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 있다. 나랑 성향이 잘 맞아서 친구가 되었다기보다는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친구가 된 경우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 초1 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쭉 같은 반에서 생활하며 현재까지 무려 25년 동안 친구로 지내온 끈질긴 인연. 뭐 어찌됐든 우리는 순수할 때 만났고, 서로에 대한 선입견과 계산 없이 어린 시절을 함께했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책상을 쓰던 우리가 각자의 길을 걷게된 건 고등학교 진학부터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강제성 없이 오롯이 나의 의지만으로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됐다. 물론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의 우정을 지켜 나가는 것을소홀히 하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며 고향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었지만 그래도 여름이면 함께 물놀이를 가고, 서로의 크고 작은 경조사를 챙겨주고, 명절엔 만나서 술을 마셨다. 각자의 삶을 사는 동안에도 견고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야 했으니까. 우린 '특별한 친구들'이니까.만나는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특별한 친구들과의 관계는 계속되었다.
카카오톡이 등장하던 시기 취업을 했다. 이 즈음 20대 중반이 된 고향 친구들과의 단톡방도 생겼다. 모두에게 변화무쌍하고 바쁜 시기였기에 우리는 만남보다 단톡을 더 많이 했다.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린 단톡방에선 시시콜콜한 대화들이 자주 오갔다.나는 단톡방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았다.
몇 년이 지나자 친구들 사이에서 나에 대한 뒷 얘기가 나왔다. 내가 변했다는 거다. 단톡방에서 말을 안 하고, 모임에 잘 나오지 않는다며 날 배신자 격으로 여겼다. 게의치 않았다. 실제로 난 변했으니까. 언제부턴가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고,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잘 나갔고, 현재도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떠드는 친구들의 대화에 끼는 것이 싫었다.만나면 할 말이 없어졌다.고향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점점 불편했고, 따분했다.
친구들은 우리가 어린시절을 함께 했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끈끈한 우정'에 집착하고이를 강요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에게 소원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가지고 뭐가 쌓였느니, 풀게 많다느니 하며 자꾸만 갈등을 만들어 냈다. 단지 공감대가 없어서 불편하다고 느껴졌던 친구들이 어느샌가 싫어지고 있었다.
이 친구들과 손절해야겠다고 마음 먹은건 우리의 공통점이 그저 초중학교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사실이 전부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다. 너네는 아니? 성인이 된 후 우리가 나눈 대화에 제대로 된 현재나 미래는 없고 항상 과거만 있었단 걸. 우린 이미 중학교를 졸업하며 끝난 관계라는 것을. 만날 때마다 과거 이야기를 하며 추억팔이로 연명해 가는 우리 관계에서 이제 미래는 없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나는 이 특별한 친구들과의 손절을 결심했다. 손절을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곤 하는 이 특별한 인연을 등져버린 싸가지 없고 못된 애가 될 용기. 혹시나 나이가 들어 지금의 판단이 잘못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왔을 때 그것까지 감당할 수 있는 용기. 무엇보다도 지금 이 순간에도 의미없이 울려대는지긋지긋한 단톡방에서 나가버릴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