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이선영 님, 2020년 4월 20일 사망하셨습니다.
저는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러 온 무브 투 헤븐의 한그루입니다.
이제부터 이선영 님의 마지막 이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 중에서
사람이 시신이 되어 실려 나간 뒤, 그 사람의 물건과 흔적이 남는 공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무브 투 헤븐의 이야기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유품정리사로 일하는 한그루(탕준상)는 죽은 이의 공간에 들어서면 항상 먼저 고인에게 인사를 하며 일을 시작한다. “당신은 사망했고, 나는 이곳에 남아 있는 당신의 흔적을 치우기 위해 온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마치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그곳에 남아 있을 혼에게 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은 죽었고, 이제 당신이 머물 곳은 이 세상에 없다고.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접하고 먼저 떠올린 것은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이었다. 쓸쓸하게 혼자 죽음을 맞고, 죽은 뒤에도 한참 뒤에서야 발견되는 고독사. 고독사의 현장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부 일을 하는 시인이 쓴 <죽은 자의 집 청소>를 도서관에서 대출해 왔지만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었다. 흥미로운 소재라 생각했지만 막상 고독사의 현장을 세세히 알게 되는 것이 꺼려졌다.
무브 투 헤븐은 유품정리사라는 생소한 직업의 이야기를 1시간짜리 에피소드 10개로 만들었다. 드라마에서 처음 다루는 직업인데,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다. 죽은 이의 물건을 살피며 그의 생애를 돌아보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그 과정에서 유품정리사의 애환을 다루는 이야기일까.
어설픈 예상은 빗나갔다. 무브 투 헤븐은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났거나 일어났을 법한 사건들을 다루는 사회물이었다. 홀로 사는 노인의 고독사를 다룬 에피소드도 있었고, 스토킹으로 인한 살인 사건, 20대 계약직 노동자의 산재 사고 등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이 드라마 속에 담겼다. sbs 드라마 모범택시가 조두순 사건으로 시작해 장애인 강제 노동, 음란물 불법 유통 등 실제 사건을 다룬 것과 유사하다.
무브 투 헤븐과 모범택시 모두 공권력이 해결하지 못한 사건들을 주인공들이 해결해 나가지만, 방점은 각기 다른 곳에 찍혀 있다. 모범택시가 일종의 활극처럼 사건을 시원하게 클리어(clear)해 나가는 반면 무브 투 헤븐은 사건 이후 시신으로 남은 사람과 주변 사람들을 살펴본다. 고독사한 치매 노인의 아들에게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주고, 정당방위 사고로 결론 난 사건이 실제로는 스토킹으로 인한 살인이었음을 밝혀낸다. 그러면서 피해자 주위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지금은 차가운 시신이 된 사람의 캐릭터를 그려낸다.
최근 드라마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다룸으로써 다큐와 뉴스가 보여줘야 할 영역에까지 깊이 들어와 버렸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 드라마에서 만들어지는 허구의 사건보다 더욱 강력하고 극적이기에 일어난 현상이다.
무브 투 헤븐은 최근에 방영된 여타의 사회물 드라마처럼 공권력을 허수아비로 만들며 사적인 복수가 주는 쾌감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 그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같이 희로애락을 느끼며 일상을 영위하던 사람이 남겨 놓은 것들을 살펴보며 그를 편히 보내주는 데에 집중한다. 이러한 해결 방식이 사후약방문 같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것이 쎈(!) 드라마들 사이에서 무브 투 헤븐이 영리하게 자리를 잡는 방식이다.
다행이다. 사적 복수가 트렌드가 되어 점점 자극적인 방식으로 달려가던 사회물 드라마의 흐름이 무브 투 헤븐에서 방향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