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춘삼월이 미처 오기 전 봄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날,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부모님의 정든 눈물이 무색하게, 입꼬리가 내려가질 않던 우리 둘, 그저 좋아 자꾸 웃음이 새어져 나오던 그날, 수국이 가득한 버진로드를 걸었다. 사랑해서 결혼했고, 아무것도 재지 않았다. 학생 때 만나 집 없이, 무일푼으로 시작했다. 그저 사랑만 했던 기억들. 어느새 아이 둘의 엄마가 되어 한껏 풀어내 보는 묵은 신혼일기.
우리의 니스로 향했다. 니스까지는 직항이 없기에 파리를 경유해서 가야만 한다. 그때만 해도 남부 프랑스에 대한 여행정보가 부실했다. 여행책자조차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서점을 뒤지고 뒤져 겨우 찾은 '프랑스'편에 짤막하게 나와있는 정보에 기대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륙을 위해 비행기가 엔진을 켰다. 순식간에 기내는 시끄러운 엔진 소리로 가득 찼고, 귀는 먹먹해져만 갔다. 기체가 속도를 힘껏 올린다. 어느새 떠오르더니 가슴이 울컥거린다. 그렇게 하늘에 몸을 내맡겼다. 7박 9일의 여행이 그 서막을 여는 순간이었다.
파리에 도착했다. 부드러운 착륙, 그러자 기내에선 라비앙 로즈가 흘러나와 귓가를 맴돌았다. 4년 만의 파리였다. 이번엔 남편과 함께다. 손을 꼭 맞잡고는 두 눈동자를 다정히 마주치며 다짐했다, 잘 살자며.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오자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파리의 밤거리가 펼쳐졌다. 주홍빛 가로등이 손전등처럼 길가를 비추고 어둠을 달리는 버스 안은 지친 여행객들의 설레는 숨결로 가득찬다. 그 속에서 차창밖을 지긋이 내다보자, 아 내가 드디어 도착했구나 하며 절로 나오는 탄성. 이렇게 내가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는구나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을지도.
파리에서 깊은 밤을 견디고는 푸른 새벽, 니스행 비행기 탑승을 위해 서두른다. 비행기는 육지를 떠나 지중해를 돌아 니스에 당도한다. 겨울의 끝자락 그 차디찬 기운이 무색하게 노오란 봄의 기운이 충만한, 이름도 어쩐지 예쁜 니스에 왔다. 니스에서의 첫 체크인 메트로폴리탄 호텔. 룸에 도착해서 배낭 두 개가 전부인 짐을 풀어본다. 창가의 테라스 문을 활짝 열고는 침대 옆 소파를 갖다 둔다. 털썩 소파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지중해를 목도한다. 김화영 작가의 '행복의 충격'이 생각났다. 아름다운 절경에 말을 잃고 말았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우아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린 약속했다. 결혼 10주년 여행으로 이곳을 다시 찾자며. 형용할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 깊숙이 어딘가에서 샘솟았다. 그랬던 우리는 어느새 10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다.
프롬나드 데 장글레, 영국인의 산책로.
니스 해안가를 삥 둘러싼 산책로를 한참 걷다 보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 올라 저 멀리 펼쳐진 니스 전경을 바라본다. 오밀조밀 귀여운 지붕끼리 서로의 이마를 맞대어 서있는 도심 곁을 지중해가 지킨다. 바다에 비치는 윤슬이 마치 흩뿌린 다이아몬드 마냥 반짝거린다. 재킷 없이 약간은 서늘한 날씨에 어깨 한켠이 시린다. 그래도 아무렴, 좋다. 이 세상 천국이 존재한다면, 그곳은 바로 니스일 것이다. 참으로 이곳에 오길 잘했다.
우리는 여행할 때 항상 렌트를 한다. 차로 하는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교통수단 나름대로의 낭만도 있겠지만, 그 자유로운 매력을 한번 경험한 뒤부터는 반드시 렌트를 해야만 할 것 같다.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 꼭 여행과도 닮아있다. 그렇게 훌쩍, 집히는 대로 떠난다. 여행책자를 펼치고는, 가고 싶은 곳으로 여차저차 할 것 없이 떠나본다. 그러면 어느새 너른 날갯짓을 선보이는 새가 된 마냥, 즐거이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어디선가 황홀히 불어오는 미스트랄에 차가 좌우로 흔들거린다. 창문을 열고 흙냄새를 맘껏 킁킁대 본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미스트랄이구나 싶었다. 톨게이트를 지날 때 불어오는 미스트랄에 지폐가 훌쩍 날아가버렸다. 예기치 못한 이런 순간마저 재미있다. 서로 깔깔대며, 정말 비싼 도로라며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렌터카를 타고 이번엔 베르동 협곡으로 향해본다.
베르동 협곡을 향하며 지나치는 마을들의 목가적 풍경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고흐를 비롯한 수많은 인상파 화가들이 사랑했다던 남프랑스의 아름다운 풍경이 바로 이것이구나 싶어 감동이 물밀듯 치고 들어왔다. 우리가 찾은 때는 3월 초였고, 베르동 협곡을 진입할 때만 해도 봄기운이 완연했던 날씨가 고도가 높아지자 점점 겨울로 변해가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결국 쌓인 눈에 타이어가 헛도는 바람에 이러다 눈덮인 산에 갇히는 거 아닌가 어찌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전전긍긍하던 차에, 다행히 빠져나오게 되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들어온 입구가 폐쇄되었다는 아찔한 푯말을 보게되었다.
다시 파리로 올라간다. 타던 렌터카를 반납하고는 이번엔 테제베를 탔다. 올라오며 수많은 도시를 지나쳤다. 듣기만 해도 아쉬운 도시의 이름들이 하나둘 씩 스쳐 지나간다.
지상낙원이 따로 없는 니스에서 우리가 전혀 싸우지않은 것은 아니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일정을 조율하는 와중에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한참을 저울질하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하루 중 오전을 그렇게 날려먹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하하호호 거리는 것이다.
나의 신혼은 어땠을까.
3년을 여행하며, 먹고, 기도하고, 사랑했다. 어느새 10주년이 다가왔고, 약속한 그 순간이 근접해있다. 그동안은 참으로 숱하게도 싸웠나 보다.
이제는 단둘이 떠나는 여행을 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날의 애틋한 추억이 있기에, 그 아름다운 기록을 머금고 지금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신혼여행이 주는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다. 둘 사이에 그 어떤 폭풍이 휘몰아친다 해도, 꿋꿋이 서로를 지탱하며 견딜 수 있게 하는 힘. 바로 신혼여행의 아름다운 추억과 그때에 함께 맹세했던 굳은 순간 덕분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