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Payband 없는 세상 (1)

임금, 연봉, Payband

by Yimhyehwa



01. 위험한 발


개발 및 서비스 기획이 Main Job인 플랫폼회사를 다니면서 받은 충격 중 하나는 페이밴드(Payband)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 페이밴드가 없는 걸까? 페이밴드가 없는 세상에서는 구성원의 연봉을 어떤 방식으로 조정할까? 실제로 그러한 세상을 경험하면서 놀랐던 점은 직군, 직무, 직급, 직책 그 어떤 기준도 내려놓고 성과 하나만으로 파격에 가까운 보상과 동결에 가까운 보상을 이분법처럼 적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직군 또는 유사 직무나 경력을 보유한 구성원 간에도 연봉의 격차(분포)가 설명이 안 될 정도로 심하게 벌어지곤 했다. 더 놀랐던 점은 고성과자와 저성과자를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매분기마다 성과평가를 하고 반기마다 역량평가를 해왔으면서도 그 평가결과를 보상과 연계하지 않았다. 연봉액을 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 최상위 조직장의 정성적인 판단만으로 평가결과와 상관없이 연봉 인상률이 달라졌다.


회사가 페이밴드를 운영할지 말지는 경영진이 판단할 몫이다. 법으로 강제되는 사항도 아니다. 어쩌면 페이밴드를 운영함으로써 발생하는 보상의 경직성과 내/외부 핵심 인재에 대한 리텐션 제약 등을 고려할 때, 굳이 밴드 체계를 운영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다만, 페이밴드를 의도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조직장의 재량 하에서 그들이 인정하는 핵심인재에게만 연봉 조정 재원을 쏟아붓는 방식이야말로 대단히 위험한 발상임을 깨달았다. 그런 방식으로 보상정책을 운영하게 되면, 구성원들은 핵심인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조직장에게 잘 보이는 몇몇 사람들만 보상을 독식한다.'는 불만만 사게 된다. 경영진이 바라는 '성과 중심의 인사관리'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합리성과 수용성을 모두 결한 차별 중심의 인사관리'로 점철되는 것이다.


일 관련 경험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다 어느새 페이밴드까지 생각이 뻗쳐버렸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없이 다짜고짜 페이밴드를 들먹이며 혼잣말을 해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페이밴드를 주제로 논의를 확장해보기로 했다. 페이밴드는 기업의 보상철학 및 정책을 실현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페이밴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들을 두 편으로 나눠서 정리하고자 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 편으로, 페이밴드를 아는데 반드시 필요한 개념인 임금과 연봉을 살펴보겠다. 임금과 연봉에 대한 내용을 파악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페이밴드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02. 임금


우리 근로기준법은 '근로의 대가'를 임금이라고 말한다(2조 1항 5호). 이 법은 근로의 대가인 임금을 크게 통상임금과 평균임금이라는 두 가지의 개념으로 구분한다.


통상임금은 사전에 정해진 소정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예: 기본급), 평균임금은 특정한 산정기간 동안 실제로 지급된 임금 총액(예: 기본급 + 연장근로수당)을 그 산정기간으로 나눈 평균액이라는 점에서 쓰임새나 계산방법이 다르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임금은 회사가 근로자와 체결한 근로계약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면 받게 되는 반대급부(권리)이다.


과거에는 어떠한 금품이 임금인지에 대한 다툼이 많았다. 법원은 이를 두고 근로제공에 대한 대가인 부분과 근로자의 지위에서 비롯되는 생활보장적인 부분으로 나눴다. 그리고 전자에 해당하는 부분만 따로 떼어 임금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이를 '임금이분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법리는 오래전에 폐기되었다. 그래서 근로의 대가에 대한 의미나 범위는 확대되어왔다. 즉, '임금일체설'이 확립된 법리(대법원 94다26721)가 된 것이다.


이후 임금에 대한 논쟁은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금품이 무엇인지를 두고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 논쟁은 2024년 12월,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소정근로의 대가로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금품"으로 정리되었다(대법원 2020다247190). 이제 재직시점에 따라 중도에 퇴사하면 전액을 지급하지 않는 조건부 금품(상여금) 등도 통상임금이라고 새기게 된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임금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생겼고, 위와 같은 조건부 금품 등을 운영하는 회사였다면 통상시급이 높아지는 등으로 혼란이 가중된 경우도 발생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통상임금의 본래 개념이 정상적으로 작동함으로써 노사 모두를 규율할 수 있게 된 점은 환영할 일이다. 이 판결이 있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판결임은 틀림없다.


[대법원 2020다247190 판결 中]

"통상임금은 가상의 도구 개념이고 그 개념이 전제하는 근로자는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이다. '소정근로의 온전한 제공'이라는 요건이 충족되면 이를 이유로 지급되는 가상의 임금이 통상임금이다. (중략) 이처럼 통상임금을 실근로 또는 실제 임금과 분리하는 것은 법문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소정의 가치를 온전하게 반영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실제 임금의 변동 가능성이 통상임금에 투영되는 것을 막아 기준 임금으로서 통상임금의 본질을 지켜낼 수 있다."



