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종업계의 정리해고 소식
01. Big Stay
작년만 해도 고용시장의 키워드로 꼽혔던 것이 '대퇴사(Great Resignation)'였다. 사람들이 더 좋은, 나에게 더 맞는 기업을 찾아 떠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은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일하며 조용한 퇴사를 꿈꾼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 말이 다 진실은 아니다. 어느 누구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생존을 위해 나를 던지고 버리며 전쟁 같은 하루를 사는 삶들도 있다. 최근에는 반대로 '대잔류(Big Stay)' 현상이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즉, 현재 다니고 있는 곳이 몹시 불편해도 조직에 남아 있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AI 등으로 기술과 산업이 불측의 방향으로 빠르게 변하다보니 기회를 엿보면서 직장에 남는 선택을 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직장인들의 전략적 행보에 불을 지피는 것이 바로 대기업들의 인력 감축 소식이다. 고용 안정과 높은 보상을 추구하는 큰 기업들조차 조직의 사이즈를 줄이는 모습을 볼 때는 어느 곳이든 안전지대가 없다는 불안과 함께 때가 되면 월급 주는 우리 회사가 최고로 느껴질 때가 있다.
02. 바로 옆 기업의 정리해고 소식
같은 업권에 있는 모기업에서 전체 직원 대비 15%에 해당하는 30명의 인력을 줄이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무슨 이유인지 궁금해서 기사를 찾아봤더니 매출액 대비 50%에 육박하는 인건비 부담과 최근 3년간 영업손실이 발생함에 따라 경영상 필요에 의해 대상 인력을 선정한 후 권고사직을 추진하고 있었다. 사직 권고에 응할 경우에는 위로금으로 2개월분 상당의 급여를 지급하고 근로계약을 합의해지하게 된다. 반면, 사직 권고에 응하지 않을 경우 직무 미배치를 실시하게 된다. 어떠한 직무도 받지 못한 직원들은 자택에서 대기하게 된다. 이러한 대기발령 조치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휴업'의 일종이기 때문에 같은 법 제46조에 따라 평균임금의 70%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법에서는 평균임금의 70%에 해당하는 급여가 통상임금을 초과할 경우에는 통상임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근 기사를 보면, 30명 중에서 50%에 해당하는 15명이 권고사직에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회사로서는 대단히 선방하고 있는 셈이다.
회사는 경영상의 필요성, 즉 기업 운영에 있어 적자가 지속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고정비 성격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전직원의 10% 이상의 인력을 단번에 정리하기로 했다. 이것은 외견상으로 보면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조치의 일환으로 보인다(근로기준법 제24조). 우리 근로기준법은 이러한 경영상 필요에 따른 해고를 실시할 때, 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②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음에도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하며(예를 들면, 신규 채용 금지, 희망퇴직 프로그램 실행, 연봉 동결, 임시 휴직 등), ③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해고 대상 인력을 선정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요건이 적법하게 충족되었는지 여부는 회사의 경영 사정과 동 건에 대한 조치 내용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될 문제이지만, 회사가 세 가지 요건 모두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조치의 실질적인 배경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적어도 외견상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조치를 우회(근로기준법 제24조의 법 적을 피하기 위해)하여 개별적으로 정리해고 인력을 선정한 후, 근로계약의 합의해지 조건으로 위로금을 지급함으로써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노동법적 리스크(부당해고)를 대폭 줄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2개월분의 위로금으로 권고사직의 합의를 이끌어 낸 점도 놀라웠다. 회사가 구성원을 방출하려고 할 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고의/중대한 비위행위를 한 자에 대한 징계해고, 다른 하나는 업무능력이 현저히 부족하고 더는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는 저성과자에 대한 통상해고이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제23조를 통해 해고의 정당성을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회사 측에 해고의 정당성에 관한 입증 책임을 지우고 있기 때문에 위 기업의 사례처럼 10% 이상 되는 직원들을 단 번에 해고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바꿔 말하면, 회사가 이번에 방출하기로 한 30명의 인력을 선정하는 과정과 그 결과가 공정성 및 객관성 측면에서 투명하게 이뤄졌거나 합리적인 기준에 따랐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리 대상에 오른 구성원들은 회사의 사직 권고, 이에 불응할 경우 이어지는 직무의 미배치 및 대기발령 조치 모두를 사실상 해고를 위한 의도적인 압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이다. 결국 부당해고 또는 부당한 인사명령 이슈(나아가 직장 내 괴롭힘까지)가 노동청에 대한 진정 등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잘 달래가며 근로계약을 합의해지하기 위해서는 위로금의 수준이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단 2개월분으로 대상자 중 50%의 인력을 권고사직으로 처리했다는 점이 믿기지 않았다. 물론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꽤 많은 면담과 고통의 시간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위로금의 지급액이 기사에 나온 것과 달리 근속연수 등에 따라 차등적으로 설계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03. 대기발령 이후의 선택은?
권고사직에 합의하지 않은 15명에 대한 직무 미배치 및 그에 따른 자택 대기발령 조치 이후에 회사의 선택지는 무엇이 될까? 자택 대기발령 기간 동안 회사에 남아 있겠다는 희망을 포기하고, 이직 준비를 하는 이들도 꽤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끝까지 회사에 맞서야겠다고 생각하는 구성원들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선택은 다르겠지만, 회사는 직무 미배치 조치를 지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기발령이라는 것은 회사가 경영상 필요에 따라 또는 구성원에게 발생한 어떠한 원인을 이유로 그 직무에 계속 종사시키는 것이 업무상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이뤄지는 통상의 인사권 행사다. 공공기관의 경우 취업규칙에서 대기발령의 사유와 절차를 규정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일반 민간기업의 경우 대기발령은 회사 측의 직권조치로서 특별한 사유와 절차를 세세하게 규정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가 되었든 대기발령이 내려지게 되면 그 기간 동안 임금의 하락이 발생하기 때문에 대기발령 조치를 정당한 이유 없이 무기한으로 설정할 수 없다.
만약 기업이 자택 대기발령 이후 또다른 조치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 기존의 권고사직 프로세스가 반복될 것이다. 즉, 자택 대기발령 이후 원복 조치를 할 것이고, 원복 조치 이후에는 권고사직에 관한 면담이 반복되는 것이다. 권고사직 면담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응하지 않는 구성원에 대하여는 다시 직무 미배치 조치가 이뤄질 것이고, 자택 대기발령이 반복되는 상황이 올 것이다. 당분간 기업과 구성원 모두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특히 공공연하게 드러난 회사의 대규모 인력조정은 남겨진 구성원에게도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 되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의 정서적 반응을 자 살피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설득력 있는 방안을 공유하며 서로를 다독이는 변화관리가 이뤄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