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전에는 준비시간이 필요하다. ‘본격적’이라는 단어는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어떤 사람은 미리 세워둔 계산하에 재빨리 준비를 끝마친다. 반면에 첫발을 내딛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지역 도서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이른 아침의 도서관은 사람이 별로 없어 단조로웠다. 입구 근처의 책상에 앉아 ‘오늘은 반드시 책의 반절 분량은 읽고 가겠다’라는 마음으로 책과 마주했다. 그런데 어찌한 일인지 다짐과는 무관하게 엉성한 집중력이 눈의 발목을 잡았다. 같은 텍스트를 읽고 또 읽었다. 난감했다. 눈에 불을 켜고 한참을 씨름하던 그때, 한 여성이 내 앞자리에 앉았다. 여성은 가방에서 이것저것 주섬주섬 꺼내더니 책상에 턱 하니 올려놓았다. 덕분에 겨우 제자리로 돌려놓은 집중력이 산란하게 흐트러졌다. 바스락거리는 소리, 비닐을 뜯는 소리가 한차례 휩쓸고 간 후에야 다시 고요해졌다. 나는 숨을 크게 몰아쉬고는 다시 텍스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책의 내용에 몰입하니 가속도가 붙어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목표 분량에 다가갈 즈음, 한 다리 건너 옆자리에 또 다른 여성이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여성은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고 싶은 모양인지 부산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처음에는 물을 마시더니 이내 헛기침을 연거푸 해댔다. 의자가 삐그덕 소리가 나도록 다리를 덜덜 떨던 여성은 휴대전화가 울리자 그 자리에서 소곤거리며 통화를 했다. 책상 위에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놓여있는 여성의 책이 참으로 쓸쓸해 보였다. 장소에 맞는 예의와 목적을 잃은 듯한 여성의 태도에 적잖이 불쾌해졌다.
결국, 안쪽 깊숙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야 나는 목표 분량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출구로 향하는데 조금 전 불편한 시간을 공유했던 한 다리 건너 옆자리의 여성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여성은 여전히 눈보다 손이 바빠 보였다. 그녀를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말을 건넸다.
준비는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나요? 이제 책을 읽을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