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담(戀愛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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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비가 덮쳤다. 어두컴컴한 하늘이 잔뜩 화가 난 듯 매섭게 내리쳤다. 세상을 뒤엎고 사람들을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었다. 비 내리던 날이면 과거에 빨려 들어 그때를 마음대로 휘젓고 떠올리며 살았다. 세상은 이렇게 여유 없고 불안해져 가는데 습관은 무서우리만치 변함이 없다. 여전히 그리고 기꺼이 '회상'역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다. 뜨거운 여름을 적셔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기억의 창문 너머 여기저기 둘러보다 뜻밖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선미'였다.
그리 친하지도 멀지도 않았던 대학 동기인 선미의 연애담을 떠올릴 때면 '말로(末路, 망하여 가는 마지막 무렵의 모습)'란 말이 자동 생성된다. 선미는 선한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친구였다. 올곧고 당찬 성격의 그녀는 일찌감치 우리 모임의 회장이 되었다. 선미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네 살 많은 진혁과 사귀었다. 진혁은 하얀 피부에 순수한 기색이 완연한 사람이었다. 그가 쓴 안경은 뽀얀 피부와 찰떡처럼 어울려 '안경 쓴 박해일'(2003년 개봉한 영화인 <국화꽃 향기>에서 주인공 '서인하 역을 맡은 배우)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둘은 유명했다. 매일 붙어 다니며 알콩달콩하는 모습 때문에 모두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진혁에 대한 선미의 지극정성이 대단했다. 진혁은 대학 입학 후 내내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선미는 시험공부를 하는 진혁을 위해 연인과 부모 노릇을 다했다. 아침에는 전화를 걸어 깨워 주었고, 점심이 되면 도시락을 싸주곤 했다. 선미는 진혁의 공부가 끝날 때까지 따로 있다가 밤이 되면 곧장 진혁에게 갔다. 친구들은 흥 좀 깨지 말고 더 놀자며 보챘지만, 선미는 언제나 선을 그었다. 그와의 시간은 누구도 깰 수 없는 유일한 것이었다.
선미의 헌신은 끝이 없었다. 그녀는 군대에 입대한 진혁이 복학을 할 때까지 기다렸고, 학교로 돌아와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똑같이 정성을 다했다. 진혁이 8년간의 공부 끝에 시험에 합격한 날,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기뻐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선미가 고생했던 시간이 몇 배의 행복으로 되돌아올 거라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진혁이 최고의 순간을 맛 볼 때쯤, 선미는 정반대의 길에 서 있었다.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최근 들어 눈의 초점이 맞지 않고, 자꾸 어리러워 쓰러질 것만 같다고 했다. 선미의 말을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선미는 휴학을 하고 1년간 병상에 누워 있었다. 선미가 수술대에 오른 날, 진혁은 연수원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며 오지 않았다. 선미가 수술과 항암치료를 이어가며 병마와 싸우는 동안 진혁은 부모님의 반대로 어쩔 수 없다며 영영 떠나버렸다.
오랜만에 학교를 찾은 선미는 멀쑥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검정 일색의 정장은 누가 봐도 신입 사원 같았다. 한쪽 팔과 어깨 사이에 서류철을 끼우고 서 있었다. 선미의 오른쪽 눈은 나의 뒤 편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고, 다른 쪽 눈은 바닥을 보고 있었다. 나는 선미의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쭈뼛하고 있었다. "후유증. 평생 이런다더라.", 선미는 태연히 말하고는 내 팔을 잡고 앉아 준비한 서류를 보여줬다. "요즘 은행에 다녀. 인턴이야. 상품 팔아야 돼. 이거 봐봐. 괜찮으면 하나 해, 강요는 안 해.", 진혁처럼 고시에 뜻이 있던 그녀가 은행에 근무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 같은 놈도 고객으로 인정해 준다면 할 게. 몸은 괜찮아?"
