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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미 Apr 21. 2019

내가 여전히 주황공주(신화창조)인 이유

신화 21주년 콘서트 'CHAPTER 4'에 대한 진지한 리뷰

신화가 신화했다. 4월 20일. 신화 21주년 콘서트에 다녀왔다. 나는 2008년에 열린 신화 데뷔 10주년 콘서트를 시작으로 매년 연례행사처럼 신화 콘서트에 가고 있다. 그런 나에게 이번 콘서트는 2008년, 2012년에 이은 역대급 콘서트로 기억에 남게 됐다. 신화의 20년과 함께 나의 지난 20년을 되돌아볼 수 있던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Chapter Ⅰ(1998년~2002년)


이번 콘서트 무대는 누가 짰는지 몰라도 정말 잘 짰다. 신화의 활동 시기를 챕터1~4로 나누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했다. 1998년 신화 데뷔 후 SM엔터테인먼트에서 보낸 2002년까지를 신화 Chapter Ⅰ으로 규정했다. 이 시기는 내가 신화 팬이 되어 신화에 심하게 빠져 있던 시기다. 나는 2001년 여름, 당시 중학교 2학년 때 신화 4집 'Hey, come on'과 'Wild eyes' 활동을 보고 팬이 되었다. 정확히 어떤 포인트에서 팬이 된 건지는 모르겠다. 당시 TV만 틀면 신화가 나왔고, 그런 신화를 계속 보면서 나도 모르게 호감이 생겼던 것 같다. 그 전까지 한 번도 연예인을 좋아한 적이 없었는데, 마치 온 열정을 신화에 퍼붓기 위해 그때까지 연예인에 관심 없이 살아온건가 싶을 정도로 나의 모든 에너지를 신화에 쏟았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홍보 업의 근간이 된 때이기도 하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그날 나온 신화 기사 정독하기(모니터링), 신화 스케줄 및 방송 프로그램 일정 확인(홍보 일정 및 체크리스트 구축), 주요 기사와 잡지 수집 및 방송 프로그램 녹화와 관련 영상 다운로드(클리핑), 매일 신화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일기 쓰기(보도자료/기획자료 작성), 등교해서 쉬는시간마다 신화에 관심 없는 남학생들에게 신화 녹화 비디오 틀어주고 신화 앨범 사라고 제안하기(기자미팅), 시기별 신화의 사진과 영상을 모아 정리하고 CD로 구워 보관하기(월간보고서). 진지하게 말하는데 확실히 난 이때부터 홍보를 했다. ㅋㅋㅋㅋㅋㅋ 첫 클라이언트가 신화다.


혹시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내가 신화라는 그룹을 잊지는 않을까.. 지금의 이 감정을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서~이걸 쓰는거야. 난 오빠들도 잊고 싶지 않고, 지금의 내 감정도 잊고 싶지 않아. 죽을때까지.소중히 간직하고 싶어~*^^*

(2002년 8월 12일의 일기 中 발췌. 이 날부터 매일 신화를 향해 편지 형식의 일기를 썼다. 오그라들 수도 있지만 나는 당시 정말 진지했고, 지금의 나는 과거 어린 나의 진정성을 리스펙 하기 때문에 지금 이 일기를 공개할 수 있다.)


1998년 신화 1집 해결사


콘서트 시작을 알리는 영상에서는 IMF 이후 데뷔한 신화의 '해결사', '으쌰으쌰' 관련 에피소드부터 'T.O.P.'로 가요계 정상으로 우뚝 선 모습, 짐승돌의 시초였던 'Only one', 아이돌 퍼포먼스의 정석으로 평가 받는 'Wild eyes' 등 신화 1집부터 6집까지의 주요 장면들과 이때를 떠올리는 신화 멤버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곧바로 막이 오른 무대에서 신화는 '해결사', 'Only one', 'Perfect Man', 'Wild eyes', '소망', 'Trippin' 등 추억이 담긴 히트곡과 팬들이 좋아하던 앨범 수록곡들을 골고루 열창했다.


