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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과 팔과 어깨의 색이 다르다.

이백스물세 번째(200823 - 데일리오브제)

by 이충민

옥상엔 그늘이 없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이 태양은 옥상을 향해 무섭게 내리쬔다. 쪼그려 앉아 작업하다 잠깐 엉덩이를 대고 쉴라 하면 이번엔 어딜 쉬냐는 듯이 햇빛에 달궈진 옥상에 엉덩이를 데인다. 잠깐 앉아 쉴 곳조차 허락하지 않고 사방에 내리쬐는 것을 보면 태양은 참으로도 공명정대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태양을 뚫고 작업하는 이 모든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기 위해 햇살을 견디고 작업한다.


옛 이야기에 바람이 옷을 벗기지 못하고 햇살이 옷을 벗긴 이야기는 아마 옥상작업을 안해본 사람이 만든 이야기일 것이다. 햇살이 내리쬘땐 모자며 천이며 햇살을 피하기 위해 꽁꽁 싸맨다. 그러다 산들바람이라도 잠깐 불라치면 조금이라도 놓칠까 모자를 벗어 그 순간을 만끽하게 된다.

그렇게 햇빛을 피해 모자로 싸맸음에도 집에와 옷을 갈아입으니 손등과 팔 그리고 어깨의 색이 다르다. 반팔입고 장갑끼고 작업한 티를 팍팍낸다. 하루 이틀 만에 폭싹 익어버렸다. 다시 색이 같아지려면 몇 주는 있어야 할것이다. 무엇이든 저지르는 것보다 뒷처리 하는게 더 긴 법이다. 하지만 지금은 뒷처리보다 심심하다고 칭얼대는 고양이를 뒤로한채 한시 바삐 눈을 감고 달콤한 잠을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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