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내 정치의 두 얼굴

정치력은 역량인가? 독소인가?

by Yimhyehwa




[1] 어디에나 정치는 있다


정치는 살아 숨 쉰다. 정치 없는 조직이 있긴 할까? 직장인들의 소셜 커뮤니티 플랫폼인 블라인드에서 최근 몇 년간 급성장한 어느 E-Commerce 스타트업에 대한 전/현직자들의 평가를 본 적이 있다. 그중 인상 깊었던 건 경영진이 투명한 조직문화를 만들고 사내 정치를 없애기 위해 사적인 대화를 금지할 것을 지시한다는 것이었다. 또, 점심식사나 회식을 할 때도 누구와 먹는지조차 눈치를 보게끔 주의를 준다는 것이다. 경영진의 철학을 구성원에게 주입하는 이러한 행위도 따지고 보면 권한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의 정치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누가 어떠한 방향으로 정치력을 행사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평가, 승진, 보상, 징계의 영역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기존에 세워진 원칙과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것보다 그 결정이 불러올 파장을 고려한 정무적인 판단이 앞섰던 적도 많았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면서 팀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게 Operation에 많은 기여를 한 사람보다 승진 심사를 코앞에 두거나 리더 개인의 성향에 맞춰서 잘 보일 만한 액션을 보여줬던 영리한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독식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직무수행능력, 성과, 역량 면에서 턱없이 부족해도 힘 있는 임원 누구의 친척이거나 부모나 배우자가 우리 회사에 영향을 미칠 만한 특수관계에 있는 경우 항상 배려의 대상으로 분류되어 따로 대우를 해주는 경우도 적지 않게 봤다. 팀은 물론 상사, 동료, 후배 등 모든 구성원에게 잠재적인 해를 가할 만한 인품, 언행, 태도를 갖춘 사람들이 비일비재하게 직장 내 괴롭힘 등 비위를 저지르면서도 성과 내는 능력이 탁월해서 웬만한 이슈는 덮고 넘어가는 경우를 볼 때면 선한 다수를 병들게 하는 정치가 원망스럽기도 했던 것 같다.


직장 선배들이 가끔 이런 말들을 했다. "너도 회사 더 오래 다녀봐라. 지금이야 정치는 귀찮고 싫다고 말하지? 그리고 윗사람한테 간이든 쓸개든 다 떼줄 것만 같은 사람들 보면서 실력으로 승부하지 않는 비겁한 사람들이라고 떠들지? 알고 보면 정치도 실력이야. 그래서 능력 없으면 절대 못하는 거야. 정치가 마치 꼰대들이 벌이는 혐오스러운 행동인 것처럼 취급하지만 나이 들수록, 그리고 직급이 높아질수록 정치라는 게 얼마나 어렵고 또 필요한 일인지 깨닫게 될 거야."라고 말이다. 오랜만에 들렀던 어느 HR 실무자들의 단체 오픈 채팅방에 소개된 사내 정치(Office Politics)에 대한 기사글을 읽으면서 이 개념을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해보고 싶어졌다.


[2] 왜 조직에는 정치가 존재할까?


정치는 '피할 수 없는 조직의 운영 원리'로 이해된다. 모든 조직은 자원(예산, 인력, 승진 기회 등)이 제한적이고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식적인 제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의사결정의 빈틈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비공식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 바로 '정치'이다. 정치는 '보이지 않는 운영 체계'로서 정치를 무시하면 조직 맥락적 차원에서 살펴봐야 할 많은 이슈들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Niven Postma(2021.7), "You Can't Sit Out Office Politics-But You Can Use Them.", HBR].


[3] 조직 정치의 두 얼굴: 정치력 VS 정치 지각


(1) 정치력(Political Skill)


Florida State University의 Gerald R. Ferris 교수 등은 "Development and Validation of Political Skill Inventory"(2005) 논문에서 '조직 정치는 많은 영역에서 작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 내에서 명확히 정의되지도 않고 측정도 어려운 개념'인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서 조직 정치력의 핵심요소를 크게 ①사회적 기민성(Social Astuteness), ② 대인 영향력(Interpersonal Influence), ③ 네트워킹 능력(Networking Ablilty), ④ 겉으로 드러나는 진정성(Apparent Sincerity)으로 구분하고 개념화했다.


사회적 기민성이란 다른 사람의 감정, 욕구, 동기를 민감하게 파악하는 능력으로 조직 내 권력지형과 암묵적인 규칙을 잘 읽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회의에서 팀장의 피드백은 긍정적이었지만 표정과 억양이 미묘하게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을 때 이를 읽어내고 대응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또, 인사평가 시즌이 도래했을 때 누가 영향력 있는 평가자이며, 그들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빠르게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도 포함된다.


대인 영향력이란 상황과 상대에 맞춰 자신의 의견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으로 부드럽지만 효과적으로 태도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특성을 말한다. 예를 들면, 프로젝트 리소스가 부족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단순히 요구를 하기보다는 '이 프로젝트가 회사의 전략과 연결된 이유'를 강조하여 상사의 동의를 얻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또, 자신의 의견이나 추진 중인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대해 반대하는 동료가 있는 경우 이를 정면으로 받아치기보다는 공동의 목표를 강조함으로써 협력적인 행동을 지속적으로 유도하는 경우도 해당된다.