나는 매일매일 신화에 빠져 살던 15살의 소녀로 돌아갔다. 신화 대상 수상을 위해 투표를 열심히 하던 내 모습등 그냥 정말 신화에 미쳐있던 모습이 마구 스쳤다. 아이돌 가수가 5집 이상 낸 전례가 없던 상황에서, 나는 왜 하필 4집 때 팬이 되었을까, 왜 신화를 더 일찍 알지 못했을까라는 자괴감에 빠졌던 모습도 불현듯 떠올랐다. 신화를 향한 마음이 이렇게 커졌는데 신화가 SM과 계약이 끝난 후 해체하면 어쩌나 불안해했던 당시의 나. 그때의 소원은 신화가 늦깎이(?) 팬인 나를 위해 단 1년 만이라도 더 활동해 주는 것이었다. 그땐 그랬지~



#Chapter Ⅱ(2003년~2008년)


신화는 옷을 갈아 입기 위해 무대 아래로 내려갔고, Chapter 2 영상이 나왔다. 2003년 신화가 굿 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한 시기부터 데뷔 10주년을 맞이한 2008년까지가 Chapter 2다. SM과의 계약 만료 후 단 한명의 멤버 교체 없이 6명 전원이 신화 활동을 위해 새로운 기획사로 옮기며 진행했던 기자회견 등 당시의 자료화면들이 공개됐다. 7집 'Brand New'로 첫 대상을 수상하던 모습부터 멤버들의 성공적인 솔로 데뷔, 군 입대로 약 4년의 공백기를 갖게 된 신화의 10주년 콘서트 등 중요한 순간 순간들의 모습과 그때를 떠올리는 멤버들의 인터뷰를 보고도 눈시울을 붉히지 않았다면 냉혈인간...  


2003년 신화의 챕터2 시작 당시 나에게도 변화가 있었는데, 바로 고등학교 입학이다. 아침 8시에 시작하는 0교시부터 밤 10시까지 진행되는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오는 날들이 반복됐기 때문에 중학교 때처럼 신화의 기사를 매일 찾아보며 방송 프로그램을 꼬박꼬박 챙겨 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화에 대한 애정은 가득했던 시기였다. HOT, 젝스키스, SES의 해체 배경을 들먹이며 신화-SM간의 계약과 금전적 문제, 군 입대 문제 등과 관련해 해체설이 정말 많이 나왔었다. 이런 와중에 멤버 중 김동완이 '멤버 전원이 어떠한 경우에도 행동을 함께 할 것'이라고 공식 선언을 해줬고, 또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켜준 신화에 대한 나의 믿음은 날이 갈수록 더욱 굳건해졌다.


난..인터넷에서 떠도는 소문따위..절대 믿지 않을꺼야! 끝까지..오빠들만 믿을게~~ 남들이 아무리..해체다..뭐다...오빠들을 욕해도! 난 정말 오빠들 믿을꺼야!!!+_+ 오빠들도 우리 팬들 믿고 우리...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많은시간...함께하자~

(2003년 3월 23일의 일기 中 발췌)


신화는 무대 위로 다시 등장해 'Brand New'와 'Oh', '슈팅스타'를 연달아 불렀다. SM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신화가 신화의 색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미 이미지를 다 소진해버린 아이돌이 7집 앨범을 히트칠 수 있을까 등 많은 우려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면서 우리 신화 아직도 건재하다는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한 '슈팅스타' 속 가사 "Life pressure 나를 눌러도 신화는 꺾이지 않아. 이 믿음이라면 아무에게도 뒤지지 않아. (중략) 신화라는 gang. I'm a gangster 댄스그룹 편견 I'm against a 자신있음 붙어봐 but get in a line 인사부터 해 난 니가 누군지도 몰라"를 목 놓아 따라 불렀다.


2004년 발매된 신화 7집 앨범 표지


챕터2 영상과 무대를 보면서 고등학교 때가 많이 생각났다. 고2 때는 신화 대상 소식에 오열했었다. 고3 때 내 소원은 단 하루라도 신화 동영상을 원 없이 보는 것이었다. 참 소박했다. 공부하면서도 "신화, 6인6색 매력남들의 전성기..데뷔후 최고 주가", "드라마부터 쇼프로까지, 그룹 신화 세상이 되고 있다" 등 신화팬으로써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당시의 기사들을 스크랩 해놓는 정성까지 발휘했었다.