선미는 허공에 대고 한숨의 공백 없이 말했다. "살아 있다는 게 참 좋더라. 참담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걸을 수 있고 일을 하게 되니 새로워. 다시 사는 것만 같아." 선미는 몸이 더 나으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거라는 말과 함께 주먹을 움켜쥐었다. 방향은 잃었어도 품은 희망은 꽉 찬 두 눈이 보였다. "넌 해낼 거야. 무엇이 되었든 원래부터 그랬어." 취업의 문턱에 선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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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되지 않아 동기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일 년에 한 번은 꼭 보자는 약속을 했지만 곧잘 깨졌다. 강의실이나 화장실 옆에만 가면 늘 있던 정수기처럼 동아리방, 플스방, 학교 지하 당구장과 정문 뒤편 오락실 노래방에서 늘 볼 수 있었던 녀석들이 자취를 감췄다. 각자의 위치가 달라지고 사정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서로의 삶에 묶이게 되었다. 우리가 모여야 하는 이유보다 모일 수 없는 이유가 늘어가면서 조금씩 멀어짐을 택하고 있었다. 가끔 누군가의 결혼 소식이나 축하할 일이 생길 때면 벌어진 간격을 좁히곤 했다. 그 주인공이 선미일 때도 있었다.
선미는 노량진 고시촌 생활 끝에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공무원 생활은 만만치 않았지만 고향인 충남에서 가족들과 사니 힘이 난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는 소식에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선미는 그 사람을 '네 살 많은 평범한 직장인'이라 소개했다. 친구들은 왜 하필이면 네 살이냐며 핀잔을 줬지만, 선미는 꿋꿋하게 "지금 내 모습을 다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의젓한 사람이야."라고 자랑했다. 선미가 적당한 비트에 랩을 하듯 남자친구 칭찬을 늘어놓는 동안 우리는 취해 있었다. 찡그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뿌연 사람 같은 물체가 손에 잡힐 듯 말 듯 했다. 나는 눈도 멀고 귀도 멀어 친구들의 이야기가 들리다 말다 했다. "남자친구 직업이 뭐라고? 그래서 사내 커플이라고? 아니라고?", "키가 엄청 크다고? 선미의 어디가 좋다고 했다고?", 주정뱅이 같은 나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아 계속 물어댔다. 그렇게 우리는 '선미의 남자'란 주제로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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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볼 게 있어.",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선미가 뜬금없이 톡을 보냈다. "오랜만이라 반갑기는 한데, 시간을 좀 봐.", 적당한 길이의 대화조차 상상하기 귀찮아서 얼른 끝내려 했다. 선미는 나의 톡을 받자마자 되물었다. "너는 아직도 내가 무엇이든 해낼 거라고 생각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보다 질문의 이유가 궁금했다. "무슨 일 있어?", 선미는 잠시 말이 없다가 장문의 글을 보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부모님의 빚을 갚느라 고생이 많다고 했다. 외동아들이라 자신이 아니면 부모님을 모실 사람이 없단다. 얼마 전 남자친구가 선미에게 청혼을 했다. 너만 있으면 버티는 삶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고백했다. 선미는 병약하고 볼 품 없는 나를 세상 제일 예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그 사람을 운명이라 여겼다. 서로의 마음과 굳건한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먼저 선미의 부모님께 결혼을 허락받기로 했다.
그러나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단다. 선미의 부모님은 빚도 많고 시부모까지 모셔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엇보다 큰 수술로 몸이 성치 않은 우리 딸을 더는 고생시킬 수 없다는 마음이 컸다. 선미는 부모님의 반대와 남자친구와의 사랑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남자친구를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니까, 평생을 살아도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부모님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도록, 결혼 말고는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없도록, 최후의 방법을 쓸거야. 아이를 갖겠어."
