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량 감독, 2019
남북분단의 역사에 있어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는 1998년,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간 일일 것이다.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는 이벤트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북한(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이 고향인 정 회장의 수구초심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잠깐 이웃나라를 보자. 중국-대만의 관계에서도 반백년 전 공산주의자를 피해 대만 섬으로 피난 온 자본주의 세력들도 대만에서 기업을 일구고 돈을 벌더니 하나씩 고향(대륙)으로 돌아가서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더 신기한 것은 대만(국민당) 군 장성들도 전역한 뒤 노후를 떠나온 고향-공산주의 중국-에서 보낸다고 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혹은 죽기 전 갖게 되는 소망인 모양이다. 여기 그런 심정을 엿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 김량 감독의 가족다큐멘터리 <바다로 가자>라는 작품이다.
<바다로 가자>는 김량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다. 동해 바다가 보이는 함경남도 단천군이 고향인 아버지, 김주영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만 18살 때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난 인민군이 아니야. (대한민국) 국군에 입대했어.”란다. 북으로 진군한 국군에 입대했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 때 남으로 온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부산에 정착한다. 바다가 보이는! 김주영씨는 본의 아니게 ‘실향민’ 1세대가 된 것이다. 언젠가 통일이 되고, 살아생전 다시 고향땅에 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박정희 시대를 거치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 실향민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잘 알 것이다. <바다로 가자>가 흥미로운 것은 실향민 1세대와 그들의 아들딸, 즉 2세대가 갖고 있는 ‘고향과 통일’에 대한 인식차이이다.
<바다로 가자>에서는 아들딸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청춘과 아버지의 고향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함께 남에 둥지를 튼 고향사람들 이야기도 곁들인다. 우리는 이들 사람의 이야기를 안다. 어쩌면 ‘반공’의 이미지로, 혹은 ‘이념이 탈색된 인간’의 그림자로 말이다. 김주영씨는 나이 들어 파킨슨병에 걸린다. 김주영씨의 딸, 김량 감독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카메라에 기록한 것이다. 아버지는 애타게 고향을 그리지만 그 아들딸들은 ‘아버지의 고향’은 가본 적도 없고, 그렇게 애타게 생각해 본적도 없다. 넓게 보면 디아스포라의 아픔을 느끼겠지만, 한국적 특성에 따라 분단의 현실은 시간이 갈수록 세대 간 이데올로기의 편차를 실감하게 만든다.
통일부 사이트를 보니, ‘남북이산가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45년 9월 이후 '분단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발생하여, 가족과 헤어져서 남북한 지역에 분리된 상태로 거주하고 있는 자와 그들의 자녀”라고. 실향민 1세대, 즉 이산 1세대는 고령화와 사망으로 점차 역사책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마치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자녀들은 ‘그’ 고향을 언제까지 생각할까.
김주영씨는 바다를 보며 저 먼 고향 산천을 생각하겠지. 그곳은 어떻게 변했는지 상심의 세월을 보내셨겠지. 그렇게 시간이 가는 동안 2세대는 카메라를 들고 기록한다. 아마도 다음 세대는 구글맵을 찾아보는 것으로 만족할지 모른다. 2020년 6월 18일 개봉 (박재환 202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