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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un 04. 2020

제네바의 아름다운 가게, 엠마우스

착한 소비를 위한 공간

엠마우스(Emmaüs)는 프랑스의 피에르 신부(Abbé Pierre)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빈민구호를 위해 설립한 단체다. 37개국에 분포해 소외 계층을 돕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중고 상점만 다루려고 한다. 매장에는 가구, 의류, 가전제품, 식기, 장식품, 책 등 없는 게 없다. 판매되는 상품은 모두 시민의 기부를 받은 것이니 해외판 아름다운 가게라고 할 수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엠마우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과거 노숙자, 알코올 마약 중독자 혹은 이민자라는 것이다. 홀로서기를 위한 준비 과정으로 공동체에 속해 일하며 자립심을 키운다. 동시에 언어가 서툰 외국인에게는 불어 수업, 중독자에게는 재활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상점의 수익금은 모두 공동체 운영과 직원의 일자리 교육과 자활에 쓰인다.  


사실 엠마우스는 나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프랑스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몇 주 동안 머물며 봉사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일하는 동료(이곳에서는 동반자, 친구라는 뜻의 compagnon '꽁파뇽'이라고 부른다)의 구성을 듣고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두려움은 빠르게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나 역시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으로 만나지도 않은 사람들을 미리 재단하고 있었으니깐. 감히 나의 짧은 인생살이로는 판단할 수 없는 제각각의 이유로 그곳까지 오게 된 사람들이었다. 동료, 봉사자 할 것 없이 어울려 따스한 대화와 정을 나눈 뜨거운 여름이었다. 또한 단체에서 지내는 동료를 보며, 든든한 울타리가 있다는 것이 개인에게 얼마나 큰 안정감을 주는 지도 느낄 수 있었다.


봉사 활동 업무는 단순했지만 쉴 겨를이 없었다. 오전에는 기부받은 물건을 분류하고 정리했다. 나는 주로 무겁지 않은 옷 파트에 배정되었는데 도무지 판매 가능한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내 눈엔 다 그럭저럭 입을 만해 보였다. 그래서 베테랑 동료 나디아에게 옷을 보여주면, 힐끔 쳐다보고 '쓰레기통으로!'라고 외쳐주었다. 그렇게 오전 내내 '버려? 말아?'를 반복하고 나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전자기기의 경우에는 작동이 안 되면 수리해서 내놓고, 드물지만 재활용이 불가할 정도로 상태가 나쁜 제품이 들어오면 곧바로 폐기 처분했다. 오후에는 상점에서 고객을 응대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공동체였는데, 평일에도 물건을 기부하는 사람과 사 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이제 새로운 도시에 가면 엠마우스 매장을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제네바에도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상점이 있었다. 게다가 알고 보니 제네바는 프랑스 다음으로 첫 해외 공동체가 들어선 도시가 아닌가!


코로나 시대에도  제네바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엠마우스

제네바의 엠마우스는 유명 상표나 최상급 골동품을 판매하는 부티크와 일반 상점으로 나뉘어있다. 가격 비교를 하자면 부티크에서 파는 스탠드가 100프랑이라면, 일반 상점에서는 10프랑 내외로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상품의 상태와 질이 다르다.  


 1프랑에 득템한 접시

잘 찾아보면 독특한 그릇과 쓸수록 멋이 나는 빈티지 가구도 꽤 많다. 일반 상점의 경우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다. 그래서 계산대 앞에 서는 순간도 나름의 재미다. 가격을 미리 예상해보는데 생각보다 더 낮은 가격을 부르면 괜히 기분이 좋다. 지난번엔 인심 좋은 직원을 만나 화분 몇 개와 그릇을 5프랑에 사서 어찌나 신나던지! 


이처럼 물가가 높은 제네바에서 알뜰하게 쇼핑을 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다. 물건을 재활용한다는 면에서 저절로 환경 운동에 참여하게 되고, 구매를 통해 도움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눌 수 있단 측면에서 자선 운동에 참여하게 되는 셈이다. 새로운 도시에 와서 빠듯한 예산으로 살림살이를 마련해야 하는 사람, 중고 물품 더미에서도 보석을 찾아낼 줄 아는 멋진 안목을 가진 사람 모두에게 추천한다. 착한 소비를 할 수 있는 엠마우스, 나만의 제네바 핫플레이스 목록에서 빠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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