선미의 구구절절한 사연 때문인지 최후의 방법 때문인지 정신이 확 들었다. 잠도 달아났고 내일은 주말이니 선미와의 대화에 빠져 보기로 했다. "내가 이 시간에 이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아이가 최후의 방법이 되지 않기를 바래.", 망설이던 끝에 물어보기로 했다. "좀 쉽고 편한 사랑을 해 볼 생각은 없었어? 이렇게 인생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연애가 힘들지 않아?", 선미는 쉴새 없이 'ㅋ'를 줄줄이 보내고는 "야! 사랑이든 연애든 끝만 보고 달리니? 아니잖아. 사람과 마음에 맡기는 거지. 그 사람이 곁에 있고 지금 마음이 확실하면 끝이 무엇이 되었든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벼랑을 뛰어넘고도 남을 각오가 되어 있는 거야." 선미의 자신감 섞인 말에 안도감이 들었다. 불현 듯 '사랑의 연애학'에서 논문을 통과하고 제일 높은 학위를 받고 학사모를 쓰고 있는 선미의 졸업사진이 떠올랐다. "역시, 이번에도 해내겠어. 진심으로 건투를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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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생각보다 좁네. 에어컨은 빵빵하게, 오케이?", 해가 지날수록 거대한 몸집을 키워 온 녀석들이 올라탔다. 오랜만에 만난 탓에 별의별 이야기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삐걱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꽉꽉 채운 사람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중고차의 고장 난 소리인지, 잦은 회식과 상사의 핍박으로 곪았던 상처가 터져 나오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충남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은 서울에서 편도 3시간 정도 나오는 거리다. 이번 여정에서 운전기사로 선발된 이유는 별다른 게 없었다. 친구들이 사는 곳의 중간을 이으면 내가 사는 곳이었고, 두 놈은 어제 과음을 했으며, 나머지 둘은 오랜만에 학교 근처로 와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황금 같은 금요일에 아무런 약속 없이 지냈고, 여전히 학교 근처에 살고 있는 나의 탓이었다. 운전하는 내내 녀석들의 훈수를 들어야 하는 것은 달갑지 않았지만, 모두가 선미의 결혼식을 보기 위해 여러 일을 제쳐 두고 모인 거라 어느 때보다 단합되어 있었다. 누가 보면 마치 선미를 업어다 키운 사람들 같았다.
웨딩홀 앞에 들어선 순간 쏠려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신랑의 부모님은 많은 하객들과 짧은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었다. 신부 측은 선미의 형제자매로 보이는 사람들 외에는 한산해 보였다. 우리는 우르르 축의금을 내고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선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향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의 축하도 받고 사진을 찍느라 바빠 보였다. 결혼 준비로 살이 더 빠졌는지 웨딩드레스가 헐렁해 보였지만, 주인공의 입가를 보니 이 결혼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 대기실의 인파 속에 우리를 발견한 선미는 뭣 들 하고 있냐며 빨리 옆에 앉으라고 했다. 뻘뻘 흘리는 땀을 훔쳐가며 빼곡하게 앉아 순백의 자태를 거무튀튀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간신히 웃으며 한 장의 사진 속에 남고자 노력했지만, 훗날 선미가 이 사진을 보내준다면 굳이 들쳐 보고 싶지 않을 순간이었다.
커다란 문이 열리고 선미가 입장한다. 친오빠의 손을 잡고 한 걸음씩 내딛는 선미는 긴장한 기색 없이 밝아 보였다. 신랑이 선미의 손을 건네받았다. 신랑은 주례식 단상까지 걸어가는 내내 선미와 눈을 맞추며 보폭을 신경 쓰고 있었고, 주변에서 '신랑 멋있다.', '신부 예쁘다'하는 소리에 일일이 환호했다. 선미는 신랑의 팔을 툭툭 치며 그만 좀 하라고 눈치를 줬지만 방긋한 웃음은 어느새 귀에 걸려 있었다. 한 번도 부모님이 참석하지 않은 결혼식을 본 적이 없다. 부모님 중 한 분이 일찍 돌아가셔서 안 계신 결혼식은 봤어도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해서 참석하지 않은 결혼식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그곳은 축제의 한복판이었다. 신랑은 매 순간의 황홀함을 목소리와 몸짓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신부를 평생 사랑하겠냐는 주례인의 물음에는 웨딩홀이 떠날 정도로 우렁차게 답했고, 몇 주 동안 연습한 춤과 노래를 선보이며 하객들의 박수는 물론 선미의 휘황찬란한 율동까지 끌어냈다.
어두운 조명 아래 오롯이 두 사람만 빛나고 있었다. 로맨스 장르의 영화 속에서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모습이 촘촘히 느린 화면처럼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선미의 발밑에 붙어 있던 말로의 그림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보았던 것은 그녀의 담대한 의지와 뜨거운 열정으로 일궈온 사랑 앞에 맥을 못 추리고 타버린 불행의 단편들이었다.
선미가 여전히 춤을 추고 있다. 신랑보다 더 신이 났다. 큰 기대는 안 했지만 그 기대보다 춤을 못 춰 우리들의 손발이 닳아 없어지고 있었다.
선미야, 결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