네트워킹 능력이란 공식 또는 비공식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함으로써 필요한 자원을 얻어내는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신뢰 관계에 기반하여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것이다. 예를 들면, 다른 부서의 사람들과 평소에 Coffee Chat을 하며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위기 상황에서 수월하게 협력을 이끌어내는 능력 등을 말한다. 또 승진 심사 전에 주요 의사결정자들과 미리 신뢰관계를 두텁게 형성해 두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진정성이란 자신의 행동과 말이 이해관계나 계산적인 목적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지 않고, 마치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이 역시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의 일종이다. 예를 들면, 상사의 제안에 무조건 동의하지 않고 필요시에 정직하게 우려사항을 말함으로써 "이 사람은 아부가 아니라 진심을 말한다."는 인식을 심어 주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또 동료에게 부탁을 하는 경우 단순히 "이것 좀 해줘."가 아니라 "당신의 전문성이 꼭 필요하다."는 맥락을 담아 상대방에게 신뢰와 존중을 느끼게 하는 행동도 이에 속한다.


(2) 정치 지각(POP, Perceptions of Organizational Politics)


정치 지각(POP)이란 '조직에서 정치가 만연하다고 느끼는 주관적인 인식'을 말한다. Ferris, Russ, Frandt(1989)가 이 개념을 최초로 제안했고("Politics in Organizations"), 이후 Ferris 등(1992)이 실제 조직에서 표본을 구하여 그 주장을 검증("Journal of Management") 하였다. Kacmar&Ferris는 "Educational and Psychological Measurement"(1991)를 통해 정치 지각을 측정하는 척도(POPS)를 개발하였다. 이 척도는 크게 세 가지의 차원으로 구성되는데 ①General Political Behavior(일반적 정치행동), ②Go Along to Get Ahead(울며 겨자 먹기식의 동조), ③Pay&Promotion Politics(보상 및 승진의 불공정/불확실성)이다. 이 척도는 조직의 정치 지각 현상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목적에서 도출된 것으로 '정치적 행동이 만연하다고 사람들이 느끼는 정도'를 설문 문항으로 측정하는 방식이다.


위 세 가지 차원을 좀 더 살펴보면, General Political Behavior(일반적 정치행동)뒷거래, 음모, 편애, 줄 서기 같은 일반적인 정치행동이 만연하다고 느끼는 정도를 말한다. 따라서 Survey 구성 시에는 '이 조직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한다.' 또는 '동료들이 권력을 얻기 위해 음모를 꾸미거나 뒷거래를 하는 경우가 있다.' 정도의 내용이 들어갈 수 있다. Go Along to Get Ahead(울며 겨자 먹기식의 동조)는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원하지 않는 결정에 침묵하거나 동조(동의)하는 정도를 말한다. Survey 구성 시에는 '이 조직에서 성공하려면 원하지 않는 결정에도 동의해야 한다.', '때로는 나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해도, 문제를 피하기 위해 침묵하는 편을 택한다.' 정도의 내용이 들어갈 수 있다.

Pay&Promotion Politics(보상 및 승진의 불공정 확실성)는 보상이나 승진이 실력보다 정치적인 줄 서기나 눈치에 의해 좌우된다고 느끼는 정도를 말한다. Survey 구성 시에는 '이 조직에서 승진은 실제 성과보다는 정치적 줄 서기에 의해 좌우된다.', '보상과 승진은 공정한 기준보다 상사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정도의 내용이 들어갈 수 있다.


실증 연구에 따르면 조직에서 구성원들의 정치 지각은 불확실성(모호한 규칙과 절차), 자원의 희소성, 권한의 집중, 공정성 약화와 같은 맥락에서 더욱 커진다고 본다. 그리고 대규모 메타분석 결과 정치 지각은 직무만족 및 조직몰입과 강한 부(-)의 관계, 스트레스 및 이직 의도와는 강한 정(+)의 관계를 가지는 반면, 직무수행성과나 조직시민행동과는 약한 수준의 부(-)의 관계를 보인다는 것이다. 조직시민행동(OCB, Organizational Citizenship Behavior)이란 조직 구성원이 직무기술서에 명시된 공식적 의무는 아니지만, 조직과 동료들에게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자발적이고 재량적인 행동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동료가 바쁠 때 이타적으로 업무를 도와주는 행동, 혁신적인 제도 개선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행동, 조직의 규칙을 잘 지키고 모범적이고 양심적인 행동, 조직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행동 등이 있다.


