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서성입니다
하나 둘 버립니다.
몇 개는 그냥 버릴 수 없어 불을 피워 태웠습니다.
오르는 연기 너머 보이는 남은 것들은
저마다 이리저리 복잡한 사연들이 가득한데,
이제는 의미를 잃은 듯 떠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차피 사라질 것이라면
이렇게 온전히 마음을 다할 수 있을 때
헤집어보고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분주한 발아래 낡은 편지 한 장이 밟혔습니다.
잉크가 번져버린 글들을 읽다 눈을 질끈 감고,
서랍 속 어딘가에 다시 넣어버렸습니다.
그것 하나 붙들고 밤을 새운 날들이 오래전인데
그 수많은 밤들을 지우고 태운 것들을 들고 찾아와
나를 괴롭히고, 당신을 마음대로 조각낼지 몰라
마음을 바꿔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여러 번을 못되게 굴었습니다.
찰나의 사이, 나를 실은 기억의 열차는
전속력을 내달리다 속도를 멈추지 못한 채
당신과 나 사이에 끊긴 다리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마음껏 달릴 수 있었던 길은
이제 건널 수 없는 간격으로 남았습니다.
지나간 세월이, 남겨진 사람의 몫과 떠난 사람의 몫을
반으로 뚝 떼어 흥정도 못하게 갈라놓은 걸까요.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서랍이 반쯤 닫혀 있습니다.
그늘진 서랍 안에 편지의 끄트머리를
우두커니 바라보다, 끊긴 길녘 어딘가에 나를 세워두고
무작정 도망쳐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