스스로 고쳤다. 그래서였을까, 미처 완성되지 못한 느낌이 들긴 했어도 지금껏 살아온 집 중에서 가장 정이 가는 집임에 분명했다. 생각만 해도 애틋한 우리의 첫 집, 신혼의 사랑이 가득했던 낭만적인 공간.


신혼 첫집과 내가 애정하는 장미

술에 진심이었고, 없는 살림에도 술 살림은 늘어만 갔다. 술이 약한 나를 위해 칵테일을 말아주던 남편이 남대문에서 하나씩 사모으던 리큐르로 어느새 주방 벽 한 면이 부족할 만큼 꽉 차게 되었고, 어느새 우리 집 주방의 인테리어의 한 부분처럼 장식하게 되었다. 소박하지만 향기가 가득했던 우리 집, 언제나 남편은 퇴근길에 꽃을 사다 주었다. 그 꽃이 제 향을 미처 잃기 전 새로운 꽃을 사다 주었고, 나는 어느새 우리 집의 꽃은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름다운 꽃에 걸맞은 집이 되도록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하는 느낌으로 가꾸어주었다. 그래서 언제나 집에 들어서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향긋한 집이 되도록 늘 노력했다. 표면적으로는 공시생이 나의 '업'에 가까웠지만, 실은 나는 살림하는 주부였고 그 의무를 저버린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다. 아파서 앓아눕기 전까지 청소했으니까.


주방 한면을 차지한 리큐르와 오늘의 술
집에서 내리는 커피만큼 최고의 맛도 없다


그러다 늘어나는 살림으로 집이 좁게 느껴졌다. 2년 여 정도를 살았을까,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우리는 집을 알아보았고, 같은 단지 내에 평수만 넓은 곳의 전세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였다. 뛸 듯이 기뻤다. 첫 집에 든 정 때문에 떠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새롭게 시작할 생각을 하니 잔뜩 설레었던 것 같다. 드디어 없는 살림도 채워 넣어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그동안 티비 없이 지냈던 우리의 숙원사업은 바로 티비를 장만하는 것이었다. 두근 대는 심정으로 가전제품을 보러 다니는 모습이 꼭 신혼부부 제 모습이었다. 우리는 결국 최신식 50인치 와이드 티비를 마련하였고, 아울러 티비장도 구매하였다. 취향은 꽤나 서로 닮아있어서 고르는 문제로 부딪히는 법이 없었다. 그동안 책장이 없어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야 했던 서글픈 처지를 벗어나고자 책장도 마련하였다. 이제 마음껏 새책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두번째 집
새로 마련한 책장과 역시 술


역시 공부는 작파했다. 예쁜 집, 좋은 냄새가 코를 씰룩거리는 향기로운 집이 되기 위해 애를 썼다. 저녁이면 일찍 퇴근하는 남편을 위해 맛 좋은 저녁을 차려놓고는, 깨끗한 집안을 선보이곤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만족이 컸던 것 같다. 그만큼 노력했고, 이사 갈 때면 늘 집주인에게 깨끗이 썼다는 말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남편의 회사가 저 멀리 우리 집 반대편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그 때문에 출퇴근 시간에 상당한 애로사항이 있었고, 우리는 또다시 이사를 결심해야 했다. 그렇게 또다시 우리는 전세살이를 이어나갔다. 그 집에서 아이가 태어났고, 둘째 아이가 생겼다. 우리 집은 아니었어도, 행복한 일들만 가득했던 집이었다. 그래서 잊지 못하는 소중한 우리 집.


세번째 집과 이사가기 전날의 노을


내리막길이던 집값은 어느 순간 고공행진 하기 시작했다. 아뿔싸 이러다 집 없는 서러움에 사무칠까 전전긍긍하던 차에, 영끌하여 집을 장만하기에 이르렀다. 소위 은행집이었지만, 드디어 제대로 된 우리 집을 품에 안은 것이다. 매달 갚아야 하는 대출 이자로 몸살을 앓지만, 일단은 눈앞의 인테리어를 하는데 온 집중을 해보기로 했다. 신이 났다. 머릿속은 온통 집 꾸밀 생각으로 가득했다. 작게는 인테리어 소품부터 크게는 집 안 인테리어까지 어떻게 할지 하나하나 남편과 신중을 기하였다. 매일 인테리어 유튜브를 찾으며 공부했다. 그렇게 우리 네 식구 완전체가 되어 마주한 첫 집, 우리 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완성된 우리집


오늘도 난 청소를 한다.

우리 집 식구 누구든, 현관문을 열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집이 되기를 바라기에 정성을 다해 집을 꾸민다. 설거지통에 설거지가 쌓일 일이 없고, 집 안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가 없게 해야 한다. 우리 집 쪼꼬미들이 나를 가만히 둘 틈을 주질 않지만, 어지르는 대로 쫓아다니면서 최선을 다해 치워 본다. 깨끗한 집안에 앉아 향유하는 집안의 정갈한 공기가 나를 기쁘게 한다. 나는 깨끗하고 예쁜 집을 너무나 사랑한다.


우여곡절 끝에 집을 마련하긴 했지만, 내 집이 아니었어도 우리가 사는 공간, 언제나 우리만의 예쁜 공간으로 꾸미며 살아왔던 것 같다. 분위기 좋은 카페 남부럽지 않게 가꾸어 왔다. 그야말로 나는 우리 집 단골손님이다.


집에서 내린 향긋한 커피 향에 취해본다. 가끔은 이 알맞은 공간에서 지인을 초대하여 즐겁고 정겨운 시간을 가져본다. 그 어느 곳 보다도 소중한 나의 집, 바로 즐거운 우리 집에서 말이다.


우리집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