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시대 이야기들-꿈의 화학작용>
스콧 피츠제럴드 단편선 리뷰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라는 탁월한 미국 소설의 작가로 인정받지만, 일반적으로 훌륭한 단편작가로는 평가받지 못했다. 그가 쓴 180여 편의 단편 중 10여 편만이 잘 알려진 작품들이다. 단편작가로서의 피츠제럴드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그가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목적으로 그 단편들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서문을 쓴 패트릭 오도넬에 의하면 피츠제럴드가 단편을 써서 생활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피츠제럴드가 살아생전에 사춘기일 적부터 마흔의 나이로 일찍 죽을 때까지 꾸준히 습작을 해왔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게다가 그에 따르면 피츠제럴드는 단순히 장편소설의 밑그림으로서만 단편 소설을 써왔던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로서 끊임없이 혁신적인 실험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러한 혁신적인 실험이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미국의 화려하지만 동시에 공허한 1920년대 '재즈 시대'의 모습이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리뷰하고자 하는 단편집도 아예 제목부터 <재즈 시대 이야기>라고 달고 시작한다. 재즈시대라는 시대정신을 본질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파헤쳐보려는 피츠제럴드의 의도가 여실히 드러난 부분이다. 이 책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잘 알려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더불어 돈과 권력, 부패에 관한 이야기(<리츠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 연애에 대한 익살맞은 이야기(<낙타의 뒷부분>)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두 작품은 맨 첫 장에 나오는 <젤리빈>과 <리츠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이다. <젤리빈>은 헤밍웨이의 <병사의 집>이라는 단편 소설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피츠제럴드의 캐릭터 이 젤리빈, 혹은 짐 파월이 사랑에 빠진다는 점이다. 젤리빈은 옷을 잘 차려입은 젊은이라는 뜻을 가진 1920년대 유행어로서 권태로운 삶을 살아가며 인생을 관조만 하고 피해만 가려하는 짐의 껍데기만 남은 모습을 잘 드러내는 별명이다. 소설에서는 진지한 상황일 때의 주인공일 때는 짐, 그렇지 않을 때는 젤리빈이라고 번갈아 가면서 부른다. 어느 날 짐은 친구 클라크의 무도 클럽 초대를 받아들인다. 다만 소심한 그의 성격에 친구마저 당황할 정도로 새로운 상황이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짐은 무도회에 가서도 그저 팔짱만 끼고 구석에서 파티를 지켜만 본다. 파티에 오기 전, 군대를 갔다 온 후 그가 이전에 사귀던 친구들이 다들 '잘 나가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을 들은 짐은 스스로가 '그늘 진 곳의 잡초'처럼 느껴질 정도로 초조하면서도 스스로가 무력해 보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변이 일어난다. 그 동네에서 가장 예쁘고 인기 많은 낸시 라마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 또한 파티에 참가해 있었다. 짐이 바깥에서 상념에 빠져있을 무렵, 갑자기 낸시가 드레스룸에서 나와 느닷없이 옆에 있던 짐에게 자신의 신발에 묻은 껌을 떼어달라고 한다. 짐은 길가에 세워져 있던 차 중에 하나를 골라 연료통에서 휘발유를 꺼내 낸시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 낸시와의 첫 대화는 강렬했다. 그녀는 폭풍처럼 그녀의 자랑을 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지방에서는 그 어떤 남자도 그녀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은연중에 그녀의 마음을 얻을 자격을 받고 싶었던 걸까? 낸시가 주사위 내기에서 계속 돈을 잃자, 주사위 내기의 실력자였던 짐은 그녀의 돈을 모조리 되찾아준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낸시가 그에게 키스를 하며 그는 낸시의 입맞춤을 받을 자격이 있는 남자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아침이 되고 집으로 돌아온 짐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낸시에 대한 사랑을 받아들이게 된다.
클라크를 만난 짐은 친구에게 자신이 낸시에게 사랑에 빠졌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무기력하게 살지 않고 무엇이든 일을 해서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날 것이라는 것, 자신이 더 이상 나약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작가가 묘사하기를, 그의 마음에서는 모종의 강렬한 '화학작용'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 말없이 흥분한 짐의 이야기를 듣던 클라크는 사실 낸시는 어젯밤에 결혼을 이미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짐에게 알린다.
<리츠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 우화에서는 다이아몬드 광산을 둘러싼 온갖 음모와 배신 속에 결국 파멸해 버린 존과 키스마인의 마지막 대화를 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어린 시절은 꿈이에요. 일종의 화학적 광기이지요.", "이 세상 전체에는 다이아몬드만이 있어요. 다이아몬드와 미몽에서 깨어나기라는 초라한 선물만이."P.248
그러니까 다이아몬드 같이 화려해 보이는 꿈은 화학적 광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인데, 이는 다이아몬드가 화학적으로 99.5%의 탄소로만 이루어진 순수한 광물이라는 비유를 통해 그토록 순수해 보이는 꿈은 실은 광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피츠제럴드가 이 소설들을 통해 일관되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서 오도넬은 "20세기 미국의 꿈 그 자체가 비현실적이며 그 꿈을 추구한 결과가 절망적임을 명백하게 만든 그런 역사(P.21)"라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피츠제럴드가 어떤 의도로 소설을 썼는지와는 별개로 이 소설들의 의미에 대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젤리빈>에서 짐의 마음에 일어난 화학작용은 과연 낸시가 결혼했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일까? 비록 결과적으로는 낸시로 인해 무기력한 인생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동기가 생겼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면에서 이미 짐은 어떤 의미로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맞이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마음의 화학작용을 통해 응어리진 에너지는 언젠가 다이아몬드처럼 찬란하게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 청춘은 연금술이다. 그리고 나는 <리츠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에서 존이 다이아몬드에 대해 말한 부분도 틀렸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다이아몬드는 순수한 광물이다. 하지만 꿈은 화학적으로 따지자면 결코 순수하지 않다. 우리의 꿈에는 욕망과 희망이 뒤엉켜있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살면서 출세와 명예를 위해 살 수도 있고, 아니면 타인을 사랑하며 협력하는 인간성을 위해 살 수도 있다. 광물조차 '진짜배기'가 되기란 확률이 매우 낮은데, 하물며 수많은 변수들에 영향을 받는 인간은 어떠하겠는가? 순수하게 꿈을 꾸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세상은 꿈으로만 가득 차 있거나 비참하게 살게 되거나 그 양극단으로만 차 있지 않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 어느 중간에 있다. 그렇기에 나는 피츠제럴드는 젊음을 회의했다 하더라도 나는 청춘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꿈의 연금술이 가장 강렬하게 일어나는 때이니만큼 다이아몬드만큼이나 찬란한 꿈을 만들어내는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