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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Oct 08. 2020

오감으로 세상을 만나는 당신에게

민감해도 괜찮아요


퇴근길 트램에서 번호를 물어온 사람이 있었다. 스위스에서 이런 일이 내게는 흔치 않다. 그래서 한눈에 봐도 수상쩍은 사람만 아니라면 기쁜 마음으로 번호를 내주는 편이다. 독일에서 왔다는 그는 독일인답게 맥주 한잔하자는 연락을 해왔고, 곧 약속을 잡았다. 별다른 끌림은 없었지만 유쾌한 대화가 오갔다. 그중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다.


"너를 안 지 얼마 안 됐지만, 이야기해보니 너 초민감자(The Highly Sensitive Person)인 거 같아. 작은 소리나 냄새에도 민감하고, 다른 사람 감정도 잘 읽잖아. 이 단어 들어봤어?"


나 : "응, 근데 별로 관심 없어. 다들 어느 방면에선 조금씩 민감하지."


"테스트해봤어?"


나 : "아니, 그런 테스트는 MBTI처럼 결과를 알고 나면, 거기 끼워 맞춰서 나를 해석하게 되잖아. 이미 내가 어느 정도는 예민하다는 건 아니까, 굳이 재확인받고 싶지 않아. 실은 더 심해질까 봐 겁나."

 

"그것마저 섬세한 사람의 특성이라고 봐.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테스트해보겠지."


이어 그는 말했다. 불어에서 같은 개념을 'hyper-sensibilité'라고 불러서 부정적인 느낌이 들지만, 영어로는 highly (고도의)라는 부사가 붙는다고. 마치 특화된 능력처럼. 그래서 오히려 영미권 사람들은 테스트를 해보기도 전에 자신을 HSP(The Highly Sensitive Person)라고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역시 이를 재능으로 여긴다며, 좋은 면이라고 치켜세워주었다.   


집에 돌아가서 그에게 문자를 받았다.

테스트 링크를 보내며 언젠가는 나에게 유용할 거란 말을 덧붙였다. (물론 테스트는 해보지 않았다. 대충 훑어봐도 나여서)


그가 썼던 용어 'The Highly Sensitive Person'의 정확한 한국어 번역은 찾지 못했다. 다만 한국어로 부정적 어감이 있는 '예민하다'보다는 '민감하다'나 '섬세하다'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민감함'은 내게 줄곧 화두였다. 늘 생각이 많은 것을 콤플렉스로 여겼다. 가끔 차단기를 내리듯 딸깍 하고 머릿속의 스위치를 내려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때도 많았다. 머무는 생각들 중 열에 아홉은 불필요하고, 생산적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불어에는 'tourner la page' (책장을 넘기다)라는 표현이 있다.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하는 걸 의미한다. 난 쿨한 척에 능한 편이지만, 불행히도 쿨하게 기억의 책장을 넘길 줄 아는 사람이 아니다. 이 표현에 나를 빗대자면 같은 장을 여러 번 읽고, 마음에 들면 밑줄도 긋고,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해보곤 한다. 뒤로 넘어갔다가 혹시나 놓친 건 없는지 다시 앞장으로 돌아오는 일도 부지기수다.


예민한 사람들과 가까이하고 싶지도 않았다. 동족 혐오였을까? 그들의 감정 변화를 재빠르게 알아차렸고, 그 감정이 내게 영향을 미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공감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드니깐. 그래서 타인의 예민함은 모른 채 했고 나의 예민함은 꼭꼭 감추는 쪽을 택했다.  


어른이 되어 예민함이란 나쁜 것이 아니고, 뜯어고쳐야 하는 특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젊은 날 유럽 살이가 분명 도움이 되었다. 이곳은 한국에 비해서 남의 눈치를 덜 봐도 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또 내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할수록 괜찮은 사람이 되니깐. (하지만 여전히 예민한 사람이라는 레이블링은 불편하다)


세상의 절반은 내향성이 강한 사람으로 이뤄져 있고, 그중 절반에서 70% 정도가 HSP로 분류된다고 하니, 열 명 중에 두세 명은 민감한 사람이 된다.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다. 나는 이 민감성을 재능이나 능력이 아닌 그저 타고난 성정이라고 본다. 다만 이 성향을 자신을 괴롭게 하는 감옥으로 만들지 않려면 일종의 훈련이 필요하다. 민감함이 삶을 괴롭게 하는 우울을 낳는다면, 이를 잠재우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내 타고난 자질을 잘 가꾼다면 언젠가는 빛나는 통찰력과 지혜로 발휘되길 소망한다.

 

약간의 정신 승리도 필요하다. 지나간 일을 곱씹는 성격은 이미 지나가버린 일을 머릿속으로나마 몇 번이고 다시 살아볼 수 있게 하니, 꽤 멋지다. 또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훨씬 풍성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겐 밋밋하게 받아들여질 일을 오감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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