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SW(소프트웨어) 강의 이튿날이다.
오전에는 '사회적 경제'에 관한 강의가 진행됐다. 보통은 강사분이 수업 전, 가벼운 사담이나 농담으로 밝은 분위기를 조성해 이목을 집중시킨다. 미소 지으며 낮지만 온화한 톤으로 서두를 이끌면 수강생들은 등을 곧추고 말씀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 오신 분께는 이 중요한 요소를 찾기 어려웠다. 사회 용어들이 쏟아져 나오자 동공 지진과 함께 잘 익은 벼처럼 고개가 숙여진다. 날씨마저 거드니 우중충함이 배가 된다. 그렇게 3시간 반 동안의 연설은 귓속에 머물다 증발했다.
오후에는 다른 강사분의 'SW교육활용' 강의가 진행됐다. 연이은 강의에 대부분 심신이 지친 상태다. 점심까지 한가득 먹었으니 눈꺼풀이 곧 닫힐 예정이다. 또 일장연설이 이어질 거라 짐작하던 찰나. 강사분이 밝고 맑은 목소리와 미소를 띠며 수강생들과 마주했다. 어쩐지 그 공간의 온도는 위로와 응원처럼 느껴졌다. 마치 '여러분, 많이 힘드시죠? 그래도 잘 해내고 있어요. 함께 해봐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메모장' 프로그램을 실행시켜 스무고개 같은 자기소개를 쓰는 미션이 주어졌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수강생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함인가? 설마 발표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갖가지 추측들이 난무했지만 일단 집중해서 질문에 답변을 적어본다. 다 작성하고 나니 이번엔 PPT를 만들라 하신다. 아뿔싸! 갑작스러운 과제 같은 수행은 곤혹스럽습니다만. 교실 안은 여기저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 찼고 시간은 발표시간을 향해 흘렀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다들 발표가 끝날 때마다 힘찬 박수로 응원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그간 엮어온 시간들을 풀어내는 이 순간이 참으로 귀했다. '나의 교육관, 교육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 수강생이 이런 대답을 했다.
배우고 싶게 만드는 것.
답을 듣는 순간 '왜 이 생각을 못했지?' 머릿속에 물음표가 쏟아졌다. 배울 내용을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치는 것은 중요한 요소이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학생이 배울 준비가 되었는가? 동기부여가 전달되었는가? 배움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가?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는 부분이 결여된 것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뭐 하고 싶니? 뭘 배우고 싶니?'라고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하는 경우가 극소수라 한다. 한창 꿈꾸며 의욕 넘치게 배워야 할 나이에 배움의 욕구를 상실해 가는 아이들. 그런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하는 선생님들.
서로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자, 오늘 배울 내용은 이거예요. 어쩌고 저쩌고......' 부정확한 발음과 어색한 미소, 알 수 없는 낯선 용어들을 주절주절 늘어놓는다면 어떤 학생이 즐겁다고 경청하고 있을까. 오늘 오전 수업시간에 느꼈던 그 불편한 감정들을 하마터면 미래의 내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할 뻔했다.
교육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다.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폭격기처럼 쏟아붓는 행위는 서로에게 고문과 다름없다. 오늘의 수업을 진행해 주신 두 강사분께 참으로 감사하다. 미래에 어떤 교육자가 될지 다짐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이 초심을 기억하며 학생들 앞에 서는 날의 내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