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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Sep 08. 2020

스위스에 삽니다

요들송과 퐁듀의 나라?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요들송과 퐁듀 정도였다. (요들은 어찌 된 일인지 스위스에 와서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고, 퐁듀는 생각보다 더 많이 먹는다) 인연을 맺을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나라였다. 그런데 어찌어찌 일을 하게 되면서 2년 넘게 살고 있다. 그렇게 낯설던 나라에 어느새 적응했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



3개 국어'밖에' 못해요

 '감자전으로 나뉘는 스위스 문화권' 에서 다루었듯 스위스는 대표적인 다중 언어 국가다. 이 나라에서 이중 언어 사용자라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스위스에서 나고 자랐다 해도, 부모가 이민자인 경우가 많아 가정에서는 부모의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친구 A의 경우, 어머니는 스페인 사람, 아버지는 포르투갈 출신이라 자연스레 두 언어를 익혔다. 제네바에서 학교를 다녔으니 불어 또한 모국어다. 또 영어에도 능통해 4개 국어를 하는 셈이다.

친구 B는 제네바에서 자라 불어를 하고, 영어 또한 모국어만큼이나 잘한다. 친구는 여기서 만족하지 못한다. 남자친구가 있는 취리히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싶은데, 두 언어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등록했다. 물론 스위스 독일어가 아닌 표준 독일어를 배울 것이다. (스위스 독일어는 스위스에서만 통한다)

이런 환경에 있다 보니 왠지 모르게 기가 죽는다. 불어 외에 어떤 언어를 하냐고 물어올 때면, '한국어, 불어, 영어, 3개 국어밖에 못해요'라고 답한다. 외국어에 특별한 재능이 없는 내가 두 언어를 배우는 데 들인 엄청난 노력을 생각해보면, 좀 더 당당하게 답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넘실대는 K-물결 속에 어느새 한국어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언어가 되었으니!



머릿속의 계산기를 끄다

처음 스위스에 왔을 때 집세며 장바구니 물가 등등 눈에 보이는 모든 숫자란 숫자에 기함했다. 그중에서도 적응이 더뎠던 것은 바로 외식 물가다. 점심 메뉴의 경우 15~25프랑 (1프랑=약 1300원), 저녁은 30~50 프랑 정도는 줘야 식당에서 식사다운 식사를 할 수 있다. 정착 초기에는 외식을 할 때면, '한 끼에 이게 대체 얼마야'하며 빠르게 계산기를 돌리곤 했다. 한식당에 갈 때 제일 속이 쓰렸다. 사만 원이 넘는 비빔밥을 먹고 집에 오면 왠지 소화도 안 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도 친구들을 만나고 사회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머릿속의 계산기를 끄고, 이곳의 숫자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다행히 한국에 비해서 그렇게 자주 외식을 하지 않고, 하더라도 식당, 카페, 노래방 등 여러 번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퇴근 후 친구들과 아페로(식전주)만 한잔 하고 쿨하게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덕분에 따지고 보면 되려 소비가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4만 원짜리 돌솥비빔밥의 맛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장 보러 프랑스 가자

한국인으로서 내게 국경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마음먹으면 쉽게 왔다 갔다 넘나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가는 버스를 탔을 때 난생처음 차로 국경을 넘어봤다. 깜깜해서 밖이 보이지도 않았는데, 두리번거리며 괜히 엄청나게 긴장했던 기억이다.

제네바는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시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프랑스에서 장을 보는 사람이 많다. 특히 육류와 아시아 식료품은 프랑스가 훨씬 싸기 때문에, 차가 있다면 코 앞의 국경을 넘어 장을 보는 게 훨씬 이득이다. 이제는 '장 보러 프랑스 가자'라는 말에 새삼 놀라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이 약 세 달간 봉쇄되었다. 그 기간 동안에는 노동허가증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평소처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없었다. 그제야 국경이라는 게 존재했음을 다시 깨닫게 됐다. 이웃 나라와의 경계가 희미하다는 것,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국경에 있는 세관, 아주 가끔 무작위로 신분증을 요구한다



운동, 운동 그리고 또 운동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을 깔았던 적이 있다. 그 앱에는 온통 근육질 몸매를 뽐내며 상반신을 노출한 남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취미란에는 스키, 달리기, 암벽 등반, 수영, 헬스... 온갖 운동을 다 집어넣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사진 몇 장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정글에서 눈에 띄기 위해 과장한 면이 있겠지만, 인기를 끌려면 운동은 필수인 듯하다. 게다가 이곳 사람들, 놀랄 만큼 운동과 친숙하다.

한국인도 만만치 않은 등산의 민족인 줄 알았는데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래도 장비 면에서는 절대 지지 않을 것 같다)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내던 나는 주로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랐다. 그렇게 정상에 도착하면 풍경보다 사람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10대 자녀들과 산악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부모들, 갓난아이를 둘러업고 올라온 젊은 여자들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스위스는 스키를 타기에 최적의 환경이기도 하다. 제네바 사람에게 인기 있는 등산길인 쥐라 산맥은 눈이 쌓이면 스키장으로 변한다. 스위스인은 어렸을 때 스키를 배우고, 스키 방학이 있을 정도라 수준이 상당하다. 내가 스키를 배우기 위해 몽블랑 스키 학교에 가니, 나와 한국인 친구를 제외한 학생은 다 미취학 아동이었다. 스위스 사람들은 이렇게 사계절 내내 산으로 들로 호수로 향한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마음껏 누리며 건강한 취미를 가지는 것이다. 나도 등 떠밀려 이것저것 다양한 종목에 도전해보고는 있지만 아직 취미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운동은 없다.



낯선 곳이 삶의 터전이 되고, 새로운 생활 방식이 일상이 된다는 게 참 재밌다. 문제는 처음에는 새로워 마음을 설레게 했던 것에 점차 감흥을 잃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것들을 흐리멍덩한 눈으로 바라보는 스스로에게 놀랄 때가 있다. 낯선 시선으로 날마다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워져 벌써 가을이 훌쩍 다가왔음을 느낀다. 올해 제네바에서 보내는 가을은 또 어떤 추억과 감정으로 아름답게 물들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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