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한 기억

신촌 연대기

by 돌아온 돌보


손 끝이 닿을 때마다 감도는 어색했던 기운.

눈을 마주치자 입가로 떨어트리던 시선.

팔짱을 끼고 걸었던 각자의 걸음.


두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데이트하던 날의 기록.




그냥 걸었다.

비가 올 듯 말 듯, 흐린 날의 차분한 신촌의 거리. 어설픈 웃음에 지난 10년의 세월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10년 만이네, 세월 빠르다


10년 만이었다. 우리가 그곳을 찾은 지.

스쿠터를 타며 달리던, 배고픈 주머니 뒤져 삼김 덮밥을 먹었던 '그날' 들.

스타벅스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몇 시간이나 주야장천 널 기다리며 뛰었던 나의 가슴. 생각이 났다. 별밤 지기가 되어 세었던 우리의 별자리.

남자 친구 학생증을 쥐고 몰래 들어갔던 도서관에서 쫓겨날 뻔하다 죄송하다며 펑펑 울었던, 불쑥 생각나버린 어제 같던 캠퍼스의 기억.




그를 만난 건 스물넷, 더운 바람이 불어오던 초여름.

공공기관 인턴을 하던 내게 같은 팀 인턴 오빠가 소개해 준 자리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 홍대 KFC 앞. 아직도 생생한 푸른 줄무늬 회색 바탕의 아디다스 카라티.

수줍은 말투에서 묻어져 나오던 설렘, 가슴 뛰던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 3년의 시간을 온전히 보낸 곳. 캠퍼스 커플은 아니었지만 대학시절 함께 누비던 신촌의 거리는 지금도 내겐 특별한 장소이다.

매일 떨어질 수 없을 만큼 그리워했던 우리는, 2014년 2월 결혼을 했다.




두 아이를 낳고 처음 찾은 신촌은 마치 어제 같았다.

변한 건 우리 눈가의 주름뿐, 서로에게 새긴 의미가 깊어져 다시 온 그곳을 걷고 또 걸었다.

젊음의 순수가 가득한 곳, 방황하던 우리가 떠올라 웃음이 났다.


"그때 사진 좀 많이 찍을 걸 그랬어."

"카메라가 없었잖아"

"자기 꺼 삼성 카메라 있었잖아."


걷다 보니 작은 후회가 뒤따랐다. 기록에 대한 욕심. 많이 찍어둘 걸, 찾아보니 사진이 몇 개 없더라.

우리는 오랜만에 신촌 털보네를 찾았다. '고삼이 신촌점'이 되어버린 생선구이집. 가게 안은 2006년의 기록 그대로였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촌스럽기까지 한 그때의 기억을 소환해 주문한 고등어구이. 살이 통통하게 올라 맛 좋게 구운 고등어구이를 먹으며 어제의 얘기를 이어나갔다. 서진이 엄마 아빠가 아닌, 서로의 이름으로 불리던 그때 우리의 이야기를.


'예일 타운' 이 있던 건물은 흔적을 감추고, 신라호텔 주방장 출신이라는게 무색할 만큼 허름했던 돈가스 집은 '임대문의'로 바뀌었다. 결혼 후에도 가끔 찾았던 '맛의 진미'도 자취를 감추었다. 신촌이 이렇게 변했구나 아쉬움이 뒤따랐다.


현대백화점을 지나 이대 앞으로 걸었다. 잊고 있던 지난날의 진한 여운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손 끝이 스쳤고 어색하게 손을 잡아보았다.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던 그가 처음 막 데이트를 시작한 연인처럼 겸연쩍게 느껴졌다.

나만 느꼈던 어색함일까.


"어색하다 우리, 그렇지"


멋쩍게 웃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느껴지는 낯선 가까움.




그럼에도, 함께 맞춰 온 수많은 세월의 조각들이 무색하지 않게. 말하지 않아도 눈만 마주쳐도 이내 알아낼 수 있는 너의 마음.

너에게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머물 곳은 서로였던 순간 잊지 말자."


바람 따라 흩어지던 우리의 지난 기억들 속에서, 다시금 함께했던 지난 세월의 여정에 감사한 하루.

두 손을 맞잡고 바래지 않는 기억 끝 했던 영원한 약속들을 꼭 지키자며, 마주한 우리는 뜨겁게 쳐다보았다.


작금의 시간, 다시 떠올려도 뛰는 가슴 주체할 수 없는 지난 신촌의 기억을 추억하며, 비가 오는 2022년 여름 우리의 연애 기록을 짧게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