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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환 Nov 25. 2020

[드라큘라] 색(色),계(戒)

Dracula 2020


‘드라큘라’는 가상의 캐릭터이다. 인적 드문 깊은 산속에 우뚝 솟은 고성에 사는 이 불쌍한 존재는 햇빛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래서 낮에는 지하실 자신의 관속에서 다소곳이 잠들어 있다가 해가 지면 밖으로 나와, 사람의 목을 깨물어 그 피를 빨아먹는다. 브램 스토커가 1897년 발표한 소설 <드라큘라>(Dracula)에서 묘사된 흡혈귀의 모습이다. 당연히, 브램 스토커의 소설 속 드라큘라는 이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전설과 인간이기에 가능한 상상력이 결합한 이야기이다. 연약한 인간, 영생을 꿈꾸는 존재, 피와 죽음의 공포를 찬란한 태양 빛과 버무린 이 괴담은 오랫동안 사랑받는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와 연극, 뮤지컬, 그리고 그림으로 공포심과 경외감을 담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넷플릭스에서도 ‘드라큘라’를 우려먹는다. 이번엔 명품‘고전’드라마의 본가 BBC와 함께 말이다.


연초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큘라>는 90분 남짓 에피소드 3개로 꾸려졌다. 넷플릭스(한국) 측은 이 드라마가 BBC의 ‘셜록’ 제작팀이 참여하였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당연히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나오지 않지만 BBC버전, 혹은 셜록 스타일의 호러를 기대할만할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익히 아는 브램 스토커 플롯을 따라간다. 트랜실배니아의 고성에 사는 드라큘라 백작은 영국 변호사 조나선 하커를 부른다. 고성을 떠나 런던으로 이주하기 위해. 그런데, 조나선은 도착하는 순간부터 괴이한 분위기에 사로잡힌다. 늙고, 병든, 영어까지 어눌했던 드라큘라 백작은 날이 갈수록 젊어지고, 활기차고, 영어가 유창해지는 것이다. 반면, 조나선은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지고 몰골이 되어간다. 마침내 조나선은 백작의 비밀과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다. 조나선은 죽음을 불사하며 성에서 탈출한다. 겨우겨우 수도원으로 피신하는데 그곳에서 드라큘라를 쫓고 있는 아가사 수녀를 만나게 된다. 맙소사 ‘아가사 반 헬싱’이라니!


‘넷플릭스 드라큘라’는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BBC스타일로 전개된다. 강인한 인상의 캐릭터들이 나와 충격적 이야기를 하나씩 직조해 나간다. 물론 ‘디미터’호에서 펼쳐지는 호러블한 이야기까지. 드라큘라는 과연 런던에 발을 디딜까. 런던은 밤마다 피의 축제가 펼쳐질까. 놀랍게도 ‘셜록’이 아니라 ‘닥터후’처럼 상상력이 확장된다.

기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스토리는 오래된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에서 출발한다. 피와 죽음, 흑사병과 같은 전염의 공포가 연연히 이어져오다가 15세기 프랑스 ‘질 드 레의 재판’과 (지금 루마니아 땅인) 고대왕국 왈라키아의 블라드 테페스 왕자의 전설, 그리고 헝가리의 에르체베트 바토리 여백작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이 결합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브램 스토커에게 영감을 주면서 소설 ‘드라큘라’가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가면서 더 많은 괴기스러움과, 엽기성, 창의성이 보태져서 넷플릭스 드라큘라에 이른 것이다.

그럼, 넷플릭스는 ‘드라큘라’ 시즌1에 만족할까. 물론, 시즌1의 마지막 장면은 주요 캐릭터의 장렬한 산화이다. 하지만, BBC의 상상력과 넷플릭스의 돈이라면 그 어떤 영생을 못 얻으리오.


400년을 피에 굶주리며 폭발할 날만을 기다리는 드라큘라의 욕망(色)과, 제어하려는 자신, 혹은 아가사의 자각(戒)은 예리하게 충돌하며, 어느 순간 결합하며, 다음 운명으로 이어진다. 물론, ‘다음 시즌’말이다. 어쩌면 정말 셜록 홈즈와 닥터 왓슨이 십자가와 말뚝이 아닌, 새로운 도구와 제례로 드라큘라를 제어할지 모를 일이다.


햇빛, 십자가, 말뚝 등과 함께 흥미로운 ‘괴물의 법칙’이 나온다. 수녀원 문 앞에서 송곳니를 드러내고 광분하는 드라큘라. “초대받지 못한 흡혈귀는 들어갈 수 없다”라는 오래된 룰이다. <렛미인>에도 그런 컨셉이 등장한다. ‘드라큘라’도 알고 보면 꽤 소심하거나, 나름 선을 지키는 괴물인 셈.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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