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끝, 잊지 말기로 해

존재의 부재에 대해

by Yimhyehwa


01. 축하해


아내는 책 보는 걸 좋아한다. 연애할 때도, 결혼 후에도 늘 머리맡에 책 몇 권을 두고 살았을 정도다. 오랜만에 대낮에 집에 왔다. "오, 자기 왔어? 일찍 왔네.", 막 한 권을 다 읽고 난 후 나를 반겼다. 주말이 아니고는 만날 수 없었던 우리는 좋아했던 고깃집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꼬박 1년 걸렸네. 당신의 떠날 결심, 그리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걸 축하해." 나는 멋쩍은 미소로 답했다. "그깟 1년이었는데, 꽤 길고 험한 여정 같았어. 정말 고마워."


02. 부재에 대해


초벌구이된 고기를 불판에 놓으니 하얀 연기와 함께 맛있는 소리가 피어났다. 아내는 미리 나온 맥주를 반쯤 마시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말이야. 참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어. 돈이면 무슨 방식이든 사람을 움직일 수 있고 장악할 수 있다는 발상부터 돈을 거부하면 기꺼이 사지로 내몰아 생존을 위협하게 만드는 것까지 말이야." 숨 막히는 긴장과 공포, 어둠이 짙게 깔린 시간마다 퇴근했던 날들, 마치 산소 공급이 안 되는 밀폐된 공간에서 서서히 말라가며 온몸 바쳐 일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렇게 삶도, 가족도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거 알아? 어느 순간 익숙해지더라. 남편이 없는 우리 가족이 말이야. 자기가 일요일마다 아이를 보니까 아기와 자기의 시간은 이어졌지만, 나와 자기의 시간은 없었잖아? 그게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때마다 이 익숙한 부재가 언젠가 우리 가족의 위기로 찾아오겠다 싶었어." 아내는 남은 맥주마저 마신 후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서로의 부재를 잊지 말자. 새로운 출발을 기념할까?"


03. 잊지 말기로 해


옆사람의 부재가 깃털처럼 가볍고 아무렇지 않은 세상을 살았다. 그것은 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소중함을 턱없이 낮게 여기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그리고 서로의 소중함에 대한 관심이 꺼질 때 나의 안녕만을 추구하게 된다. 곁의 누군가가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지고, 내가 꿰찬 자리만이 유일한 안식처로 느껴진다면, 그때부터는 남을 짓밟고 내가 올라서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된다. 이겨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누군가를 나의 뒤에 두어야 승리를 따낼 수 있다는 신념을 키운다. 나의 부족함을 자성하기보다는 상대의 약점을 들춰내는 방식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것이 조직의 공동의 선이 될 때 나의 부재는 그의 기회로, 그의 기회는 또 다른 이의 부재를 만든다. 결국 생존하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 잡게 된다. 나도 그렇게 물들었나 싶다. 마음 곳곳 덕지덕지 묻은 경험들을 떼어보니 질 나쁜 얼굴과 말로 얼룩진 내가 보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