03. 연봉


A. 연봉의 의미와 연봉 조정 기준


일반 직장인에게는 임금보다는 연봉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하다. 연봉은 "연간 단위로 지급하기로 약정한 보상"이다. '약정'이란 내가 일년 동안 받게 될 보상이 얼마인지를 회사와 정하는 것이다(현실에서는 회사 측이 개별 구성원에게 앞으로 적용할 연봉액에 관한 일괄적인 통보를 하고 구성원이 암묵적으로 이를 수용하는 방식).


그렇기 때문에 연봉을 어떠한 기준으로 조정(인상, 동결, 감액)할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다. 회사마다 그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보통은 직장인들이 일정기간(직전 연봉계약의 적용기간) 동안 달성한 성과와 직무수행 과정에서 보여준 역량에 대한 평가결과를 보상과 연계시킨다.


평가결과를 보상과 연계하는 방법 또한 여러가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직급이나 직군 내 직무 역량레벨로 구분한 다음 평가등급별로 조정률 또는 조정액을 차등적으로 적용한다. 회사의 조직 체계 내에 형성되어 있는 단위 조직의 리더들에게 연봉 조정 재원을 할당한 후 개별 구성원에게 조정액을 배분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전사 연봉 조정 정책의 통제를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보면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원리로 귀결딘다.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는 매년 그때마다 경영진의 판단으로 직전연도 대비 당해연도 연봉 조정 재원이 결정되는 구조다. 즉, 경영(인사)권을 가진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반면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는 그것이 과반 노동조합인지 여부에 따라 힘의 정도가 다르긴 하겠지만 임금교섭이라는 과정을 통해 연봉조정 재원 및 조정 방식에 대한 힘겨루기가 전개된다. 교섭이 끝나고 노사 간의 타협이 이뤄지면 임금협약을 체결하게 되고, 그 협약에서 정한 내용에 따라 개별 조합원(구성원)의 연봉이 결정된다. 교섭은 성격상 단기간에 타결되기 힘들기 때문에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한 기업의 경우 연봉 조정액이 대부분 당해연도의 중간에 확정되므로 소급분 발생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B. 연봉액의 책정


연봉 조정 기준이 정해졌다면 개별 구성원의 [기준 연봉]에 그 조정 기준을 적용하게 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연봉액]이 확정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회사마다 차이가 나는 부분이 '기준 연봉'이다. 어떤 회사는 직원의 현재 총 연봉에 조정률(또는 조정액)을 적용하여 새로운 연봉액을 책정하고, 또 어떤 회사는 직원의 총 연봉 중 기본 연봉에 조정률(또는 조정액)을 적용하여 새로운 연봉액을 책정하기도 한다.


구성원과 회사 간에 약정된 총 연봉에는 기본 연봉('계약연봉', Base salary)만 있을 수도 있고 기본 연봉을 비롯하여 다양한 수당이 포함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구성이 기본 연봉, 식대, 고정OT(Overtime) 수당의 조합이다. 이처럼 실제 발생하는 연장(휴일)근로와 관계없이 매월 고정적인 가상의 연장(휴일)근로시간을 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수당을 지급하는 임금제를 포괄임금제(또는 고정OT제)라 부른다.


예를 들어 어느 직원의 연봉이 5,000만 원인데 회사1은 이 금액이 모두 기본 연봉인 반면, 회사2는 기본 연봉 3,600만 원, 식대 240만 원(Fixed), 고정OT수당 1,160만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기본 연봉을 기준으로 5%를 인상할 경우, 회사1의 직원 연봉은 5,250만 원(5,000만 원×1.05)으로 정해진다. 반면, 회사2의 직원 연봉은 5,180만 원(5,000만 원+3,600만 원×1.05)으로 정해진다. 회사2의 직원 연봉 5,180만 원은 기본 연봉 3,730만 원(72%), 식대 240만 원(5%), 고정 OT수당 1,210만 원(23%)으로 재조정된다.


04. 페이밴드(Payband)


근로기준법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이 실제 기업 현장에서 연간 단위로 약정하는 보상 수준인 연봉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회사는 근로의 대가인 임금을 매월 단위로 그 전액을 구성원에게 지급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고, 매년 한정된 인건비 예산으로 구성원의 개별 연봉을 효율적으로 조정(인상)하여 인건비를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이렇듯 직급 또는 역량 레벨에 대한 보상 수준을 중장기적으로 관리(통제)하기 위해 보상구조를 체계적으로 설계하여 운용하는 일련의 제도를 '페이밴드(Payband)'라고 부른다. 여기서 'Pay'는 보통 계약 연봉을, 'band'는 특정 계층별(직급 또는 역량 레벨) 계약 연봉의 구간을 말한다.


페이밴드는 그 성격상 보상 수준만을 관리하는 것이 그치지 않는다. Band라는 구간 내에서 어떠한 직원의 연봉을 어떠한 기준에 따라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연봉 조정은 필연적으로 인사평가와 연계된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평가 체계가 전제되어야 하고, 특정한 Band 구간 내에 있는 여러 직원들의 연봉을 위치시켜야 하기 때문에 연봉 조정의 차등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페이밴드를 운영함에 있어서는 평가제도의 합리성, 차등적 보상 기준 및 방식의 공정성, 구성원의 수용성, 페이밴드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예측가능성과 정기적인 관리(진단)이 담보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