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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시헌 May 13. 2024

<김수영 시 전집 비평문-<봄밤>을 중심으로>

 김수영 시인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의 대표적 참여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초기에는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하는 시를 주로 쓰다가 4.19 혁명을 기점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탄압과 압제에 맞서 적극적으로 부정과 타협하지 않는 정신을 강조하는 시와 산문을 썼다.
 김수영 시인의 작품을 몇 개 읽어보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참여시인으로서의 김수영이 이렇듯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는 탓인지 나는 김수영의 시는 모두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사령(四靈)의 구절처럼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와 같은 비판적 표현으로만 되어 있는 줄 알았다. 과제를 위해 김수영 시 전집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김수영의 시들을 읽어보면 <아침의 유혹>에 묘사되는 서울역에서 아내와 만나는 장면,<미숙한 도적>에서 묘사되는 김수영이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장면, <시골 선물>에서 시골에 내려갔다가 잃어버린 낡은 모자 생각을 하며 도시생활의 난잡함을 비판하는 장면,<사무실>에서 일하는 자신을 묘사한 장면, <겨울의 사랑>에서 아내(?)가 지어준 속옷을 보며 그녀의 사랑을 느끼는 장면 등 여러 작품들이 정말이지 누구나 겪으며 마음에 품을 법한 생각을 담고 있다.
 <구름의 파수병>에서 시에 반역하는 생활을 한다고, 시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스스로와 억압된 세태를 성찰 및 비판하는 김수영이 아니어도, 아니, 오히려 그와 반대이기에 김수영의 인간적인 뿌리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읽혀진다.
 그는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하였고 <김일성 만세>라는 시에서도 나오듯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무슨 철저하고 합리적인 사상가여서 그러한 위치에 섰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작은 일상에서도 발견되는 불합리, 가령 <조그마한 세상의 지혜>에서 밝혔듯이 손익을 계산하는 인간관계와 같은 답답한 현실만 보아도 ‘포탄’이라고 비판하는 성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6.25 전쟁 당시 포로수용소에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런 그가 그곳에서 살아남았음을 괴로워하는 것도 이념의 비인간성을, 그 비극을 끔찍하게 겪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비록 그가 버스에 치여 죽기까지도 <에정지둔>이라는 시에서 간절히 바라던 조용한 시절은 그에게 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수영의 시들은 내 마음에도 깊이 와닿았던 것 같다. 나도 평소에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를 쓰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스스로를 자조하면서도 위로하고 싶은 무엇인가 고독하면서도 익숙한 감정이 김수영의 시들에서도 들려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공감되었던 시는 <봄밤>이라는 작품이었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봄밤>(1957),김수영
 젊음이란 무엇인가. 무엇이길래 젊은이는 삶의 고통을 정면으로 받아내야 하는가. 아니, 삶의 고통을 받지 않는 나이란 게 존재하기는 할까? 두렵다. 옆을 돌아보면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여 조급해진다. 김수영의 <봄밤>은 꼭 이런 나에게 내미는 위로이자 조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대학에 와서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랬다. 학부생이고 이제 막 2학년밖에 안된 주제에 화려한 용어들을 쓰고 싶어했고 지적인 허세를 부리고 싶었다. 내가 이제까지 쌓아온 것은 사실 얕기만 한 물 웅덩이에 불과할지라도 어떻게든 결과를 내고 싶었다. 내가 가는 길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고, 나는 스스로 강박적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나의 정신은 시에서 그려지는 김수영의 모습처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에 불과했다.
 나는 대학에 오기 전,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사실 지금도 나아진 것은 아니다. 늘 스스로를 비관하고 두려워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있을 시절에도 이미 나는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만 때문에 사람들에게 따돌림 받고 선생님들로부터는 외면받았다. 처음에는 그들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부족함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때 나는 무슨 최고의 마법사라도 된 것인 양 잘난 척을 하고 실제로도 자신에 대해 눈에 콩깍지가 씌었지만 마침내 그것이 벗겨졌을 때, 마치 정신의 큰 줄기가 꺾인 느낌이 들었다. 그 후로 정말 술에 취한 것처럼, 나의 마음은 필름이 끊겼다. 학교에서는 매일 조퇴를 하고 집에 와서는 컴컴한 방에서 게임이나 영화를 보면서 하루 종일 시간을 때웠다. 그렇게 마음을 무디게 흐리게 혼탁하게 희석시켜서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늘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늘 잠을 청했지만 불면증까지 찾아와 노래를 들으면서 잠에 들어야 할 정도로 외로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오히려 나의 증세는 심해졌다. 부모님과 대판 싸우는 일이 일상이 되고 가출도 몇 번 하고, 술을 마시고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정신 병원에 입원했던 적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진작에 인생의 출발을 시작했는데, 나는 지금 무기력하게 침대에만 누워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다. 나는 어째서 출발조차 못하는 걸까? 나는 왜 수능을 위해 공부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할까? 나는 무너졌다. 나는 넘어져서 일어서지를 못했다.
 그 때 당시에는 길가를 걸을 때에도 정말 시 <봄밤>에서 김수영 시인이 고백하듯이,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느껴졌다. 나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길, 타원처럼 휘어지며 아무리 돌고 돌아도 영원히 닿지 못할 목적지를 향한 길을 걷는 것 같았다.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만이 내게 가득한 것 같았다. 그나마 3년만에 수능을 간신히 본 것이 기적적인 회생이었다.
 하지만 <봄밤>에서 김수영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서둘지 말라.”.  대신, 그는 그의 수호 정령을 부른다. “절제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김수영 시인의 마음은,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고, 독재 정치하에서 저항 시를 쓰던 그의 마음은, 여린 뿌리를 지닌 채 얼마나 쓰러지지 않으려 애를 썼던가. 얼마나 <풀>이라는 시에서처럼, “바람보다도 더 먼저” 일어나기 위해 애를 썼던가. 그런 그가 절제하라, 그의 영에게 절제하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시에 거의 매번 등장하는 설움이라는 감정을 스스로 어르는 듯 했다. 그리고 그의 불안한 마음을 감싸안는 그 아마포를 그의 아들, 영감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젊음의 패기를 흔히들 칭찬하고들 하지만, 실은 내가 경험한 바로는 젊은이에게 그 어떤 것보다 필요한 것은 절제 혹은 인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고독함을 막 받아들이는 시기, 그의 아픔은 체감상 다른 어느 때보다 더욱 아플 것이다. 성년일 적에 다른 어느 시기보다 여린 마음인 나의 내면을 바라보노라면, 풀처럼 쉬이 땅바닥에 눕는 약한 마음일지라도 그럼에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려는 시인 김수영의 정신을 본받지 않을 수가 없다.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봄밤에 깨어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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