기대 안한다 안한다 하면서도 시상식 끝날 시간 되니까 떨리는건 정말 어쩔수 없더라ㅠㅠ 선생님 오나안오나 눈치봐가며 카페 들어갔는데 여기저기서 보이는 글들 '신화 대상 축하해요', '신화7년만에 대상'... 와, 정말 이런 글들 보는 순간 진짜 심장이 막 뛰기 시작하는데.. 아무말도 안나오구, 완전 표정관리 안되구-_-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는듯한데다가 손까지 떨려오고 가슴은 또 왜그리 뛰는지,,,,, 너무너무 기쁘다, 정말 내가 상탄것보다 훨씬 더 진짜 미칠듯이 기쁘다. 세상을 다 얻은것 같아.

(2004년 12월 10일의 일기 中 발췌)


무대 위 신화는 잠시 발라드 타임을 갖자며 9집 수록곡 '흔적'을 불렀다. 9집은 신화가 군 입대 전 마지막으로 낸 앨범이다. 특히 흔적 뮤직비디오는 신화의 데뷔 10주년 콘서트 실황을 담았기 때문에, 이 노래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10주년 콘서트가 떠올랐다. 2008년에 열렸던 10주년 콘서트는 대학생이 된 내가 신화를 처음으로 영접한 역사적인 공연이다. 처음 간 신화 콘서트였지만, 그건 이별 콘서트이기도 했다. 멤버들의 군 입대로 약 4년 간 신화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것. 사실 그 콘서트가 있기 전까지 나는 신화가 군 입대 후 자연스럽게 해체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10주년 콘서트에서 신화가 보여준 진심, 그리고 신화는 절대 안 헤어지니까 각자 할 일 열심히 하다가 4년 후에 만나자는 그 약속. 콘서트장에서 울며 한 그 약속 이후 나는 신화를 끝까지 믿기로 했다.


2008년 3월 30일 신화 10주년 콘서트 관람 후 쓴 후기



#Chapter Ⅲ (2012년~2018년)


신화가 2008년 9집 활동을 끝으로 그룹 활동을 중단한 2011년까지는 나에게도 바빴던 시기였다. 대학교 다니면서 알바 하느냐고 매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201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해야 했다. 2011년 3월에는 드디어 직장인이 됐다. 자연스럽게 신화를 잊었다. 내 삶에서 신화가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나는 신화 기사를 찾아보지도, 신화 멤버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챙겨 보지도 않게 됐다. 10주년 콘서트에서 신화가 얘기한 것처럼 그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2011년 중반~말부터였을까? 슬슬 신화 멤버들의 전역, 신화 활동 준비 등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2012년 초10집 앨범을 내고, 콘서트를 개최한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당시 나는 압구정역 근처에서 근무했는데, 출퇴근길에 "우리는 약속을 지킵니다"라는 주황빛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린 것도 볼 수 있었다.


2012년 신화 컴백 기자회견. 사진출처=이데일리


21주년 콘서트의 챕터3를 알리는 영상은 2012년 신화의 컴백 콘서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4년 만에 개최되었던 콘서트. 정말 거짓말처럼 신화가 컴백했다! 재결합이 아닌 컴백이다. 신혜성은 2012년 콘서트 때 느꼈던 감정은 앞으로 죽을 때까지 못 느낄 감정이라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약속을 지켜준 신화에게 고마웠고, 4년 이란 공백 기간 동안 그 약속 잊지 않으며 어엿한 직장인으로 성장해 당당하게 콘서트에 올 수 있게된 나 자신에게도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챕터3 영상이 끝나고, 신화는 옷을 갈아 입고 등장해 2012년 컴백 이후 나온 대표곡인 '비너스', 'This love', '표적'을 연달아 부르며 챕터3 무대를 시작했다. 너무 멋있다. 신화는 자신들의 색을 유지하면서도 늘 새로운 시도를 한다. SM 시절부터 음악프로그램 1위를 수 없이 했던 신화였고, 2004년엔 대상까지 수상한 신화지만 신화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13년 11집 'This love'를 통해 아이돌 최초로 '보깅댄스'를 선보이며 차별화 선언을 한 것. 신화는 이 노래로 음악 프로그램 1위를 석권하며 음원차트를 휩쓸었다. 이후 나온 신화 12집 '표적'은 데뷔 이래 가장 많은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게 데뷔 17주년의 일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2013년 신화 11집 'This love' 뮤직비디오 캡처


