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에 대한 단상
나는 크리에이티브한 인간인가?
"아이디어가 풍부한 창의적인 인재를 찾습니다"
채용 공고에서 '창의적'이란 단어는 어색하지 않다. 웬만한 공고에 다 들어가는 단어다. 그럼 그 높다는 취업의 벽을 뚫고 입사한 직장인들은 모두 창의적인 사람들? 11년째 출근 중인 나도 크리에이티브한 직장인? 창의적으로 일을 한다는 건 뭘까? 이 글은 나의 창의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어느 면접에 대한 이야기다.
화기애애한 대화들, 이 회사에 최적일 것 같은 나의 커리어, 자신감에 찼던 목소리까지. 면접 분위기는 좋게 흘러갔다. 완벽했다. 뭔가 아쉬움이 남아 보이는 인터뷰어의 표정만 빼면.
걱정되는 부분이 있냐고 내가 먼저 물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을 찾고 있는데 당신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인터뷰어의 대답. 그가 든 근거는 내가 다양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가 말하길 해외여행, 봉사활동, 대학교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대외활동을 하며 견문을 넓힌 사람은 창의력이 남다르고, 가만히 있다가도 번뜩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마디로 나는 너무 모범생으로 살아와서 창의력이 부족할 것 같다는 말.
스스로 창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오긴 했지만 웬 처음 만난 아저씨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 나의 대학시절을 단지 대외활동 안 했다고 창의력 없는 사람이라고 못 박으니 사실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정도를 넘어 매우 빡이쳤다.
창의력에 대한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난 그가 말하는 창의적인 사람을 드라마에서만 봤다. 풍부한 경험을 한 사람이 신박한 아이디어를 갑자기 떠올리는 경우는, 뭐 물론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직장 생활에선 그런 드라마틱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해외에서 살다 왔거나 나이가 어리면 남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거라 착각하는 어르신들이 있는데 그런 케이스는 의외로 드물다.
늘 아이템 제출 마감 기한에 쫓기고, 그 기한 안에 어떤 아이디어든 내기 위해 고민하고,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작은 것도 관찰하며 생각하는 평범한 직원(=바로 나ㅋㅋ)이 더 창의적인 결과물을 낼 때가 있다. 번개처럼 갑자기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더지니어스 홍진호처럼 발상의 전환을 이뤄낼 수도 없지만 일상생활을 잘 들여다보는 게 창의력을 요구하는 상사들에 대처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자세 아닐까. 요즘 사람들은 뭘 입고 뭘 먹을까? 지금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이 사람은 어떤 신발을 신고 있지? 지인들이 최근에 구매한 건 뭐였더라? 사회현상을 어떻게 내가 맡은 브랜드의 홍보와 연결시킬 수 있을까? 이런 관찰과 고민들 말이다.
일상 속 고민에 대한 결과로 재밌는 기사 아이템을 발굴한 사례들이 꽤 있다. 다양한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도 일에 대한 관심과 노력으로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일에 대한 욕심, 욕심을 채우기 위한 일상 속 관찰과 고민, 그렇게 탄생하는 창의적인 결과물.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창의력은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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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살아온 자의 변명.
사실 창의력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당시 면접 순간의 욱함은 말발로 이어졌고, 본능적으로 인터뷰어의 질문을 받아치게 된 것이다. 변명을 들은 인터뷰어가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모두에게 창의력을 요구하는 평범하지 않은 이 사회에서 평범한 직장인이 적당히 창의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내 일에 남들보다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지 않을까. 작은 것에도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낸 나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창의적인 인재를 찾는다는 채용공고를 보고 움츠러 들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