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버스에서 만난 사람

기억조각 6일차 - 인도 버스에서 만난 사람.

by 이충민

대학교 1학년, 군대 가기 전 인도 여행을 갔다.

건축학도였던 그 시절, 해외로 건축기행을 가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르 꼬르뷔제의 건축물과 도시 기획을 볼 수 있으면서도 가벼운 주머니를 가진 대학생에게 저렴한 물가는 충분히 유혹적이었다. 혼자 인도로 떠났다. 하지만 거기서 죽을 뻔 할줄은 몰랐다.


건축 기행이 목표였기에 사람들이 다니는 뻔한 경로랑은 조금 다르게 다녔다. 당시 나는 '빠떼 뿌르시크리'라는 도시에 있었다. 여행객이 뜸한 그 시골 도시같은 곳은 조용했다. 새벽녘 안개가 가득 차있는 붉은 빛을 내는 벽돌성은 인도에 와 있음을 실감나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나가는 사람에게 근처 타지마할이 기념일을 맞아서 오늘 하루만 입장료가 무료라는 얘기를 듣게 됐다. 외국인 입장료가 하루치 숙박료에 버금갈 정도로 비쌌기에,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짐을 최소한으로만 챙기고 버스를 타고 근처 다른 도시의 타지마할로 향했다.


타지마할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료 입장의 여파로 어딜 가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 사람들을 비집고 어떻게든 궁궐을 눈에 담기 위해 애쓰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었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서둘러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은 여러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미리 적어둔 버스 번호를 찾았다. 아직도 막차 시간은 남았는데 버스 안에 있는 인도 기사는 귀찮은듯 손을 휘휘 저으며 오늘은 버스가 종료 됐다고 한다. 그렇다. 빌어먹을 인도는 정해진 시간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 영어를 못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모르는 만사가 귀찮은 기사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빠떼뿌르시크리?' 밖에 없었다. 계속 귀찮게 하자, 결국 기사는 손가락으로 버스 하나를 가르킨다.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기사가 가르키는 버스로 향했다.


덜컥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권은 챙겼나? 돈은? 내가 왜 이렇게 돈을 적게 가져왔지? 빠르게 내려오는 어둠에 내 마음속은 쿵쾅대기 시작했다. 불안감에 나는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빠떼뿌르시크리?'를 외쳐댔다. 가르켜준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 역시 내가 귀찮은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기사에게 계속 묻는 수 밖에 없다. 기사는 대충 고개만 끄덕인다. 도대체 그 도시에 가는건지, 안 가는건지 확실하게 대답해줬으면 좋겠는데, 이 사람에게 내 마음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버스가 적어놓은 종점을 보니 거의 인도를 횡단할 기세로 멀리 가는 버스였다. 중간에 빠떼뿌르시크리에경유하는 것 같아 보이긴 했는데, 이 귀찮은 버스 기사가 나에게 친절히 설명 해주진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승객들을 보고 똑같이 외치기 시작했다.


'빠떼뿌르시크리?'


한 할아버님이 나를 달래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 분은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이고 할아버지 자신을 가르켰다. 나는 비로소 그 버스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버스는 계속해서 달렸다. 어둠도 계속해서 내렸다. 버스의 창은 그 어떤 암막 커튼보다 어두웠다. 신호등도, 달빛도 없었다. 버스의 전조등만 길을 밝힐 뿐이었다. 나는 버스 의자의 끝에 앉아, 두리번 두리번 주변을 계속해서 살폈다. 버스는 내가 타지마할에 올 때보다 오랜기간을 달렸다. 중간에 한번씩 서는 곳은 도저히 정류장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둠 밖에 없는 곳에서 사람이 내리고, 사람이 탄다. 나는 새로운 사람에게도 물어본다. '빠떼뿌르시크리?'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완전히 칠흑 그 자체인 상태가 됐다. 버스는 한 정류장에서 섰다. 한 젊은 남자가 나에게 '빠떼뿌르시크리' 라고 얘기하며 내 어깨를 친다. 자신을 따라오라며 손짓을 한다. 나는 따라서 나가려다, 문득 바깥의 칠흑같은 어둠이 무서워졌다. 본능적인 느낌에, 그냥 내리면 안될 것 같았다. 나는 돌아섰다. 그러자 그 남자가 재차 빠르게 내 어깨를 친다.


'빠떼뿌르시크리'


아니, 나는 안갈꺼다. 됐다고 손을 내젓자, 갑자기 그 남자와 다른 한 남자가 내 팔을 챈다. 양쪽으로 잡으려고 하고 나는 팔을 뺐다. 몸싸움이 거칠어 지려고 하자 앞에 있던 할아버지가 큰 소리의 힌두어로 그 두 남자에게 일갈했다. 남자들은 곧바로 나를 놓고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아직도 그렇게 어두운 버스 정류장, 아니 도로에 서서 웃으면서 나에게 손 인사를 하던 것이 생각난다. 일말의 죄책감을 느낄 수 없는 해맑은 미소는 아직도 나를 섬짓하게 했다.


다행이도, 할아버지가 나에게 말을 걸어 주셨다. 힌두어라 아무말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니 이 버스 안에서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버스는 계속해서 어둠을 달렸고, 역시나 어두운 정류장에 섰다.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내렸다. 알고보니 이 버스는 빠떼뿌르시크리 까지 가는 버스가 아니라 그 근처에서 다시 릭샤(오토바이 개조된 택시)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버스였다.


할아버지는 일행들과 함께 릭샤를 잡고 나도 그 릭샤에 태웠다. 릭샤 기사에게도 할아버지는 호통을 치셨다. 도시에 도착해 릭샤 비용을 듣고 내가 릭샤 비용을 내려 하자 할아버지는 나를 말리고 비용을 정확하게 일행과 1/n로 나눴다. 릭샤 기사가 말한 비용이 내가 더 짧은 거리를 타던 비용보다 한참 적었기에 내가 내고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한사코 거절했다. 다만, 손을 한번 잡아 주었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인사하고 마을로 들어서자 긴장이 탁 풀렸다. 마을에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다같이 나와 하는 결혼식 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처음보는 나를 마을 공터에서 열리는 결혼식 한켠의 의자에 데리고가서 앉혀주었다. 그리고 따뜻한 수프를 건냈다. 평소에는 물갈이가 무서워 식당에서 나오는 물도 생수로 먹는 나였지만 그 수프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입으로 향했다. 따뜻했다. 몸도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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