사실 신화는 예전부터 늘 '최초'를 시도해 온 그룹이었다. 2PM 찢택연 이전에 이미 웃통을 깠던 최초의 짐승돌 신화가 있었으며(Only one), 아이돌 최초로 누드집 발간, 아이돌 최초의 의자춤과(Wild eyes) 스탠딩 마이크 춤(Perfect Man), 아이돌 최초의 올라이브 밴드 공연(2003년 콘서트), 최초의 예능돌(애정만세, 동거동락, X맨 등), 아이돌 최초의 '따로 또같이' 활동, 아이돌 최초 단독예능(연애편지, 신화방송), 아이돌 최초 단독 DJ(김동완의 텐텐클럽), 아이돌 최초 정장 브랜드 모델(로이젠), 아이돌 최초 9시 뉴스 프라임 시간 대 광고 방영(코카콜라), 아이돌 최초 최장수 광고 모델(아이비클럽 6년), 아이돌 최초로 멤버가 대표인 기획사 설립(신화컴퍼니), 아이돌 최초 멤버 변동 없이 13집 이상 발매............... 신화는 늘 도전하는 그룹이었고, 지금도 새로운 도전을 하며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Chapter Ⅳ (2019년~)


2018년 신화 20주년 기념 앨범 표지. 사진출처=신화컴퍼니


지금부터 챕터4의 시작이다. 지난 챕터1~3까지 과거 영상들이 자료화면으로 나오며 그 당시를 떠올리는 인터뷰를 했던 신화 멤버들은 이제 현재를 이야기한다. 멤버 6명이 돌아가며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특히 "말 없이 그만두진 않을게"라는 이민우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짧은 말 한마디에 신화와 신화팬들이 지금까지 믿음으로 보낸 세월과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의지가 모두 담겨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신화는 챕터4 공연에서 지난 해 발매된 20주년 기념 앨범 'HEART'의 수록곡 'LEVEL'을 선보였다. 이 무대를 위해 새로운 안무를 만든 것이다. 과거 히트곡만으로도 2박3일 공연이 가능한 신화지만, 신화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이렇게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 내가 여전히 신화를 리스펙하는 이유다. 2018년 버전의 'All your dreams'와 'Voyage', '별' 등 감성적인 곡들을 부르며 신화는 21주년 콘서트 무대를 마무리했다.





4월 20일 신화 21주년 콘서트 현장


신화가 이번 콘서트를 1998년부터 현재까지 시간 순으로 구성한 것은 절대 과거를 추억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특히 챕터4의 시작이 2019년이라는 점은 21주년을 맞이한 신화가 앞으로 맞이하게 될 새로운 나날들에 대한 힘찬 포부를 밝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1주년 콘서트에서 신화는 정말 작정하고 그들의 미래를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나는 약 3시간 30분동안 진행된 신화 콘서트를 통해 15살부터 33살이 된 현재까지, 18년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신화와 함께할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2001년 4집 늦깎이 팬으로 입문한줄 알았던 나는 어느새 18년차 신화 팬이면서, 신화의 초창기 팬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신화에게는 기승전결이 없다. 기승전전전전~ 끝 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며 신화는 계속될 수 있음을 증명해 내고 있다. 소녀팬 시절 했던 약속처럼 정말 10년, 20년, 30년 후에도 신화는 영원할 수 있을 것 같다. 신화는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가수며, 영원한 아이돌이다. 그래서 난 여전히 주황공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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