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그곳의 가을
2023년, 그 해의 가을은 강렬했다. 평생에 기억될 경험을 했다. 하나의 사건이 나의 손을 떠나 일파만파 커지고 방송을 통해 세간에 퍼졌을 때, 알고 있던 진실과 몰랐던 사정이 드러났다. 그 사이를 헤매며 덤덤히 뉴스를 보았다. 이렇게 끝날 일을 누군가는 왜 그리 덮으려 했고, 누군가는 왜 그리 맞서려 했는지, 허탈함이 들기도 했다. 결국 모두를 지키지 못했고, 모두가 아파야만 끝이 날 이야기였다.
근무시간 중 직원이 쓰러졌다. 과호흡이 발생하며 기절했다. 응급차가 왔고 병원에 이송되었다. 인사부장은 그 소식을 듣자 마자 병문안을 다녀왔다. 무슨 일인지 몰라 조심스레 물었다. 부장은 쓰러진 직원과 면담한 이야기를 전했다.
유산에 대한 충격이 있었고, 유사산 휴가를 보낸 후 복귀를 하지 마자 워크숍 준비로 무리를 했다고 한다. 과중한 업무들은 야근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부담이 된 탓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본부 워크숍 전에 팀 단위로 진행되는 워크숍이었는데, 이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팀장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쓰러지기 전 팀장의 얼굴을 보자마자 과호흡이 왔던 것이었다.
부장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직장 내 괴롭힘을 떠올렸다. 이 사건이 정말 괴롭힘에 관한 일인지 알 순 없었다. 그저 이런 사건에서 가려진 사실을 찾다 보면 하나로 이어지는 점이 있는데, 그게 보통 괴롭힘 이슈에 닿는 경우가 많았다. 몇 번의 경험이 만든 생각의 편향이 틀릴 때도 맞을 때도 있었지만, 어느 쪽이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임을 직감했다.
부장은 쓰러진 직원이 며칠 쉬고 사무실로 오면 면담을 하고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장의 말대로 끝나지 않았다. 노조위원장은 직원이 쓰러진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배경에는 그동안 무자비한 폭언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팀장의 괴롭힘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노조위원장은 쓰러진 직원을 비롯해서 같은 팀에 있는 직원 모두 팀장의 폭언과 도를 넘는 성과 압박으로 각종 치료를 받으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워크숍 준비는 하나의 트리거였다. 워크숍의 주제는 반성이었다. 목표 실적을 달성하지 못한 팀원들이 본부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왜 실적을 달성하지 못했는지 잘못을 밝히고 앞으로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 계획을 말하는 자리였다.
좋은 실적을 내지 못한 그들에게 워크숍은 죄인을 공개 처형하는 자리처럼 느껴졌고, 이들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새로 부임한 팀장은 조력자이기보다는 강도 높은 훈련과 채찍으로 그들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자처럼 보였다.
쓰러진 직원이 복귀한 날, 부장은 그와 오랜 시간을 면담했다. 어떤 말들이 오고 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부장은 한결 정리가 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간 팀장의 엄격한 성과관리가 있었던 것 같고, 그로 인해 복귀한 직원도 어려움을 겪었다는 내용이었다. 부장은 팀장과 그 직원 간에 적절한 대화가 이뤄지면 상황이 잘 마무리될 수 있다고 보았다.
나는 부장이 왜 중요한 질문들을 던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팀장과 직원 간에 어떠한 갈등이 있었는지, 그로 인해 무엇을 느꼈는지, 계속 한 공간에서 일하는 것이 가능한지, 물을 것이 꽤 많았는데 그 모든 질문이 사건을 크게 만들까 봐 걱정이 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노조는 보란 듯이 맹공을 퍼부었다. 복귀한 직원을 포함해 팀원 전원에 대한 스트레스 검사부터 그동안 팀장이 어떻게 업무에 압박을 가하고 평소 어떤 언행을 보였는지 일일이 기록하여 부장에게 전달했다. 왜 회사는 잠자코 있는 건지, 누구 하나 잘못되어야 정신을 차릴 건지, 이 사건은 명백한 괴롭힘 사건이고 당사자가 명확한데 이렇게 책임 없는 모습을 보이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노조를 중심으로 인사 임원을 겨냥한 더 큰 공격이 이어졌고, 그즈음 어느 익명의 제보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쪽은 무책임하고 준법 의식이 없는 경영진을 비난했고, 다른 한쪽은 개인의 신변 보호를 위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이제 이 사건은 회사와 노조의 대립으로, 쓰러진 직원을 포함한 팀원들과 팀장의 싸움으로 번졌다.
노무사가 선임되고, 사건의 진상 파악을 위한 조사가 진행되었지만 결과를 내기까지 몇 번의 파행과 심의 위원들 간의 의견 불일치가 반복되었다. 소문은 소문을 낳고, 왜곡은 왜곡을 낳아 이제 진실에 대한 논쟁과 당사자에 대한 보호보다 반드시 누군가는 승자가 되어야 하는 집단 간의 공방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직장 내 괴롭힘 입법 5주년, 기획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내용들은 조각난 진실을 낱낱이 순서대로 맞추고 있었다. 등장인물들은 초췌한 얼굴과 짙은 패배를 맛본 목소리를 전하며, 갈 곳을 잃은 사람들처럼 멍해 보였다.
아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쓰러진 직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던 팀원들, 명예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돌아선 팀장,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일념으로 사건을 키워낸 노조, 그걸 막고 회사의 권위를 세우겠다며 대형 로펌을 앞세웠던 경영진 모두 복잡하게 얽힌 각자의 사정에 묶여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지나는 시간은 사건의 흔적을 지워내고 있었다. 불꽃이 번지고 곳곳을 태울 때는 참혹하고 뜨거워 몸서리쳤지만 황무지가 된 뒤에는 발길이 끊겼고, 누구도 찾지 않는 외딴섬이 되었다.
노조가 혹시 불법한 일을 저지를까 싶어 그들의 시위를 채증 한다며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나를 노려보던 그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경멸의 눈빛으로 나를 집어삼켰던 그 사람은 여전히 숨을 다해 그 섬을 지키고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