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버릴 결심
무너진 일상
이번 주 목요일부터 배가 불편하고 설사가 잦았다. 주말에 짬이 생겨 병원에 가니 장염이란다. 지사제를 먹고 처방받은 약도 먹었는데 생각보다 낫질 않는다. 하루 동안 먹은 것 없이 비워내기만 했더니 2킬로나 빠졌다. 미친 듯 야근만 하고 살았는데 장염까지 걸리다니 왠지 모를 억울함이 차오른다. 새로 옮긴 지 어느덧 1년이 다 된 회사생활, 이곳에서 나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어마어마한 회사
거의 매일이었다. 늦은 밤부터 시작해서 2~3시간씩 계속되는 회의는 자정이 다 되어 끝이 났다. 그때마다 그다음 날 결과물이 올라와야 한다며 채찍질하는 인사실장, 그것마저 못 해내면 능력 없는 사람인 건 당연하고 내일이라도 권고사직으로 내쫓을 것만 같은 압박감과 이를 암시하는 경고들.
매번 느껴지는 정신적인 긴장과 절대적으로 극복이 안 되는 시간의 한계를 체감하며 결과만 뽑아내는 기계가 되어야 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일의 과정과 의미를 새기던 습관도 잊었다. 그렇게 나는 훌륭한 노예력을 인정받아 인사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올해로 12년째인 직장생활, 처음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도 기쁘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으로 새겨졌다. 인사실장은 독특했다. 젊고 당돌한 미혼 여성 직원에게는 Edge 있고 능력 있는 오빠 같은 사람이 되고자 애썼다. 반면 40대의 가정이 있고, Senior 직급인 남성들에게는 철저한 군대문화를 강요하며 모두가 자신의 발아래 놓여 있는 순간을 즐겼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남성우월주의 성향을 가진 한 인간의 이중성과 성별에 대한 원죄론을 느꼈다.
IT플랫폼기업으로 이직을 결심한 이유는 이전 회사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수평적이고 혁신적인 조직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스타트업 시절부터 유니콘기업이 되기까지 남달랐던 특유의 도전 정신과 높은 성과로 이어지는 일하는 방식의 메커니즘도 배우고 싶었다. 인사실장은 그런 헛된 바람과 발칙한 상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옥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여기서 합리성, 일관성 같은 거 찾지 마세요.", "결을 못 맞출 거면 짐 싸서 나가야지.", "법적으로 어쩌고 저쩌고? 다 필요 없어. 이런 거 문제 삼아도 상관없어. 그냥 우리 다 목숨 걸고 쇠고랑 찬다고 생각하면 돼.",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따로 있고 그 일을 책임지는 건 너희 같은 실무자라는 말을 염치없이 대놓고 할 때마다 귀를 씻어내듯 귓불을 만지는 습관도 생겼다.
10% Rule
그렇다. 어느 회사나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따로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될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는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너무 큰 일을 아무렇지 않게 많이 저지르고 있어 문제였다. 내가 있는 사무실의 꼭대기 층에는 아무도 몰라야 하는 한 사람이 살고 있다. 그 사람은 각 부문을 대표하고 있는 부문대표 및 대표이사보다 높은 사람으로 회사의 실질적인 사주였다. 그 사람의 한마디는 법 보다 위였고, 절대적이었으며, 반드시 말한 대로 이뤄져야만 하는 불문율이 작동하고 있었다. 행여 그 사람의 뜻에 다른 의견을 내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직을 걸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당장이라도 책상을 빼야만 한다는 생각이 조직을 지배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툭 뱉은 말이 있단다. "여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졌어요?", 그 한마디에 인사실장을 비롯한 고위 직책자들은 벌벌 떠며 묘안을 만들었다. 그렇게 나한테 떨어진 미션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정의든 공정이든 다 개나 주라고 하고, 무조건 정규직원 수의 10% 만큼 내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누가 어떠한 인사평가를 받아왔든, 다면평가 체계에서 동료들의 코멘트가 어떠했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현시점에서 조직장들이 전력 외라고 분류하면 어떻게든 저성과자로 낙인을 찍어 내보낸다는 시나리오였다. 일단 저성과자로 분류되면 스스로 제 발로 나갈 수 있도록 서슬 퍼런 액션플랜까지 설계했다. 결국 내가 하는 일은 살생부를 만드는 일이었다. 살생부에 올라온 인력들을 효과적으로 퇴출하기 위해 그럴듯한 명분과 실리를 얻을 수 있는 전략을 짜면서 '내년에는 나도 명단에 오를 수 있겠구나'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언제든 쓰고 막 버릴 수 있는 가장 하찮고 가벼운 존재가 사람이었다는 것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내가 먼저 버릴 결심
기업이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뤄내기 위한 추친력을 얻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선 현재 시점에서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앞으로를 결정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식할 수 있는 전략과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도출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이 계획을 전체 임직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피드백 과정을 거치며 실행 방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는 회사와 구성원 간의 간극을 줄여 나가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실행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희생과 고통에 대한 적절한 대체 보상과 함께 목표 달성 시에는 그 결실을 인정하고 함께 나누는 대대적인 격려와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이런 단계를 거치지 않는다면 회사는 언제든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할 것이며, 거기에 구성원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과 같다. 애초에 구성원의 신뢰나 공감은 바라지도 않았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셈이다. 여러 번 무너진 신뢰는 회복하기 힘든 법이다. 악화일로로 치닫는 관계는 파국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다. 내가 있는 회사는 이미 연봉 인상률부터 인력의 방출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공언했던 말과 다른 행동을 보였다. 이미 파국을 향한 기차에 몸을 실은 것이다. 매해 업계의 변동성과 규제 산업의 동향을 운운하며 위기의식을 갖고 임해야 한다는 반복된 메시지는 이제 과대 포장된 수사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실은 '또 얼마나 자르려고 이러는지' 걱정부터 하게 만드는 비상경보가 된 것이다.
뚜렷한 이유와 과정 없이 인력의 목숨줄을 아주 쉽게 끊어버리는 비겁하고 비정한 회사의 태도를 보며 내가 먼저 회사를 버릴 결심을 하게 되었다. 회사가 코웃음 칠 일이겠지만 언제든 쓰고 막 버릴 수 있는 가장 하찮은 존재가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누구에게는 내 알 바 아니고 돈 한 푼 안 되는 그 가치를 지키며 살고 싶어졌다. 막상 떠날 결심을 하니 막막한 현실이 벌써 나를 덮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새벽이 아닌 저녁에라도 아내와 아이를 볼 수 있겠다는 희망, 조직의 목표와 구성원의 역량이 같은 방향으로 정렬될 수 있도록 고민하며 일의 과정과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의 가치를 지키며 살겠다는 신념이 떠나는 결심을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이제 남은 선택은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