정치 지각이 직무수행성과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은 의아한 부분이다. 연구에 따르면 정치 지각은 주로 심리적인 태도에 큰 타격(만족, 몰입, 스트레스)을 주는 반면, 과업의 성과는 공식적인 통제와 직무에 대한 조직의 요구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정치 지각의 수준만 가지고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대신, 정치 지각이 만연한 환경에서는 창의적이고 자발적으로 일하고자 하는 동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자율에 바탕한 혁신적인 성과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정치 지각이 조직시민행동에도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연구에 따르면 정치 지각의 정도가 높아진다고 하여 모든 구성원이 똑같이 조직시민행동을 줄이지 않는다고 한다. 즉 어떤 사람은 내가 굳이 더 솔선수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조직시민행동 수준을 낮추는 반면, 또 어떤 사람은 정치적인 관점에서 더욱 적극적인 행동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정치가 만연하다고 느끼는 환경에서는 각 구성원이 상반된 반응과 행동을 보임으로써 평균적으로 그 효과가 약화된다고 본 것이다.



[4] 정치력은 측정 가능한 역량


Ferris 등은 정치력이 명확히 정의되지도 않고 측정도 어려운 개념이라는 점을 문제로 제기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력의 핵심요소를 네 가지로 도출했고, 이 네 가지 차원에서 개인의 정치력을 측정할 수 있는 척도를 개발했다. 이것이 'PSI(Political Skill Inventory)'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구에 따르면 PSI 점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상사 평가에서 더 높은 성과(점수)를 달성했으며, 리더십 효과성 및 팀 성과와도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였다는 것이다. 즉, 정치력은 단순히 '술수'가 아니라 개인의 성과 및 리더십의 성공적인 요인을 설명하는 심리적이고 행동적인 역량임을 실증한 것이다. 특히 정치력의 네 가지 요소 중 '겉으로 드러나는 진정성'이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한 영향력을 설명하는 강력한 요인으로 팡가 받고 있으며, 정치력이 높은 리더는 팀 몰입, 성과, 협업의 수준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발견했다.


✨ [참고] Political Skill Inventory (PSI) - 18문항


아래 문항을 실무적인 진단에 활용할 경우 저작권 인용에 관한 규정 및 관련 논문을 사전에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아래 문항을 활용하여 진단 시에는 강한 부정과 강한 긍정 사이의 척도를 7점으로 두어 응답의 변별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5점 척도보다 7점 척도를 사용할 경우 응답자가 자신에게 더 맞는 답변을 세분화하여 응답할 수 있게 되며, 응답의 범주가 늘어날 경우 분산이 커짐으로써 회귀분석 및 상관분석에서의 설명력을 높일 수 있게 된다.




[5] 정치력에 대한 최근의 연구


2010년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치력에 대한 연구는 리더십 스타일과 연계(변혁적 리더십, 서번트 리더십 등)되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정치력은 웰빙(Well-being), 건강, 스트레스 관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정치 지각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도 완충하는 효과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정치력이 높을수록 성과 창출 및 리더십 효과가 커질 뿐만 아니라 커리어 개발, 사회적 자본, 멘토링 측면에서도 유리하다고 본다.


커리어 개발의 경우, 경력 이동성(Career Mobility)과 관련이 있다. 정치력이 높은 사람은 승진 가능성이 더 높고(상사 및 평가자를 설득하는 능력), 조직 내/외에서 포착되는 기회에 더 빨리 접근하는 경향(네트워킹 능력)이 있으며, 평판 관리에도 능숙하다(겉으로 드러나는 진정성). 즉, 정치력은 단순히 현재의 성과뿐만 아니라 커리어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속도와도 연결된다.


사회적 자본정치력을 더욱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와 관련이 있다. 사회적 자본이란 '관계망 속에서 얻는 자원(신뢰)'를 말한다. 정치력이 높은 사람은 네트워킹 능력과 사회적 기민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자본을 직접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다. 이에 따라 정치력이 높은 사람은 정보 흐름의 중심에 서게 되고, 자원을 더 쉽게 확보한다. 또한 조직 내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Influencer)와 연결되어 비공식적인 자원을 얻을 가능성도 크다. 결국 높은 정치력은 사회적 자본을 얻을 기회를 확장시킴으로써 다시 정치력을 강화하는 구조를 만든다.


멘토링은 경험 많은 사람이 후배에게 지식, 경험, 조언을 해주는 관계적인 특성을 말한다. 정치력이 높은 멘토는 후배들을 더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옹호해 줄 수 있으며(Sponsorship), 조직 내 영향력을 활용하여 멘티가 원하는 기회를 창출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멘토링 관계 자체를 신뢰 기반으로 구축할 수 있는 힘(겉으로 드러나는 진정성)도 강하다. 결과적으로 멘티 입장에서는 정치력이 높은 멘토 밑에서 더 많은 자원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6] Summary


조직 정치력에 관한 연구는 개인의 역량 측면과 구성원의 정치에 대한 지각 측면에서 주로 논의되어 왔다. 이후 최근까지의 연구들은 정치력이 정치 지각에 따른 부정적(독소) 효과를 완충하는 효과가 있음을 전제로 정치력과 정치 지각 간의 상호작용 모델을 강조한다. 즉, 정치력은 개인의 성과 및 리더십 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역량 개발의 일환으로, 정치 지각은 정치 만연에 따른 조직 내 발생 가능한 리스크로서 두 가지의 축을 모두 관리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